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동기 차원의 심리적 몰입은 미시적인 차원이 아니라 거시적인 차원의 큰 틀을 놓치기 쉽다. 일베현상은 분명 현대인들의 병리적 심리의 단편에 불과하지만, 이를 특정 병리자들의 행태로만 볼 때 그것은 한국이 갖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간과하는 셈이 된다. 흔히 역사의 진전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현재 누리는 수혜가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간과하는 것은 자기부정은 물론 그들이 존립하는 사회토대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일베도 마찬가지다. 그 자기 부정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것이지만 그 욕망의 충실함이 누구 때문에 가능해졌는지 간과하며 이는 사회, 문화적 진보를 부정하여 버린다. 이런 맥락에서 일단 일베충이 존재하고 유지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자기부정을 통해 긍정적인 사회문화적 변화를 간과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의 존재이유

말 그대로 일베는 일일베스트다. 일일 최고의 순위로 글이건 그림, 영상이건 모든 콘텐츠가 치달아간다. 일일베스트의 기준은 재미 그리고 유희다. 자본주의적 시장과 같다. 돈이 될 수 있으면 상품이 되고 거래가 된다. 애초부터 고귀한 가치 따위에 대한 인식은 없다. 일베는 우리나라 1등주의 시장경제와 닮아 있다. 청정바다에 기름을 쏟고 나 몰라라 하건 불산 가스를 누출해도 삼성처럼 돈 많이 벌고 업계 1위하면 찬탄하는 것과 같다. 일베는 무조건 일등만 하면 된다. 내용이 욕설이나 유언비어이어도 그런 건 관계가 없다. 그들에게는 눈도 없고 뇌도 없으며, 그들은 오로지 감각만이 살아 있는 좀비와 같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피와 살코기이면 물고 그렇지 않으면 토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난도질당하지 않는 존재가 있으랴.

   
일간베스트 홈페이지 화면 캡처
 

하지만 일베는 상품을 팔고 돈을 얻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역시 자본주의는 돈을 목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예컨대, 명예나 지위 그리고 인기를 위해 움직인다. 일베의 목적은 ‘주목’받는 것이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주목받는 것이 아닌 점에서 연예이나 명사와 다르다. 주목을 받는 방식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부정적인 것에 대해 더 민감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비판을 꺼리는 사안은 이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그런 사안이나 혹은 인물에 대해 뜯을수록 반응이 즉각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배경을 뒤로 하고 배설의 도가니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철저하게 익명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베충은 표현의 자유라는 법적 정치적 장치와 익명성이라는 제도적 장치 그리고 배설의 쾌감이라는 인지 심리학적 기제를 갖고 움직인다. 여기에 진리를 말하는 자라는 도덕적 윤리적 우월의 지배심리를 갖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정치세력이 몰린다. 여기에 보수 우익의 논리들을 활용하는 이들이 활개를 치기 쉬웠다.

이런 일베충들의 담론은 절대 중심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되는 경우가 있다. 일베충과 같은 담론을 자신의 정치 사회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이들 때문에 가능해진다. 진정한 일베의 목적은 단순히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위로 세상에 들썩이는 모양새이다. 지금 일베를 둘러싼 상황은 일베충들의 목적을 정확하게 달성시켜준 셈이다. 그들의 공간을 인위적으로 없앤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이렇게 일베충을 두고 겪게 되는 자가 당착의 상황의 전개는 이미 충분히 예견되어왔다. 표현의 자유를 생각하면 그렇다. 오히려 그들의 명분과 실리를 더욱 강화시켜준다.

중요한 것은 일희일비가 아니라 진리를 안고 있는 자의 여유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진리가 아닌 것은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스스로 성찰을 하며 진실에 가까워 있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다. 예컨대 신화화와 성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을수록 일베 좀비들의 공격을 받는 법이다. 이런 점이 없었다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일베충을 박멸하는 것은 ‘무관심’이다. 애초에 그들은 관심을 먹고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악플충과 같은 족속이다. 그러나 선거는 민주주의를 그들에게 낚이게 만들었다. 일베논란은 결국 씹기만 하면 성공한다는 논리를 확증 한 사례가 되었다. 빤하게도 진보는 공격이나 비판 자체가 아니라 융합 속의 생산이다. 일베충 같은 집단 하나 녹여내지 못한다면 과연 무엇을 스스로 잉태하고, 창조할 수 있을까. 일베충은 생산은 하지 않고 담론의 기호를 통해 우위를 점령하려는 기존의 정치놀음과 아주 유사하다. 국민과 시민을 위한 비전이나 정책은 없고 조소와 경멸의 소모적인 작업에 온 나라가 휘둘리는 것은 바로 서로의 생명을 갉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모르는 것 ㅡ모순적인 배은망덕 행태가 위험한 이유

일베는 민주화 세력 내지 진보세력들을 짓밟는 것을 시대적 소명으로 여긴다. 권력화에 대한 비난인 듯하다. 그러나 일베가 존재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세력이나 진보세력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에서 언론집회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사생활 보장을 쟁취해낸 것은 보수우익이 아니다. 예컨대, 일베는 초고속통신망의 산물이다. 초고속통신망은 결국 민주화세력이 구축한 것이다. 초고속통신망은 소통을 의미한다. 소통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실체이다. (오히려 이런 인터넷 소통정책은 이명박 정권에서는 후퇴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ICT를 통한 경제적 수익에 더 관심이 많다.) 지배 권력은 소통을 거부한다. 그것을 통해 진정한 독재적 권력을 판단할 수 있다.

   
SBS <현장 21> '일베에 빠진 아이들' 화면 캡쳐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싸운 결과물의 수혜가 일베충을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인터넷 검열과 실명제가 도입되지 않았던 것은 보수우익의 투쟁이 아니라 민주화 세력과 진보세력의 투쟁 때문이었다.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투쟁, 그런 점은 역설적으로 일베가 탄생할 수 있고, 일베충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일베의 반민주화투쟁은 자기 스스로 존재의 근거를 훼손하는 행위인 것이다. 독재 세력은 결코 민주적 소통과 그러한 채널인 디지털 공간을 찬성하지 않는다.

일부 연예인들이나 대중예술가들은 민주화 세력이나 진보적 활동 하는 이들을 폄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문화가 활력을 가진 것은 한국전통문화의 우수성이 아니라 통제와 검열과의 투쟁에서 비롯한다. 음반과 도서, 공윤심의가 없어진 것은 투쟁의 덕분이었다. 한류가 지구촌이 불고 있는 현상도 역시 민주화의 과실이다. 한국의 아이들이 세계 공연에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가 없었다면 중국과 같이 아직 인터넷을 통제하는 나라였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한 싸이 뮤비 현상은 민주화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창작의 자유가 지속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역시 각고의 권리투쟁을 싸웠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 보수 우익의 논리에서 나오지 않았다. 헤게모니 전략 차원의 문화전략을 추구한 것은 그들이 아니다.

이런 연예인이나 일베충의 공통점은 자신의 활동이 누구 때문에 가능해졌는가라는 점의 간과다. 이는 혼자 열심히 창작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투쟁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제도적으로 가능했다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일등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토대의 기원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점을 모르면 다양성을 통한 창조의 원리를 망각하기 때문에 추동력을 갖기 힘들다. 그래서 일베의 논리는 대안이 아니라 비난에 초점이 있다. 창조경제가 유행하는데, 그 창조경제는 다양성에서 비롯한다. 플로리다 교수가 게이지수를 통해 창조계급과 창조도시의 성공여부를 말한 이유다. 과연 일베충은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의 주자가 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들은 박근혜 정권을 옹호하지만 그 정부가 말하는 국정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근원적 모순위에존립하다.

오히려 창조경제는 민주화세력과 진보세력이 맡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한다면 답은 명확하다. 이것이 다양성의 문화논리 없이 경제적 이익만을 챙기려는 창조경제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민주화의 논리를 희화화하는 대중예술인들은 오래갈 수 없는 맥락과 같다. 만약 민주화와 진보 정치를 부정한다면, 스스로 일베를 폐쇄시키거나 대중예술 활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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