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칭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 사업이 무너졌다. 불과 최근까지 사업이 휘청거림에도 대마불사를 외치며 정상화 가능성을 점쳤던 언론들이 일시에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태도로 돌변했다. 예상되었던 결과에 뻔 한 반응이다. 이제는 수많은 이해타산들이 오가며 법정에서 지루한 책임공방이 예정되어 있다. 일단은 시행법인인 드림허브를 함께 만들었던 민간투자자끼리 이전투구가 예상된다.

2010년에 삼성물산의 지분을 넘겨받아 용산역세권개발의 최대 주주로 등장한 롯데관광개발은 용산개발과 회사의 명운을 함께 하고 있는 탓에 코레일의 책임을 강조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의해 무리하게 용산개발 사업에 포함된 서부이촌동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당연히 사업자와 서울시의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긴 사업 추진기간 만큼 긴 청산과정이 예상된다.
 
애초 4조원 정도로 추산된 철도정비창의 땅값이 8조원까지 뛰어 올랐고, 거기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보상비가 3조 원가량 추가되었다. 2008년 이후 부동산 경기가 하향그래프를 그리면서 사실상 시세차익을 통한 개발이익 역시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상황인데도 오히려 적신호보다는 청신호가 많이 보였다는 점이다.

언론보도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용산국제업무지구’와 ‘문제점’을 키워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제공하는 기사검색을 활용해보면, 대부분의 기사가 올해 3월에 몰려있다. 그나마 적신호를 보였던 시점은 삼성물산의 소극적인 투자 논란이 불거진 2010년, 그리고 롯데관광과 코레일이 주도권 싸움을 벌였던 2012년 잠깐을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의 시장성과 사업성을 높이 치는 기사였다. 대표적인 것이 3월 16일, 그러니까 채무불이행 일주일 전에 쏟아 낸 ‘용산역세권개발에 3%대 자금조달’ 기사이다. 단지 민간금융회사가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것뿐인데도 사업자가 낸 보도자료에 발 맞춰 우호적인 기사를 내는 것을 물론이고 친절하게 ‘3%대 금리가 의미하는 것은?’이라는 식의 미담기사까지 곁들어 졌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결국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사진은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 모습 © 연합뉴스
 
기본적으로 취재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언론사의 속성상 일차적인 책임은 취재원에게 있다. 사업자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특히 서울시나 정부와 같은 공공행위자의 책임은 크다. 알다시피 서울시는 그간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 대하여 ‘민간에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서울시가 말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필요하면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개발반대 움직임이 본격화되던 2011년에 서울시는 SH공사를 내세워서 서부이촌동 주민에 대한 보상업무를 차질 없이 이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올해 1월에도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자료 형식으로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민찬반여론조사가 사업의 정상적인 추진을 도모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말했다.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있던 3월 18일에도 서울시는 비상대책반을 가동해서 사업시행자의 요구사항에 대해 최대한 수용하는 등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런 서울시의 태도는 언론을 통해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심리로 강화된 셈이다.
 
이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청산과정에 접어든 만큼 정확하게 따질 것은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첫 번째는 사업의 시초였던 개발계획의 타당성에 대한 규명이다. 즉, 애초 용산역세권 개발에서 시작된 사업이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으로 확대변경 되어 추진된 과정이 적절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여기서의 일차적인 당사자는 서울시다. 한강 수변권 개발이라는 방침을 통해서 서부이촌동을 사업계획에 포함시킨 것이 과연 적절했는지 짚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민간투자자들이 당초 자신들이 약속했던 투자금을 내놓았는가라는 점이다. 실제로 코레일 등 30개 회사가 출자하여 만든 금융투자회사의 자기자본비율이 3.77%에 불과했다.

통상적인 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의 10∼20%와 비교하면 1/3에서 1/6에 정도다. 민간투자자들의 선제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투자자들이 선뜻 사업투자를 나설 리 만무하다. 이 부분 역시 책임소재가 확인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사업추진에 따른 피해 규모의 확인이다.

현재까지는 주로 재무 투자자들의 피해만을 다루고 있는 상황이지만 좀 더 직접적인 피해는 서부이촌동 주변의 상인들이 지고 있다. 구멍가게, 문구점 등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린 지역의 상권으로 먹고 살았던 상인들은 졸지에 맨 손이 되었다. 게다가 보상기준일은 2007년 8월로 못 박은 탓에 상가거래 역시 불가능한 상태로 허송세월을 했다. 롯데관광과 같은 투자자들이야 기대이익을 바랄 수야 있었겠지만 이곳의 상인들은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김상철 진보신당서울시당 사무처장
 
냉정하게 보면 용산지역의 각종 개발은 필요성과 타당성을 충족시킨다. 그럼에도 고층 위주의 개발, 대규모 위주의 개발로 인해 과도하게 기대 이익을 부풀렸다. 즉 현실 가능한 가치를 넘어서는 기대 이익의 팽창이 진행된 것이다. 이렇게 공갈빵같이 파이를 키워놓은 이들이 곧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가 되었다. 이런 서글픈 현실의 이면에는 대형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일종의 투기적 관성이 있다.
 
따라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의 청산을 말하려면 단순히 재무적인 측면에서의 비용 청산만이 아니라 그것이 야기한 각종 사회적 갈등과 부작용을 감안한 ‘사회적 청산’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사업’이라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등장하고 만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 대한 ‘사회적 청산’의 첫 단추는 명확한 책임관계 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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