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7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문화제’가 열렸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사람들의 손에는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군형법 제95조 6 폐지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있었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 옷을 입은 이들도 눈에 띠었다.

오늘의 문화제는 동성애자인권운동 활동가 故 육우당 10주기를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육우당은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 청소년 활동가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의 동성애차별 조항 개정 운동 등을 벌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10년 전인 2003년 4월 25일,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유서를 남긴 채 동인련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 27일 7시 덕수궁 앞에서 열린 고 육우당 추모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공연을 보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의 본명은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친구들은 추모기도회에서 그의 사진을 공개할 때 외부에 공개되지 않게 해달라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해야만 한다. 그는 본명 대신 ‘육우당’이라는 호로 불리고 있다. 그는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가 자신의 여섯 친구라며 자신의 호를 육우(六友)당이라고 지었다. 
 
그는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혔지만, 세상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따돌림을 당한 뒤 자퇴를 했고, 병원에도 찾아갔다. “담당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이 곳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이성애자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혹시 그런 기대를 하고 오신 건가요?” 라고 했다. 의사 말이 맞다. 난 이성애자가 될 수 없을뿐더러 되고 싶지도 않다. (중략) 난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른손잡이가 있으면 왼손잡이가 있는 것이고 이런 길이 있으면 저런 길도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장 많이 다니는 길'을 걷는다면 난 단지 ‘인적이 드문 길'을 걷고 있는 것뿐이다.”(육우당 일기)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이반 살이 어떻소.
말도 마라. 이반 살이 개집 살이 살 떨린다.
온종일 살얼음 디디듯 불안해서 못 살겠다.
 
부모님은 충격새요. 친구들은 놀림새요.
목사님은 설득새요. 나 혼자만 미운 오리 새끼.
힘겨운 하루하루가 아수라의 귀신같구나.
 
형님, 형님 어쩌겠소. 우리 팔자 다 그렇지.
종로에서 술이라도 한잔 하십시다.
그러자. 오랜만에 잔뜩 취해나 보자꾸나.
 
- 故 육우당 추모시집 “내 혼은 꽃비 되어” 중
 
그는 2002년 가을 동인련에 편지를 보내 자신도 활동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동인련은 “물론이지. 언제라도 환영이야”라는 답변을 보냈다. “동인련 사이트에 나도 동인련에서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해 글을 올렸다. ‘물론이지. 언제라도 환영이야'라고 답 글이 달렸다. 아, 다행이다.”(육우당 일기) 그 뒤 그는 동인련 사무실에서 생활하며 ’준상근자‘로 활동했다. 그는 동인련의 회의와 집회에 꾸준히 참석하며 동성애자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독실한 신자였지만 그는 종교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다. 2003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에 있는 동성애자 차별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그러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성명을 발표하며 동성애 혐오를 드러냈다. “동성애로 성문화가 타락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진노로 유황불 심판으로 망했다. 성경은 동성애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인권위는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 
 
   
▲ 덕수궁 앞 고 육우당 추모문화제 현장
 
 
육우당은 자신의 일기에 한기총 성명을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기분 나쁜 건,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가 동성애자들을 마치 죽어서 지옥에나 갈 흉악한 무리인 듯 성명서를 썼다는 점이야. 정말이지 짜증나. 예수님은 분명,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그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들이 고귀한 인권을 유린하고 마치 자기네들이 하느님인양 설쳐대니까 말야” 
 
시인이 꿈이었던 육우당은 시를 통해서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를 비판했다. “예수를 믿어야만 천당 간다 하기 전에 목사님 행실이나 올바르게 하시지요. 죽어서 무슨 낯으로 주님 뵈려 하나요”(육우당, 목사님) “소돔과 고모라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 이야기 가식적인 십자가를 쥐고 목사들은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우리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발악하고 만일 우리가 떨어진다면 예수님이 구해 주시겠지 창녀와 앉은뱅이에게 사랑을 베푸셨듯이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보여 주시겠지. 푹신한 솜이불처럼 따뜻한 사랑을”(육우당, 현실)
 
동성애를 차별하는 현실과, 기독교와 싸웠던 그는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4월 25일 육우당은 동인련 사무실 문고리에 목을 매 숨졌다. 여섯 장의 유서와 동인련에 기부하겠다며 34만원의 전 재산을 남겼다.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육우당의 유서 중)
 
육우당의 죽음 이후, 한기총이 반대했던 청소년보호법의 동성애차별 조항은 삭제됐다. 2010년부터 경기, 서울 등에서 “임신ㆍ출산ㆍ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기독교 단체들은 ‘아이들에게 항문성교를 가르친다’며 반대에 나섰지만 성소수자들과 청소년 인권활동가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한 이들이 서울시 의회에 점거한 결과 학생인권조례가 시의회를 통과 했다.
 
   
▲ 4월 22일 동성애자인권연대.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위원회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육우당의 죽음 이후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동성애자들은 사회적 차별과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용린 교육감과 보수 세력은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벌이고 있다. 동인련과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위원회가 지난 4월 22일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주간을 선포하며 동시에 학생인권조례 무력화 시도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이유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성적 지향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민홍철 민주통합당 의원이 군대 내 동성애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의 군형법 개정안(92조 6조항)을 내세웠다가 동성애자 단체들과 인권단체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육우당을 추모집회에 모인 이들의 손에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군형법 제95조 6 폐지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있었던 이유다.
 
이 날 문화제에 참여한 동인련 활동가 형태씨는 “법률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환경적으론 똑같은 거 같다”며 “2003년이나 2013년이나 10년 전 열아홉 살이던 육우당이 처한 현실이나 지금 열아홉 살인 청소년들이 처한 환경이나 똑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황이 나아졌다기보다 더 나아가기 위한 길을 만들어가는 행동들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고 육우당 추모문화제에 참여한 진보신당 청소년위원회의 피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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