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구 전 얼라이언스시스템 사장은 삼성과 11년째 싸우고 있다. 그를 만나자 마자 물었다. 11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래도 다시 삼성과 싸울 건가. 후회하지는 않나. 조씨는 “이렇게 엉망이 될 줄 알았으면 소송을 내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언론에도 많이 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조씨는 소송에 매달려 있고 모든 삶을 여기에 걸고 있다. 16일 조씨를 서울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만났다.

조씨와 삼성의 악연은 2002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씨가 설립한 얼라이언스시스템은 나름 잘 나가는 업체였다. 조씨의 회사는 우리은행이 발주한 프로젝트에서 삼성SDS와 컨소시엄으로 들어가 입찰에 성공했다. 금융권 이미징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한때 90%에 육박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삼성이 납품 단가를 깎자고 했다. 28억원짜리 제품을 10억4500만원으로 깎고 5년 동안 애프터서비스를 공짜로 해주는 조건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처음에는 300명 사용 조건이었는데 나중에 계약 내용을 찾아보니 무제한 사용 조건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제한 사용 조건이면 최소 70억원을 받아야 했지만 삼성이 막무가내였다. 조씨는 이런 조건이면 납품을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자 삼성은 일단 납품부터 해라, 그럼 삼성 계열사들에 독점 공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그래서 매출을 만회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삼성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일단 헐값에 낙찰을 받고 난 뒤 협력회사에 일방적으로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했고 정작 계열사들에는 다른 회사 제품을 공급했다. 조씨가 따지자 삼성은 계약이 정상적으로 체결됐다는 공문을 요구했다. 조씨가 길길이 날뛰자 검찰 고소를 포기하겠다는 각서까지 쓰라고 했다. 조씨는 삼성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냈고 그때부터 11년에 걸친 힘겨운 투쟁이 시작했다.

   
 
 
조씨의 주변에서는 “삼성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서 말렸다. 조씨 역시 뒤늦게 후회를 많이 하고 있지만 “그때는 도저히 억울해서 견딜 수 없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2004년 8월 삼성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는데 검찰은 이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계약 조건을 맘대로 바꿔서 손해를 떠넘겼다는 게 조씨의 주장이다. 조씨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사건 폭로가 있었던 2008년 삼성을 다시 사기 혐의로 고소했고 또 불기소 처분이 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적반하장으로 삼성이 조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이 났다. 조씨는 말한다. “무고가 아니라면 삼성이 사기를 쳤다는 내 주장이 맞다는 이야기인데 지금 상황은 무고도 아니고 사기도 아니고, 이 모순을 뭘로 설명할 건가.” 결국 조씨를 돕는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삼성을 무고에 무고 혐의로 고발해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조씨와 삼성 둘 중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BPR(기업경영혁신)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수주 실적이 없었던 삼성SDS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실적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고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써내서 경쟁업체들을 따돌렸다. 그래놓고는 협력업체에게 그 부담을 떠넘겼다. 그런데도 삼성하고 일하는 게 어디냐는 태도였다. 말로만 들었던 납품 단가 후려치기, 거래를 하면 엄청난 손해를 떠안는 구조였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삼성SDS는 이미 검찰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이 난 사실이라며 언급을 꺼리고 있다. “300명 동시 사용자 라이센스 조건으로 구매해 동일한 조건으로 우리은행에 납품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조씨의 주장은 다르다. 조씨는 “삼성과 우리은행이 애초에 무제한 사용 조건으로 돼 있던 계약서를 나중에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300명 사용 조건으로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짜 계약서라는 이야기다.

   
김시근 당시 현대정보기술 대표가 검찰에 제출한 확인서. 애초에 입찰 조건이 무제한 사용 조건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삼성SDS의 주장과 상반되는 이 확인서를 묵살했다.
 
조씨는 김시근 당시 현대정보기술 대표가 검찰에 제출한 확인서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김 전 대표는 “당시 우리은행의 입찰 조건은 소프트웨어에 대해 무제한 사용 조건이었으며 이에 대한 입찰 조건 변경과 관련된 구두 합의나 문서 합의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삼성SDS나 현대정보기술이나 같은 조건으로 입찰했는데 삼성만 300명 사용 조건으로 입찰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게 조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대표의 확인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검찰은 300명 사용 조건이라고 명시된 삼성SDS와 우리은행의 계약서를 근거로 조씨의 주장이 사실 무근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계약서가 가짜거나, 조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가능성은 두 가지다. 검찰은 명백한 증거를 묵살하고 피고소인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들여 조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씨의 억울한 사연은 계속된다. 얼라이언스의 창업자인 조씨는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2005년 11월, 돌연 이사회에서 해임된다. 얼라이언스는 관계회사인 콤텍시스템에 14억원 가량 채무가 있었다. 콤텍시스템 사장과 이사들이 얼라이언스의 사외 이사를 맡고 있었는데 이들이 다른 이사들을 포섭해 경영권을 빼앗았다는 게 조씨의 주장이다. 사외이사를 맡을 정도로 우호적이었던 협력업체 대표가 기업사냥꾼으로 돌변했다는 이야기다.

얼라이언스와 콤텍시스템은 이미 그해 4월 채무 일부를 출자전환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조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사회가 열리던 시점에서는 이미 채무가 변제된 상태였다. 그런데 콤텍시스템은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채무를 변제하라고 압박했고 경영 부실을 문제 삼아 조씨를 해임했다. 조씨는 여전히 최대주주였지만 콤텍시스템이 개발진과 관련 기술을  모두 빼내간 뒤였다. 얼라이언스시스템은 껍데기만 남고 빚은 고스란히 조씨의 몫이 됐다.

조씨는 콤텍시스템의 배후에 삼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얼라이언스의 직원 상당수가 콤텍시스템으로 옮겨갔고 콤텍시스템은 얼라이언스가 개발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소프트웨어를 삼성에 납품하고 있다. 조씨의 주장이 맞다면 전형적인 기업 사냥꾼의 수법이다. 조씨를 해임했던 임시 이사회가 법무법인 태평양 회의실에서 열렸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삼성은 조씨 관련 소송을 모두 태평양에 위임해 왔다.

조씨는 우리은행의 황영기 전 행장이 삼성증권 출신이라는 사실도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SDS와 우리은행의 계약서를 조작하는 과정에 황 전 행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다. 조씨는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 가운데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 의원이 폭로했던 삼성 떡값 검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검찰이 노골적으로 삼성 편을 들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삼성SDS는 “이미 검찰 조사가 끝났고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안이라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콤텍시스템 관계자도 구체적인 설명을 꺼렸다. “조씨가 제기한 형사고소와 재정신청까지 모든 소송에서 승소했고 민사소송도 1심에서 승소해서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이것으로 충분히 설명이 됐다고 본다”고만 말했다. 삼성SDS 관계자도 “콤텍시스템과 얼라이언스시스템의 경영권 분쟁은 삼성SDS와 관련이 없다"고만 말했다.

11년의 소송을 치르느라 조씨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조씨는 평생을 쏟아부은 회사를 잃었고 집도 경매로 팔려나갔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상당수 사람들은 조씨의 주장을 음모론으로 치부한다. 검찰에서 이미 결론이 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조씨는 “검찰은 명백한 증거조차도 외면했다, 11년 소송을 하면서 우리나라는 삼성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절감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금까지 15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을 만났다. 국가정보원까지 나서서 진상조사를 했다. 석달 동안 조사했던 국정원 팀장이 “삼성과 우리은행, 콤텍시스템은 한 몸뚱이입니다”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청와대에도 여러 차례 보고가 됐다. “청와대에서 해결할 테니 걱정말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런데 청와대도 국정원도 소식이 없었다. 재판 중인 사안에 개입하는 게 곤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씨는 대·중소기업상생협의회를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소기업들 피해 사례가 수도 없이 많지만 삼성의 눈 밖에 나면 사업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다들 쉬쉬한다고 한다. 민생연대 이선근 대표를 중심으로 조성구 후원회가 조직돼 월 18만원씩을 받고 있지만 두 아이들 학비는 고사하고 생계 유지조차 막막한 어려운 상황이다. 조씨는 삼성과 싸우느라 모든 걸 다 잃었다. 그런데도 조씨는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조씨는 “삼성이야 말로 갑 중의 갑, 슈퍼 갑”이라고 거듭 호소했다. “언론에서 남양유업이나 배상면주가 대리점 주인들 이야기로 떠들지만 정작 삼성을 비롯해 재벌 대기업의 횡포에는 눈감고 있다”는 이야기다. 조씨는 “삼성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신화를 깨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조씨는 “억울해도 찍소리조차할 수 없는 이 땅의 수많은 을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워서 삼성의 위선을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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