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이 인사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편집국 이외 별도의 인원을 꾸려 신문을 제작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본인의 뜻을 거부한 기자들을 해고·징계할 뜻을 밝히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는 “초법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노사 양측을 ‘중재’해오던 이계성 편집국장 직무대행은 중재 무산에 따른 책임을 지고 10일 사퇴했다.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정상원)에 따르면,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은 최근 ‘회장 뜻에 동참하겠다는 사람과 퇴직 사우 등을 이용해 따로 신문을 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 회장은 이를 위해 이번 주부터 기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참여 의사를 묻고, 이를 거부하는 기자들에 대해서는 징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는 장 회장이 지난 7일 창간기념일 직후 사측의 인사명령에 따르고 있는 일부 부장들과의 회의 자리에서 이 같은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10일 통화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복수의 사람들에게 확인 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현재 15층에서 힘들게 만들고 있는 신문은 전송과 인쇄를 막아버리고, 자기 뜻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별도의 ‘짝퉁 한국일보’를 만들겠다는 속내가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장 회장은 대부분의 취재기자들이 거부할 경우, 콘텐츠는 서울경제나 연합뉴스 등의 기사를 활용하고 편집국이 아닌 회사 외부 별도의 장소에서 제작하겠다고 밝혔다고 비대위는 전했다. 
 
이에 따르면 장 회장은 또 ‘몇 명만 자르면 나머지 사람은 내 말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 말을 계속 안 들으면 15층 편집국 전체를 폐쇄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비대위 지도부나 간부) 몇 명 때문에 기자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편집국 인원(부장단 포함) 200여명 중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조합원은 모두 172명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평기자들은 거의 대부분 조합에 가입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편집국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듯 하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장재구 회장의 전화가 걸려올 경우, 확실한 거부 의사와 규탄 의사를 표하라는 ‘행동지침’을 조합원들에게 내렸다. 

   
▲ 지난달 21일 오후, 인사위원회에 참석하려던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오른쪽)을 정상원 비상대책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비대위 기자들이 가로막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와 함께 장 회장은 지난 4일 미스코리아 대회 행사가 열리던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노조가 개최한 기자회견을 거론하며 ‘참석한 사람들 채증해 놓았다.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고 비대위는 전했다. 지난달 1일자 인사 명령을 거부한 간부들에 대한 징계 절차를 속행하겠다는 입장도 천명했다. 사실상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경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공식 입장에서 “한국일보 경영을 망가뜨린 주범이 이제는 지면까지 팔아먹겠다고 나선 것”이라며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짝퉁 한국일보 제작은 파행이 불 보듯 뻔하며, 신문의 질은 최악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의 공공기능은 물론 편집권의 공공성과 정상성도 무시한 초법적 행태”라며 “여론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 관계자는 10일 통화에서 “완전히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자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겠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별도 제작은) 그게 가능하지도 않고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진 아무개 부장은 10일 통화에서 “그 자리가 무슨 자리인지 잘 모르겠고 대답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9일 편집국장 직무대행에 임명된 이후 장 회장과 만나 ‘중재’에 나섰던 이계성 논설위원은 10일 통화에서 “공식적인 중재안이 제시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중재안의 수용 여부를 두고 협상을 한 게 아니라 중재안 자체가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사의가 수용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면거부로만 일관했다”며 “처음부터 인사사태 해결 의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측 관계자는 “아무래도 (타협이) 어려울 것 같다”며 “인사를 무효화하라고 하는 건 회사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사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부장들에 대해 “징계위 개최 통보는 아직 안 했다”면서도 “일정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비대위는 언론노조와 함께 11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중앙지검 앞에서 ‘장재구 회장 소환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