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국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가리키는 지향점은 한반도 평화인가, 한반도 전쟁인가.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이후 전쟁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한반도의 위기 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과연 마련될 것인지, 기대와 관심이 자못 클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는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코드명을 ‘새 시대’로 붙여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선언’을 통해 향후 수십년을 내다보는 한․미 양국 관계의 발전방향에 대한 비전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제시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미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오바마 미국 대통령
 
한반도의 위기 국면을 전환할 거대한 제안이나 획기적인 구상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마저 감돌았다. 한반도의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고 절박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회담 결과는 양국 정상들이 기존의 원론적인 원칙과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으로 끝나고 말았다. 국면의 전환은커녕 오히려 대결 국면이 또다시 터지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두 정상이 북한에게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이 먼저 도발을 중지할 뿐만 아니라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북한의 ‘선 변화’ 요구가 되풀이된 꼴이다.
 
박 대통령은 “미․중과 다른 강대국들이 북한이 변화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선택의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죽하면 미국 CBS 기자가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상당한 강경정책’이라고 평가했겠는가. 유화 아니면 강경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던 대통령 후보 시절의 공약조차도 유명무실해진 것인가.
 
미국 백악관도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면, ‘점진적 관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중지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경제지원을 하고 제재를 조정하는 점진적 조치를 취하는 게 미국의 대북정책인 ‘점진적 관여’라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두 정상 모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적대적 대결을 벌인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이 뭐가 다른가. 
 
오바마 1기 때의 ‘전략적 인내’와 2기의 ‘점진적 관여’에서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한반도의 긴장과 위기의 해소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 나라가 한․미 관계를 글로벌 동맹관계로 확대하기로 합의하고 정치․안보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기로 했으니,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어가 아닌 미국의 군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반도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전략적 유연성이 더욱 확대되지 않겠는가. 한반도가 자칫 국제분쟁의 전진기지로 전락해 국제분쟁에 휘말릴 위험성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두 정상이 바라는 대로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과연 있겠는가. 미국과 중국의 대립구도인 정전협정체제가 지속되는 한, 박 대통령이 바라는 만큼  중국과 러시아 등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해 줄 리도 없다. 정전협정체제의 대립구도에서 북한이 갖게 되는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변화만을 촉구하며 거의 1년 내내 벌어지는 한미 군사훈련 등으로 군사적 압박을 가할수록 북한은 핵무장 능력 강화에 더욱 집착하게 되지 않겠는가. 지난 5년 동안 한국과 미국이 온갖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가했으나 그 결과 두 차례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북한의 핵무장 능력만 키워준 꼴이 되지 않았는가. 
 
   
북한 TV에서 방영한 북한 미사일 발사 장면
 
이명박 정권이 ‘비핵개방 3000’에 따라 ‘핵문제 해결 없이는 개성공단은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면서 이미 남북 간에 합의된 근로자 숙소 건설을 거부하는 등 모든 투자를 중단하면서 개성공단 사태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최근 한반도 위기 때 김관진 국방장관이 남쪽 근로자 ‘억류 가능성’, ‘인질’ 상황 발생시 ‘미 특수부대 투입’, ‘핵공격 징후시 선제타격’, ‘5일 내 적 70% 궤멸’ 등 북한에 대한 위협적인 발언을 쏟아낸 끝에 개성공단의 잠정적 폐쇄 사태를 맞고 말았다. 
 
김 장관의 발언들은 전시작전권도 없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었던가. 오죽하면 예비역 장성들 모임에서 “원점 타격을 한다면 어떤 무기 체계로 할 수 있겠는가” 의문을 제기했겠는가.
 
개성공단의 한국 기업들이 북쪽에 주는 임금 액수보다 수십배의 순익을 보고 있었음에도 보수세력은 개성공단이 북한 지도부의 ‘달러박스’, ‘돈줄’ 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폐쇄하지 않는다는 등의 자극적 발언들을 쏟아내 사태를 악화시켰다. 결과야 어찌 되든 기분 내키는  대로 해대는 무책임한 행위들이라는 비판을 어찌 생각하는가.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안보위기가 높아지면, 남북간 협력사업의 상징으로서 남북 모두에게 공동의 이익을 창출했던 개성공단 사업도 금강산 관광 사업처럼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공단이 폐쇄되고 공단에서 물러났던 북한군 2개 사단과 1개 포병여단이 다시 진주하게 된다면, 이로 인한 남북간 군사적 긴장과 위기가 얼마나 더 악화되겠는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위기가 심화될수록 이에 따른 군비 증강과 주한미군 주둔 비용 증대 등의 우리의 경제적 부담도 부쩍 늘어나게 될 것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한반도 위기 프로세스’로 되려는가.
 
한반도 위기는 이미 구조화 단계로 심화되고 있다. 한반도 위기가 충돌 단계로 심화되기 전에 근본적인 해결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도 좋지만, 60주년의 ‘정전협정체제’를 종식시킬 ‘평화협정체제 선언’을 위한 구상과 노력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한반도 위기의 구조화가 초래할 종국적 결과는 한반도 전쟁과 민족의 공멸 아니겠는가. 
 
한반도 전쟁 상태를 종식시킬 평화협정 문제는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6년 11월 하노이,  2007년 9월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두 차례 제안했었다. 오바마 행정부 1기 때에도 ‘힐러리 해법’으로 평화협정 문제가 세 차례 거론됐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대화의 조건으로 북한의 진정성을 요구하지만, 북한도 한국과 미국쪽이 약속을 어겼다며 한반도 위기에 대한 책임을 주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 구상’이 실현되길 진정으로 바란다면, 적대지향적 발상을 평화지향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선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프로그램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북미 양자 대화든, 4자회담이든, 6자회담이든, 대화의 물코를 찾아 근본적인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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