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재특회’라는 모임이 있다. 재특회란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이다. 이들은 처음에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다 거리로 나왔다. 1만 명이 넘는 조직원을 갖추고 있는 대규모 조직이다. 
 
재특회는 재일조선인들을 적으로 여기며, 일본사회가 재일조선인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노동단체와 교사단체(일교조) 및 시민단체와 민주당은 재일조선인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좌익세력이다. 재특회는 이들 좌파엘리트에 맞서,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에 맞서 일본을 구원한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는 재특회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관찰해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야스다가 묘사하는 넷우익, 재특회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일베’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야스다는 성공회대 강연에서 일베에 대해 “데자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재특회가 만들어지기 직전의 일본 인터넷 게시판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재특회를 보면서 일베를 떠올리는 이유는 재특회와 일베 모두 실제로는 한줌도 안 되는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재특회는 재일조선인과 그들을 돕는 좌익들이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베도 마찬가지다. 일베 유저들은 그들이 적으로 규정한 몇몇 세력(강성노조, 외국인, 여성, 전라도, 전교조 등)과 그들을 돕는 좌빨 세력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재특회와 일베는 스스로를 이 기득권에 맞서는 정의로운 세력으로 규정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특권’이라 명명하고, 적으로 규정한 이들을 혐오한다. 재특회는 재일조선인을 조센진보다 더 멸시적인 말, ‘총코’라고 부른다. 일베 유저들은 여성을 김치녀라 부르고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라 부른다. 이 멸시적인 단어는 단순히 태생적인 조건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재특회는 재특회를 비판하는 야스다에게 “너도 총코지!”라고 소리친다. 일베는 일베를 비판하는 이들을 ‘홍어좌빨’이라 부른다. 멸시적인 단어는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통칭하면서 상대의 생각 자체를 멸시하는 기능을 한다. 
 
   
▲ 거리로 나온 넷우익/ 야스다 고이치/ 후마니타스 펴냄/ 2013.5
 
재특회는 좌익세력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음모론을 이용한다, 재특회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근거가 되는 일제강점기를 인정하지 않으며 위안부도 기득권 언론이 만들어낸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재일조선인이 일본 각지에서 약탈과 살육을 벌였다는 ‘조선진주군’ 음모론도 있다. 재특회는 거리 시위 때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조선진주군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닌다. 5·18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한 누군가와 꼭 닮지 않았나? 
 
따라서 재특회와 일베의 싸움은 기득권과의 싸움인 동시에 ‘진실’과의 싸움이다. 재특회와 일베는 자신들의 주장을 ‘팩트’라고 부른다. 나아가 자신들이 인터넷을 통해 계몽됐다고(일베 용어로는 산업화) 주장한다.
 
재특회가 아닌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일베 유저가 아닌 이들이 일베의 난동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야스다도 책에서 내내 재특회가 정말 한심하고 멍청한 놈들이며 말도 안 되는 궤변만 일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동시에 야스다는 재특회 현상이 무시할 만한 현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재특회 뒤에 더 무서운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한 재일조선인은 이렇게 말한다. “재특회는 명쾌하죠. 너무 명쾌해서 공포를 느끼지는 않아요. 제가 무서운 건 재특회를 칭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괴로워요”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했다는 이유로 조선학교의 무상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 평소엔 착하지만 술을 먹으면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재특회보다 무서운 건 이들이 아닐까? 실제로 연간 1천만 엔에 다다르는 재특회 운영 자금은 소액의 개인 헌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재특회는 소수가 아니다. 
 
일베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일베를 ‘일베충’이라 부르며 비판하지만 외국인과 여성,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소수일까? 야스다가 재특회와 일베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내용의 기사 밑에 ‘원숭이한테도 동정 받는 일베충’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여성을 김치녀라 부르고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라 부르는 ‘일베충’과 일본인을 싸잡아 원숭이라고 부르는 사람 간에 과연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재특회와 일베를 무시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나서 재특회와 일베의 논리에 맞서 싸우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이 싸움은 우리 사회, 우리 안에 내재한 차별과 멸시의 논리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넷우익은 이미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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