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부한 1만 원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5톤이나 줄일 수 있다면 어떨까. 5톤이라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쉽게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인 한 명이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14톤 정도라고 할 때 3만 원만 기부하면 내가 1년 동안 쓴 온실가스에 대한 값을 치르고도 남는다는 말이 된다.

온실가스는 대기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기체 가운데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가스를 말한다. 6대 온실가스로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이 있다. 2010년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연간 국내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6억7000만 톤에 달한다. 이는 개인들의 냉난방기 사용과 기업의 공장 가동, 국가 화력발전 등과 같은 직접배출량과 우리가 소비하고 사용하는 모든 제품의 부품과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배출량을 모두 합한 수치다. 이를 국내 총 인구수로 나누면 인구 1인당 연평균 14톤 정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 연료의 종류에 따라 다르나 기업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드는 비용으로 보면 된다. 유럽 탄소배출권거래소에 작년 11월 기준으로 거래되는 배출권 톤당 가격은 2000원 정도다. 하지만 배출권은 주식과 유사한 개념으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거래 가격도 변한다. 유럽의 경우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배출권 가격이 10분 1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2~3년 전까지만 해도 배출권 거래 가격과 온실가스 감축 비용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뤘다. 현재 배출권 거래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한국에서는 정부구매가격 기준에 따라 톤당 5000원으로 책정돼 있다.

   
▲ 국내 최초로 추진되는 배출권 소각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
 
착한탄소기금으로 온실가스 없애기 프로젝트 국내 도입

이처럼 내가 쓴 온실가스 비용을 내 돈을 주고 치를 수 있다는 발상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현실화 되고 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이보현(23)씨는 지난달 온실가스 감축과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이산화탄소 10톤에 상당하는 탄소기금을 기부했다. 평소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생활 속에서 전기절약 실천 등 사소한 것이어서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착한탄소기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착한탄소기금이란 아직 기후변화협약 비의무감축국인 한국에서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탄소 감축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에게 기부를 받아 기업으로부터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들이는 프로젝트이다. 온실가스를 줄여 확보한 배출권 판매 이익은 다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활동(나무 심기, 태양광발전소 건설, 몽골 사막화 방지 등)을 위해 재기부 된다.

이씨가 생각하는 착한탄소기금은 ‘온난화 방지를 위해 시민과 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대형 프로젝트’다. 그는 “탄소배출권을 사들임으로써 온실가스의 잠재적 배출량을 막고 탄소 흡수원인 나무를 심는데 기여할 수 있어서 (환경보전에)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미 유럽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배출권 소각(burn)이 이뤄지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배출권거래제 감시 시민단체인 샌드백(Sand Bag)은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사들여 탄소파괴인증서(Carbon Destruction Certification)를 발행해 배출권을 소각해왔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이런 자발적인 배출권 소각이 증가함에 지난해 9월 정식으로 관련 인증 제도도 마련했다. UNFCCC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전 세계적으로 12만 톤 이상의 배출권이 소각됐다.

   
▲ 연간 국내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6억7000만 톤. 이를 총 인구수로 나누면 인구 1인당 연평균 14톤 정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결론이 나온다.
 
자본주의적 탄소시장에 개입하는 대안 되나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이 2012년 5월 14일 제정됨에 따라 2015년 1월부터 온실가스배출권을 시장에서 사고파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정해 지키지 못하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착한탄소기금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와 다른 점은 실질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드는 데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가 배출권을 사들인 기업이 그만큼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반면 탄소기금 등을 통한 배출권 소각은 탄소시장에서 배출권을 사들여 온실가스가 다시 배출되지 않도록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다. 사라진 배출권만큼 온실가스는 줄어들게 된다.

국내에선 지난해 말부터 환경운동연합과 창업벤처 회사 (주)토람이 공동으로 착한탄소기금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1톤당 2000원 정도로 UNFCCC 등록 기업에 배출권을 사들이고 있다. 3일에는 한국지역난방공사로부터 사들인 1859톤의 온실가스 배출권을 소각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태양광 발전, 쓰레기 매립가스사업 등을 통해 지난 2009년부터 2011년 10월까지 13만 톤가량의 배출량을 줄여 ‘온실가스 배출권’ 인증을 받았으며 이번에 소각된 양은 태양광 발전을 통해 확보한 배출권 전부이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배출권 판매수익 전액을 서울환경운동연합의 나무심기 프로그램에 기부했다.

   
▲ 착한탄소기금 탄소배출권 소각 인증서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탄소기금은 시민들이 참여해 자신뿐만 아니라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방식의 배출권 거래제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배출권이 없어지면 배출권 가격이 높아지면서 기업들도 배출권을 사려는 비용보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효과가 커지기 때문에 배출권 시장에 긍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인환 서울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3일 “국민 1인당 쓰는 14톤의 탄소는 전 국민을 5천만 명으로 추산할 때 하면 3조5000억 규모”라며 “온실가스를 줄여나가는 운동에 NGO와 기업이 열심히 도우면서 정부와 전 국민이 탄소를 줄이는 데 앞장서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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