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18 광주항쟁을 앞두고, 종편방송인 채널A와 TV조선 두 채널이 무척 당혹스러운 내용을 내보냈다. 한국현대사의 나름 오래된 인기 음모론 가운데 하나인 북한군 배후 침투설을 특정인 증언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시청자들에게 뿌린 것이다. 정식 언론 기업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어떤 부류의 하위문화 온라인 게시판들에서 종종 발생하는, 강렬한 논란으로 조회와 추천을 잔뜩 모아 관심을 끌어보려는 사용자들의 모습에 가까웠다. 이런 한심한 모습에 대해, 2013.5.22자 기자협회보 만평이 잘 나타내준다.

쥐꼬리만큼의 “팩트(?)”와 빨간 페인트통을 들고, 천둥벌거숭이마냥 무언가를 떠벌리고 다니는 어린 아기의 모습이 있고, 그들이 뿌리는 종이 쓰레기에 시민들은 불편해한다. 이런 모습을 심지어 그 아기의 부모마저 외면해버린다. 최소한의 성숙함도 없이 관심을 위해 아무 것이나 뿌리면서 민폐를 끼치는 행위에, 해당 방송사의 모기업 언론사의 중심 신문들마저 거리감을 두고 나선 모습에 대한 풍자다. 그런데 이 만평이 무엇보다 깔끔하게 풍자해내는 현실은, 치밀하게 기획된 악의로 시대착오적 군사독재정권 옹호와 반공이념이나 호남차별을 강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막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사회적 성숙을 조금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자기 마음대로 가장 타고난 본성에 가깝게 관심을 갈구하기에 모두를 곤혹스럽게 한다. 시청자의 관심을 얻고자 가장 날 것 그대로의 우익 판타지를 뿌렸다.

   
 
 
나름 정상궤도를 밟고자 하는 민주제 사회이기에 표현의 자유라는게 하나의 핵심가치로 인정받고, 미디어기술의 발달으로 인해 세상에 발언을 내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은 별로 없어진 세상이다. 이런 환경에서 명백히 역기능적인 발언들에 대해서 - 예를 들어 허위와 모욕 등의 방식을 통해 특정 사회 집단에 대한 혐오를 키워내어 부당한 차별을 조장한다든지 -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울 것인지는 복잡 미묘한 문제다. 뉴스 댓글란의 무명씨가 뱉어놓은 한마디 욕설에 대해서까지 진지하게 제도적 절차에 의한 정정을 요구해야할 것인가. 만약 아니라면, 같은 내용을 매일 10만명쯤 방문하는 인기 게시판 서비스의 첫 페이지 대문에 걸어놓는다면 어떨까. 혹은 그 내용을 정식사업체로서의 언론사가 지면과 방송시간에 그대로 인용하여 퍼트려준다면 어떨까.

이럴 때 기준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 만화 [스파이더맨]에서 유래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격언이다. 그런데 이것을 미디어와 담론의 세계로 끌고 오면, 이렇게 변형해야할 듯 하다: “큰 발언력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어떤 매체에서 문제 내용을 다루어낸 방식이 더 많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더 진지한 정보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면, 그만큼 더 많이 비판하고 그에 대한 불이익을 받도록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힘이 크면 잘못에 대해 크게 댓가를 치루는 것이 마땅하기에, 그만큼 더 신중하게 내용을 검증하고 조율해야 한다. 그런 것을 거부한다면, 더 이상 그런 힘을 누리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음모론은 언제나 존재하고, 그것을 가장 인간 존중이 결여된 형태로 풀어낸 담론쓰레기 또한 그렇다. 그런데 그것을 쓰레기통 바깥으로 찍어 나르는 이들은, 댓가를 치뤄야 한다. 그것도 더 이슈화 능력이 강할수록, 더 강하고 정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합당하다. 진영으로서의 마찰이 아니라, 지상파보다는 영향력이 적은 것으로 간주되지만 여타 전문 케이블채널보다는 더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는 나름 접근성 좋은 확성기, 그러니까 방송언론사로서 제 기능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민사소송에서 방송국 재승인 심사 반영까지, 옵션은 적지 않다. 버릇 없는 아기를 고쳐놓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감정적 욕설이나 손찌검이 아니라, 엄격하고 일관적인 행동 제약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만 계속 명심해야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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