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 KTX 민영화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같은 해 4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또 한 차례 KTX 민영화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이명박 정부가 수서발 KTX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자 박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KTX 민영화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수서발 KTX를 비롯한 신규노선에 경쟁체제를 도입한다고 밝혔고, 이것이 사실상 민영화 계획이라며 야권과 철도노조 등이 강하게 반대에 나섰기 때문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23일 국토교통부는 수서발 KTX를 민영화하는 것이 아니라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출자하는 여객 운송회사가 운영을 맡는 것이라 해명했다. 기존 공기업을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하겠다는 것으로 민간지분이 없고 국민연금 등 공공 연기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자회사가 코레일과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화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6일 민간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이에 대해 논의해왔고 공기업과 민간사업자가 시장에 참여한 ‘영국형’의 철도산업 발전 구상이 아닌 공기업이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해 서비스별로 자회사 운영을 하는 ‘독일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민영화 의심을 받고 있을까?

   
▲ KTX 열차
 
1. 반쪽짜리 민간검토위원회

건설교통부는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민간 검토위원회를 발족하고 철도산업 발전 구상에 대해 논의해왔다. 그런데 지난 달 16일 갑자기 민간 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종열 인천대 교수, 최진욱 고려대 교수, 엄태호 연세대 교수, 주효진 꽃동네대 교수 등 4명이 사퇴했다.

이들은 “KTX 경쟁체제 도입 방안을 위한 공론화 절차가 전문가 의견 수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토해양부의 입장이 미리 결정돼 추진되는 등 민간검토위가 들러리가 됐다”며 집단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민간검토위는 지난 3일과 14일 단 두 차례의 회의를 가졌고 23일 세 번째 회의에서 의견서를 만들어 국토부에 제출한 것이다.

국토부가 공개한 민간검토위원회의 의견을 보면 대부분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민간검토위원회는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사회발전을 위해 철도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하며, “간선 철도는 철도공사 중심으로 운영하되, 일부 노선에서는 경쟁방식을 통해 공공성과 효율성을 절충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당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 22일 이에 대해 “민간위원회는 국토부가 결정한 정책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며 “소수의 관료와 민영화 찬성론자가 중심이 되어 밀실에서 졸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묻지마’식 철도민영화 정책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통합진보당 노동위원회 역시 24일 민간검토위원회에 대해 “참여하는 사람 대부분이 과거 국토부의 철도민영화 정책에 깊숙이 개입해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인사들이거나 민영화 지지의사를 밝힌 곳 또는 국토부의 유관기관”이라며 “그 결과야 너무나 뻔하다”고 지적했다. 애초 수서발 KTX 등 철도의 경우 노선이 하나 뿐이기 때문에 경쟁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 연기금 운용? 지분 팔면 어떻게 되나?

국토교통부는 코레일이 지분의 30%까지 소유하고 나머지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운용하여 지분을 메운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야권과 전문가들은 ‘손쉽게 민영화 할 수 있는 방안’이라 지적한다.

진보정의당은 지난 23일 정책논평을 통해 “자회사 형식이긴 하지만 코레일의 지분참여를 30%로 제한하여 운영권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민간기업의 참여도 제한하여 민영화 논란도 피해간다는 계획이지만 지분 분할을 통한 운영방식은 차후 단계적으로 지분에 대한 민간참여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연기금을 통해 코레일 자회사를 운영하겠지만 만약 국민연금 지분이 매각되고 이것을 민간이 사들인다면 사실상 민간의 개입을 막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민주당 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철도공사 지분을 30% 미만으로 제한하는 상황에서 정부보유 지분 20% 정도를 매각할 경우 운영권은 민간으로 넘어갈 수 있다”며 “지분매각을 통해 민영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려는 ‘눈 가리고 아웅’식 꼼수”라고 비판했다.

결국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철도 관련 논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철도공사 운영도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KTX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관련 논의는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토부의 철도민영화 추진은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을 뒤집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약속을 뒤집고 한국철도에 대한 중장기적 비전이나 진지한 고민도 없이 오로지 ‘경쟁체제도입’만 만병통치약으로 여기고 그 틀 내에서 모든 논의를 진행하고 결과를 도출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어 “국토부가 밀실논의를 통해 졸속으로 진행하고 있는 철도 정책이 박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 것인지 박 대통령이 거짓말을 한 것인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정의당 정책위원회는 “국토교통부의 이번 계획은 지분의 분할을 통한 운영방식 구성되어 차후 단계적으로 지분에 대한 민간참여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결국 단계적인 민영화 방안일 뿐”이라며 “정부는 민영화 시도를 중단하고 철도공사 운영에 시민단체, 노동자대표, 정부/국회대표 등이 참여하는 ‘공공이사회’ 등의 시민참여형 운영 방안 도입을 통하여 공공성과 운영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정책위원회도 “국토부는 ‘독일식 모델’ 운운하지만 시설과 운영이 분리된 채 운영부문이 각 사업별, 노선별로 분할 민영화된다면 대표적 철도민영화 실패 사례인 ‘영국식 분할 민영화’일 뿐”이라며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적 합의나 동의 없는 민영화는 반대’라고 공약한 만큼 반드시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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