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휴 기간 대중음악 공연계는 총만 안 들었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네 개의 페스티벌이 열린데다 초대형 내한 공연이 세 개나 이어졌기 때문이다. 봄에 열리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전무했던 시절이 까마득해질만큼 성장한 공연 시장과 과열화되고 있는 페스티벌 시장은 같은 시기에 곳곳에서 다른 컨셉트의 공연과 페스티벌이 펼쳐지게 만들었다. 대중음악 팬들조차 다 갈 수 없어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3일. 가시적인 승자는 페스티벌 10일 전에 일찌감치 모든 티켓을 매진시킨 그린플러그드 2013과 관객 3만명을 넘긴 서울재즈페스티벌로 보인다.

그렇다고 흥행에 성공한 페스티벌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페스티벌이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는 시도이며 현상이다. 그 중에서도 바비큐와 음악을 접목시키며 새로운 컨셉트를 시도한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과 여러 페스티벌의 장점을 잘 조합한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 공연을 즐기고 있는 관객들.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은 지난 9년간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음악 페스티벌로 성장한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주관한 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에서 새롭게 기획한 페스티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은 재즈 팬들만이 아니라 음악과 레저를 사랑하는 성인층의 사랑을 받으며 흠잡을 데 없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모델이 되어 왔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새롭게 시작한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은 급증하는 레저 인구와 갈수록 레저화되고 있는 페스티벌 인구를 함께 공략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피엠시 네트웍스가 주최하고 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가 주관한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은 그래서 리듬이라는 음악의 흥겨운 요소와 바비큐라는 레저의 상징적인 먹거리를 결합시켜 새로운 페스티벌을 만들어낸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바비큐를 먹는 페스티벌이라는 컨셉트는 축제의 놀이적 측면을 가장 극명하게 부각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의외의 기획으로 다가간 첫 번째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호응할 것인지, 그리고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이 어떠한 공간과 음악의 풍경을 펼쳐놓을지가 관심사였다.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 객석 전경.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
 
일단 첫 해의 흥행은 결코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의 흥행에 비해 1/10 수준인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의 관객 수는 페스티벌이 집중된 시기에 새롭게 시작된 페스티벌이라는 약점을 첫 해부터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5월 중순의 뜨거운 햇살은 가을의 여유로운 풍경과는 달리 잠시나마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을 여름의 록 페스티벌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했다.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 로버트글래스퍼 공연.
 
그렇지만 첫날 케잘레오(Kejaleo), 와타나베-베를린-도너티 트리오(Watanabe-Berlin-Donati Trio),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Robert Glasper Experiment)로 이어진 메인 무대 알앤비 스테이지(R&B Stage)의 공연은 음악이 선사하는 멋스러움에 빠져들게 하기 충분했다. 스페인의 플라멩고 음악을 기초로 한 케잘레오의 음악은 플라멩고의 격정적 리듬감을 디에고 코르테스(Diego Cortes)의 스패니쉬 기타와 사비 투를(Xavi Turell)의 퍼커션으로 맛깔스럽게 표현해냈다.

로살리아 비야(Rosalia Vila)의 농염한 보컬과 춤도 흡인력이 강했다. 크리스토 폰테실랴(Cristo Fuentecilla)의 일렉트릭 기타는 이 전통적인 사운드에 록킹한 매력을 더함으로써 월드 뮤직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음악으로서 퓨전 음악을 즐기게 만들었다.

이어진 와타나베-베를린-도너티 트리오는 3인조의 구성만으로도 록킹한 퓨전 재즈의 강렬한 힘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만끽하게 했다. 그리고 첫날 공연의 헤드라이너 격인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는 보코더를 활용해 몽롱한 질감의 보컬을 뽑아낸 R&B적 스타일과 재즈적인 질감에 록 언어까지 혼용함으로써 가장 파격적이고 가장 현대적인 음악을 들려주었다. 2013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R&B 앨범 부문을 수상한 뮤지션답게 그의 음악은 일군의 범주 안에 묶일 수 있었던 이전 출연진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하며 관객들을 빨아 들였다.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 무대 뒤편에서 바라본 모습.
 
해가 질 무렵부터 자라섬은 예의 서늘하고 평화로운 공기를 느리게 흘려보내며 그 시간과 음악을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다른 페스티벌에서 맛볼 수 없는 자연스러운 감동은 올해에도 한결 같았다. 그리고 관객석 뒤편에 멀찍이 자리 잡은 바비큐 존은 야외에서 가족, 친구들이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파티를 즐기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비록 첫 해의 페스티벌 흥행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음악 페스티벌보다는 음악이 있는 레저 페스티벌로 홍보한다면 더 많은 이들, 특히 대중음악 페스티벌에 선뜻 함께 하지 못했던 가족들의 호응을 얻으며 가족과 레저형 대중음악 페스티벌로서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게 하는 지점이었다. 좋은 아이템을 선점한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의 미래가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서울재즈페스티벌 역시 야외에서 열린 대형 페스티벌이었지만 컨셉트는 달랐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재즈 페스티벌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 출연진은 미카(Mika), 막시밀리언 해커(Maximilian Hecker),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 등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팝 뮤지션들이 더 부각되어 있었고 재즈 뮤지션들 역시 대중적인 스타일이 부각된 뮤지션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정통 재즈 페스티벌이라기보다는 팝 재즈와 팝이 결합된 페스티벌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한 페스티벌이었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지향한 이러한 컨셉트는 페스티벌의 초기부터 이어진 컨셉트였으나 실내에서 진행된 서울재즈페스티벌은 큰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야외로 공간을 옮긴 2012년부터 본격적인 호응을 얻기 시작했고 올해에는 올림픽공원의 88 잔디마당을 가득 채울만큼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냈다. 그새 재즈 팬들이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이 도심에서 열리는 인접성 좋은 페스티벌이며, 대중적인 라인업을 갖춘 페스티벌이고,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이 개척해놓은 공간과 컨셉트를 활용해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같은 분위기를 더 가까운 서울에서 즐길 수 있게 한 이 같은 방식은 현재 열리고 있는 페스티벌의 장점만을 영리하게 모아놓은 방식이었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 데미안라이스 공연 모습.
 
   
서울 재즈 페스티벌 데미안라이스 공연 모습.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와 데미안 라이스 덕분에 5월 18일 둘째날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찾은 관객은 첫날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나 있었다. 올림픽공원 잔디마당은 돗자리를 깔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북적였다. 네 개의 무대 가운데 메이 포레스트(May Forest)와 스프링 가든(Spring Garden)은 빈 공간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객들이 들어찼다. 그리고 메인 무대 격인 메이 포레스트에서는 부담 없는 공연들이 이어졌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 로이하그로브퀸텟 공연 모습.
 
정성조 빅밴드와 써니 킴은 빅밴드 재즈의 고전들을 경쾌하게 연주했고, 테이프 파이브(Tape Five)는 스윙감이 넘치는 곡들을 일렉트로닉하게 변주해 난이도가 낮고 트랜디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로이 하그로브 퀸텟(Roy Hargrove Quintet)은 레귤러하고 정석 같은 재즈 연주를 들려주었으나 관객의 호응은 가장 적었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찾은 관객들이 어떤 층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들은 재즈 애호층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어서 등장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과거의 내한 공연 때보다 훨씬 차분해진 모습으로 그들의 히트곡을 잔잔하게 들려주었다. 쏟아지기 시작한 빗방울도 그들을 보기 위해 온 관객들을 돌려보내지 못했다. 어쿠스틱 기타와 남성 2인조의 화음으로 펼쳐진 멜로디컬하고 어쿠스틱한 인디 팝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한편 히로미 더 트리오 프로젝트(Hiromi The Trio Project)는 변함없이 록킹한 히로미의 터치에 베이스와 드럼의 힘을 가미함으로써 록 밴드의 공연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더욱 굵어진 빗방울 아래 등장한 데미언 라이스는 어쿠스틱 기타 한 대와 피아노 그리고 이펙터와 함께 자신의 목소리로 올림픽공원 잔디 광장에 모인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전해주었다. 또렷하고 거침 없으며 애절한 목소리와 마음을 내려치는 것 같은 기타 스트로크, 그리고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분명히 일러주는 멜로디는 음악의 기본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옮겨가는 대화임을 증명했다. 가사와 멜로디 안에 담긴 진심과, 진심을 진심으로 느껴지게 하는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그 진심 같은 목소리는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와 그의 노래밖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 속으로 관객들을 몰아넣었다. 헤어나올 수 없는 90분이었다.

그러나 어떤 뮤지션의 공연 때는 귀 기울여 듣던 음악은 어떤 뮤지션의 공연 때는 BGM이 되었다. 모든 출연진의 공연에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듣는 이는 드물었다.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주인공은 이제 더 이상 음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뮤지션의 음악을 음반을 사서 듣는 이도 많지 않은 현실이었다. 공연 시장과 페스티벌 시장은 성장했지만 음반 시장마저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음악과 레저, BGM과 놀이 사이에 현재의 페스티벌 시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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