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렌트에서 저작권 있는 파일이 많이 유통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토렌트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토렌트는 HTTP나 FTP 같은 파일 전송 프로토콜 가운데 하나다. ‘.torrent’라는 확장자를 갖는 토렌트 시드(seed) 파일은 토렌트에서 파일을 내려 받을 수 있는 말 그대로 씨앗 같은 역할을 한다. 시드 파일을 실행시키면 같은 시드파일을 갖고 있는 다른 토렌트 이용자들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파일을 찾아 조각조각 내려 받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토렌트 때려잡기에 나섰다. 지난달 30일 문화부는 “불법 저작물을 공유하는 토렌트 사이트에 대해 전면적인 수사를 벌인 결과 토렌트 사이트 운영자 12명과 불법 공유정보 파일을 1000건 이상 업로드한 41명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유정보 파일이란 토렌트에서 특정 저작물을 인식하고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데이터 파일을 말한다.

문화부에 따르면 이번에 단속한 10개의 토렌트 사이트에는 378만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곳에서 238만건의 불법 공유정보 파일이 업로드돼 7억1500만회가 다운로드됐다. 문화부는 저작권 침해 규모가 866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각각 영화는 1050원, TV방송 프로그램은 700원, 애니메이션은 700원, 게임은 8000원, 유틸리티는 1만5000원씩 잡고 집계한 결과다.

문화부는 “그동안 토렌트 프로그램을 활용해 불법 저작물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심각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으나, 운영상의 특성으로 불법을 포착하기 어려워 수사의 사각지대로 인식돼 왔다”면서 “단순히 특정 불법 저작물을 다운로드하는 소극적 행위만으로도 다운로드 한 파일을 다른 이용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돼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토렌트 시드 파일은 특정 파일을 내려 받을 수 있는 위치 정보만 담고 있을 뿐, 단순히 시드 파일을 내려 받거나 공유하는 건 불법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드 파일을 실행시켜서 저작권이 있는 파일을 내려 받는 건 어떨까. 전 이사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파일이라는 걸 명확하게 인지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단순히 다운로드만으로 합법과 불법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오픈넷에서 활동하고 있는 남희섭 변리사도 “토렌트 시드 파일은 기능적으로 네이버나 구글 등에서 검색 결과로 제공되는 링크와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토렌트 시드 파일을 공유한다고 해서 곧바로 저작권법 위반이 되는 건 아니고 토렌트 사이트를 운영하는 경우도 저작물의 공유를 방치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역시 저작권 침해 행위라고 단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오픈넷은 문화부가 피해규모가 8667억원이라고 추산한 것과 관련, “피해 규모를 지나치게 부풀려 문화부가 커다란 성과를 낸 것인양 수사 결과를 과대 포장했다”고 지적했다. 문화부는 토렌트 사이트가 사라지면 토렌트 이용자들이 100% 합법 사이트로 옮겨간다는 가정 아래 피해규모를 계산했는데 실제로 문화부는 이 비율을 38% 정도로 보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3274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부가 피해 규모를 네 배 가까이 뻥튀기했다는 이야기다.

남 변리사는 “어차피 합법 사이트로 옮겨가지 않을 이용자들이 얻게 될 소비자 후생 효과를 피해 규모 산정에 고려해야 한다”면서 “실제 피해규모는 577억원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문화부 발표의 6.7% 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다. 남 변리사는 “미국만 하더라도 2011년 1월까지 약 9만 명의 토렌트 이용자들이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는데, 해외 어디에서도 토렌트 이용자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소송이 저작물의 불법 이용을 줄였다는 보고가 없다”고 덧붙였다.

남 변리사는 “저작권법은 사적복제를 위한 저작물 이용을 합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토렌트 사이트를 사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 변리사는 “문화부는 토렌트 사이트 회원 378만명을 범죄자 취급했는데 우리나라 성인 10%에 해당하는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이런 발표는 올바른 저작권 정책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저작권 침해 소송만 부추길 뿐”이라고 강조했다.

문화부 저작권보호과 장영하 서기관은 “문제가 된 사이트들은 첫째, 전기통신사업법에 규정된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고 둘째,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저작물 공유를 방치하여 저작권법 위반을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서기관은 시드 파일은 저작물이 아니라는 오픈넷 등의 주장에 명확한 반대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시드 파일이 곧 저작물과 연계되기 때문에 저작물을 공유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설명을 반복했다.

오병일 정보공유연대 대표는 “시드 파일을 공유하는 게 저작권법 위반을 방조한 것이라는 논리는 지나친 비약”이라면서 “문화부는 토렌트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토렌트 사이트를 과거 웹하드 사이트 같은 걸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오 대표는 “영리·비영리적 여부와 무관하게, 설령 결과적으로 저작권 침해를 했더라도 단순히 시드 파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 대표는 “저작권법 위반이 많다고 해서 토렌트 사이트들을 폐쇄하겠다는 건 결국 저작권자들이 공급하는 것만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 돈이 안 되는 건 아예 유통되지 않는 시스템으로 가자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오 대표는 “토렌트에서 파일을 내려 받는 것 자체는 사적 복제의 영역으로 볼 수 있고 다만 토렌트를 통해 파일을 공유하는 걸 저작권법이 규제하는 전송으로 볼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법에는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고 사적 복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토렌트의 경우도 이에 해당하는지는 유권 해석이 내려진 바 없다. 오 대표는 “문화부가 저작권법 위반의 범위를 과장하면서 국민들을 겁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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