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이 서해상에서 침몰한지 3년여가 지나면서 언론과 정치권 대신 영화계가 왜 의심도 하지 못하게 하느냐는 관점에서 진상규명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작품가운데 지난달 27일 상영된 ‘천안함 프로젝트’(기획·제작 정지영, 연출·편집 백승우)는 일부 전망과 달리 의외로 많은 관심을 얻었다.

논쟁적이며, 격렬하기까지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것도 한 이유이지만, 천안함 사고 초기부터 제기돼왔던 기본적인 의문점을 적나라하게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가설로 소개한 좌초와 충돌가능성은 사건초기에 많은 이들이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했으나 국방부와 민군 합조단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됐다. 제작진은 그래서 아예 좌초, 충돌 가능성을 시종일관 제기해온 두 인물을 심층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구성했다.

특히 TOD 카메라로 직접 폭발(또는 고열)시 온도변화를 측정하는가 하면, 3년 가까이 공개되지 않았던 백령도 탐사결과 촬영된 수중암초의 스크래치(긁힌 흔적)를 공개했다. 가장 금기시돼온 잠수함 충돌설을 수면위로 드러내고 거친 표현도 과감하게 영화 속에 담았다. 이에 따라 천안함의 좌초 내지 충돌 가능성도 재조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안 20m 수중암초 긁힌 흔적 등장… 천안함, 과연 이곳까지 왔을까=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처음 공개된 장면은 백령도 근해의 수중암초에 긁힌 흔적을 촬영한 영상이다. 영화에서는 불과 30초도 채 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해저에 수심 4.6m까지 돌출된 암초의 일부분에 붙어있는 굴껍질 상당량이 벗겨진 흔적은 무언가가 긁고 지나간 듯한 추정을 가능케한다.

선박전문가들은 수심 4.6m의 해저지형에 스크래치를 내는 것은 일반 어선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적어도 1000톤급 이상의 대형 선박이나 흘수선(물에 잠기는 선)이 깊은 첨저선, 대형 군함이어야 가능하다는 것. 천안함은 1200톤급 대잠 초계함이며 흘수선은 3m 가량이다. 4.6m 수심은 천안함 정도의 군함에겐 부딪힐 여지가 있는 깊이로 선박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한 장면(왼쪽)과 수중암초 스크래치.
©아우라픽쳐스
 

이 같은 영상은 지난 2010년 6월 국회 천안함침몰사건특별위원회 소속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가 백령도 사고해역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촬영됐다. 이 영상 속의 수중암초는 천안함 사고 직후를 관측했던 247초소의 백령도 초병(박일석, 김승창)의 진술서에 따라 247초소로부터 방위각 170도 방향의 1.8k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로, 그 연결부위의 일부가 간조 때 수면위로 돌출되기도 한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해안에서 약 20m 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근해에 있다. 백령도 어민들은 이 바위의 명칭을 ‘홍합여’라 부른다고 이 대표는 전했다.

이 같은 암초충돌 정황이 입증되려면 이 암초의 스크래치를 천안함이 낸 것인지, 그렇다면 천안함이 경계활동 중 야간에 이 암초가 있는 백령도 근해까지 온 것인지, 시간은 언제인지, 천안함 항적에는 이 같은 기록이 있는지 등이 함께 밝혀져야 한다. 이 암초지대는 사고해역(백령도 연화리 초소로부터 서방 2.5km)과도 2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군은 사고해역에는 암초가 없다고 여러차례 좌초설을 부인해왔다.

그러나 지난 2011년 여름 법정에 출석한 해경 501함 부함장(유종철)은 사고직후 좌초전문을 받았다고 증언했으며,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심승섭 준장)은 ‘당일 9시15분에 좌초됐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증언해 좌초 가능성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배를 두동강(또는 세동강-가스터빈외판도 분리)낸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 해도 분명 ‘좌초’의 정황은 남아있는 것이다.

▷‘제3국 잠수함론’… 한미합동훈련과 천안함 정말 무관한가= 이와 함께 ‘천안함프로젝트’에서는 민군합조단 민간위원이었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의 잠수함 충돌론을 상세히 반영했다. 신 대표는 영화에서 UDT 대원 고 한주호 준위가 함수나 함미 침몰지점이 아닌 제3의 지점(용트림 바위 앞)의 수중에서 작업했다는 의혹(KBS ‘제3의 부표’)을 근거로 이 같은 가능성을 역설했다. 당시 제3의 부표 지점에 있던 검은 구조물이 60m 정도 크기로 함수나 함미의 크기와 상이했다는 증언도 신 대표는 들었다. 그는 천안함을 들이받은 것이 제3국의 잠수함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서해상에는 한미합동훈련이 실시되고 있었던 시기였으며, 제3의 부표 주위로 날아다닌 헬기가 날랐던 물체의 실체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느냐는 의문도 소개됐다. 미 7함대는 홈페이지를 통해 당시 환자를 구조하는 훈련을 하는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사고 이후 미군이 일제히 조기를 게양하고, 당시 스티븐스 주미대사가 백령도까지 방문한 것은 이례적이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문제는 사고주변에 잠수함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직 밝혀지지 않아 잠수함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라는 점이다.

▷TOD 열전도 실험 확연한 차이, 천안함 분리순간 영상 과연 없을까= 이번 영화에서 많은 관심을 모은 대목은 TOD(열상감시장비) 카메라로 수온변화를 감지하는 실험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TOD 상에서는 열기가 있는 대상은 검게 나타난다. 백령도 TOD초소에서 관측한 천안함 사고 동영상에서는 천안함이 분리된 직후에도 열감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작진이 실제 인천 앞바다에서 쇠붙이를 349도까지 달궜다가 바닷물(5도)에 담근 뒤 다시 꺼낸 뒤의 바닷물 표면은 검게 나타났다. 영화에서는 천안함을 관측한 TOD 동영상과 실험장면이 담긴 TOD 두장면을 비교해 상영했다.

   
암초지대 그래픽(왼쪽)과 TOD 실험비교.
©아우라픽쳐스
 

이에 따라 천안함 TOD 동영상의 전체 분량이 모두 공개돼 더욱 정밀한 분석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TOD 동영상이 있는 다른 초소의 모든 자료가 함께 공개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30일 “수중암초를 긁었다고 배가 쪼개지겠느냐”며 “TOD 수온변화 감지는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개인이 한 것도 아니고 전문가들이 와서 본 것으로, 문제가 있다면 이미 그 때 문제제기했을 것”이라며 “0.1% 가능성으로 99.9%를 덮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정지영 “영화도 안보고 사설 쓴 동아일보야 말로 확증편향”
[이모저모] “영화 본 뒤 혼란으로 생각하는 것 역시 소통”

⃝…“이 영화가 공개되면 평점은 1점 아니면 10점일 것이다.” 지난 27일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대중들 앞에 처음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정지영 제작, 백승우 연출)를 본 후 한 관객은 이렇게 평했다. 아직 이 영화의 정식 개봉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고 정지영 감독의 우려대로 극장 상영이 금지될 수도 있지만 ‘미 관람 관객’들의 평점은 실제로 극과 극을 보인다. 30일 오후 기준으로 네이버 개봉 전 평점은 1.39점이지만 다음은 8.5점이다. 다음의 관람 후 평점은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10점 만점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를 연출한 백승우 감독은 소통을 이야기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오히려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는 한 관객의 질문에 “정부와 군의 얘기는 이미 언론에 많이 얘기됐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를 충분히 실어보자고 했다”며 “감독으로서 질문을 던진 것이고 관객이 1점이든, 10점이든 나름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그걸 혼란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결국 소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백 감독은 “이 영화가 범인을 찾고자 하는 영화는 아니다”며 “이 사회가 굉장히 경직돼 있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기자나 방송이 해결해야 할 게 아니라 문화나 철학계에서 제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전체 내레이션과 영화 후반부 법정신(scene)의 변호사 역을 연기한 배우 강신일씨는 “다양한 시각에서 의문점을 던져 줘야 건강한 문화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영화가 끝난 뒤 제작진과의 뒤풀이에서 “(천안함 사고직후 북한어뢰에 의해 피격됐다는  정부발표를 보고) 일부 연기자들 사이에서 ‘그게 가능할까’라는 말을 나눴던 기억이 난다”고 소회를 전달하기도.


   
정지영 감독
이치열 기자 truth710@
 


⃝…<천안함프로젝트> 상영 이후 갈등과 혼란을 초래하는 영화라는 동아일보와 국민일보의 비난도 나왔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심리학에 나오는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는 말을 쓰면서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수용하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걸 말하는데,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얘기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그런 것 같다”며 “정 감독을 포함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번만이라도 평택 2함대 사령부에 전시돼 있는 천안함을 보거나 백서를 읽어 봤는지 궁금하다”고 비난했다. 이에 정지영 감독은 30일 “영화에서 요구하는 의문을 풀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본인들이야말로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스스로 의심을 저버린 것”이라며 “특히 천안함 백서를 안봤다는 주장은 영화도 안보고 사설을 썼다는 걸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감독은 “영화를 안보고 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확증편향”이라고도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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