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편집국 구성원들이 투표 결과 압도적인 비율로 지난 1일 회사가 낸 이영성 편집국장 경질 인사를 거부하기로 6일 결정했다. 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 이영성 국장은 회사의 인사 조치에 따르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했고, 한국일보 기자들은 회장실을 항의 방문했다.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정상원)는 6일 오후 비상총회를 열어 지난 3일부터 6일 오후 12시까지 실시한 이영성 편집국장 보직해임 거부투표 결과 98.8%의 편집국 구성원들이 이영성 편집국장의 해임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찬성과 무효표는 각각 1표에 불과했고, 재적 193명 중 투표에 참여한 인원은 167명(투표율 86.5%)이었다. 
 
한국일보 노사가 지난해에 마련한 편집강령규정(제8조6항)은 “편집국장이 편집강령을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인사권자가 취임 후 1년 이내에 편집국장을 보직 해임했을 경우 편집국원 재적 3분의2 이상이 반대하면 인사권자는 편집국장에 대한 보직 해임을 철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일보 편집국 입구에 편집국장 임면 신임절차 투표를 알리는 안내문과 노보가 붙어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영성 편집국장은 편집국 구성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총회에서 이 같은 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 마이크를 잡고 “회사가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노조, 또 편집국 여러분들과 대화를 거부한 채 계속 불법적이고 부당한 자세를 고집한다면 저는 기자 여러분들과 함께 지금처럼 단호하고 완강한 투쟁의 대열에 설 수밖에 없음을 밝혀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이번 인사는 5일전 사전 통보하는 절차를 어겼으며, 보복인사를 금지하는 법원 판례에도 어긋나며 국장 지명 그리고 임명동의 그리고 나서 부장단 인사를 한다는 관례도 깨뜨린 상식 밖의 불법적 조치였습니다”라며 “오늘 나온 편집국 표결 결과는 한국일보의 기자정신이 살아 있음을 웅변해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또 “인사에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회사 압박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 대다수 신임 부장들은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와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인사에서 편집국장으로 승진한 하종오 사회부장을 비롯한 간부급 인사들은 현재 따로 모여 편집회의를 하는 등 사실상 ‘이중 편집국’ 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대위는 기자들에게 이들의 전화나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행동요령을 전달한 바 있다.
 
이 국장은 “회사가 이런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사과하고 원상회복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그 즉시 물러나겠습니다”라며 “장재구 회장께서는 한국일보를 재건하고 우리 공동체를 살리는 용단을 내려주시기를 진심으로 청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편집국 구성원들은 이 같은 투표 결과와 함께 △기존 인사안 철회 △회장, 사장 등 인사 책임자의 사과 △인사 사태 이후 지면 제작에 차질 빚게 한 회사 관계자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 △편집강령 규정 보강 및 편집권 독립 보장 등의 요구사항을 사측에 전달했다. 
   
총회를 마친 조합원들은 6층 장재구 회장실 앞으로 이동해 규탄 구호를 외치고 총회 결과를 전달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사측은 이번 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측 관계자는 6일 통화에서 “작년 5월1일 발령이 나면서 이영성 국장 체제로 바로 신문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노사가 (편집강령에) 사인한 건 5월8일”이라며 “실제 이영성 국장은 해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취임 후 1년 이내’라는 규정에도 어긋나고, 적용 대상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노조에서도 안 되는 걸 알면서 (투표를) 진행한 것 같다”며 “계속 이렇게 하면 징계를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어차피 검찰 수사가 시작됐으니 결과를 지켜보되, 인사 난 건 따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조는 이영성 국장이 임명동의 투표를 거쳐 정식으로 취임한 5월10일을 임기 시작일로 보고 있어 투표 대상이 된다는 입장이다. 
 
정상원 비대위원장은 “지금까지는 이 안(편집국 안)에서만 구호를 외쳤다”며 “이번에는 한 번 (회장실이 있는) 6층으로 내려가서 우리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편집국 구성원들은 일제히 박수로 화답했고, 100여명이 정 위원장을 따라 회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부당인사 불법인사 즉각 철회하라!’, ‘경영파탄 책임지고 장재구는 물러나라!’는 등의 구호를 함께 외쳤다.  
 
한편 박진열 사장은 5일 사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발행인의 허가 없이 1면에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고발장 내용을 게재해 회사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신문 제작을 방해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법과 사규에 따라 향후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6일 오후 2시경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언론노조 한국일보 지부 조합원들이 총회를 열어 국장임면 신임절차투표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관련기사: <한국일보 노조, 장재구 회장 상대로 '전면전' 나서나>)
 
앞서 지난 달 29일, 비대위는 검찰에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지난 2006년 중학동 사옥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회사 자산인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해 결과적으로 200억원 상당의 손해를 회사에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검찰은 3일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힌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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