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120부작 드라마 <구암 허준>이 18일부터 방영됐다. 호흡이 긴 사극이 일일드라마로 편성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재철 MBC 사장이 진두지휘했다’는 말이 들릴 만큼 MBC가 이 드라마에 거는 기대는 크다. 장근수 MBC 드라마 본부장은 지난 13일 오후 경남 진주시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동의보감'의 발간 400주년이 되는 올해, '구암 허준'을 방송하는데 4번 타자가 돼서 대박 홈런을 쳐줄 것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하락한 MBC 시청률 경쟁력을 끌어올릴 카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은 지상파 3사 가운데 ‘꼴지’다. 시청률 조사기관 AGB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구암 허준의 18일 시청률은 6.7%이다. 동시간대 방송된 KBS1 <9시뉴스>가 24.6%, SBS <생활의 달인>은 8.5%를 KBS2 <위기탈출 넘버원>은 7.2%을 기록했다. ‘9시 시간대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던 MBC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는 시청률이다.  
 

   
 
 

이번 드라마 편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한 MBC PD는 “전체적인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드라마 편성이 유리하겠지만 사극이 일일드라마로 편성된 점이 색다르다, 이런 편성이 시청 패턴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 것인지 개인적으로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좀 더 직접적인 비판도 나온다. 다른 드라마 PD는 “사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분장이나 세트 제작, 촬영 등에서 현대물보다 어려운데 사극을 일일드라마로 편성한 것 자체가 기형적인 구조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드라마 PD나 드라마국에서 이런 편성을 원한 것이 아니라 회사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편성이다. 현재 MBC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런 ‘기형적인’ 편성이 나온 배경은 MBC가 메인 뉴스 <뉴스데스크>의 시간대를 8시대로 옮긴 데 있다. MBC는 뉴스 경쟁력 확보라는 미명 아래 시간대를 변경했지만 현재 시청률은 8.7%로 여전히 김재철 사장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편으로 사극을 일일드라마로 편성하는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한 드라마 PD는 이를 두고 “약화된 뉴스 경쟁력을 올릴 생각보다는 뉴스 앞뒤로 고정 시청자 확보가 쉬운 드라마를 배치해 상황을 만회해보려는 발상”이라며 “뉴스 자체 경쟁력으로 고민해야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건 속보이는 꼼수”라는 비판했다.

하락한 뉴스데스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드라마를 무리하게 편성한 모습은 최근 벌어진 MBC의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김재철 사장 체제 이후 시사보도 분야 기능이 마비되고 신뢰도가 하락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시청자 확보가 손쉬운 드라마와 예능 부문에만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나 예능마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장수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가 시청률 저조라는 이유로 출연진에 대한 사전 통보도 없이 급하게 폐지됐고, 후속으로 <배우들>이 편성됐으나 역시 저조한 시청률로 이번 봄 개편에서 폐지됐다. 공영방송으로서의 MBC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시청률에 급급해 편성한 결과인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구암 허준> 역시 그 성공 여부에 대해 의구심이 생겨나고 있다.

이번 드라마 편성은 나아가 공영방송으로서의 MBC 위상에도 흠집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방송법 시행령이 규정한 주시청시간대(오후 7시부터 11시 사이)의 드라마 편성 비율을 따져볼 때, 지상파 3사 가운데가 MBC가 단연 독보적이다.

KBS2와 SBS가 약 95분(KBS는 시트콤 포함)인에 비해, MBC는 약 135분이다. 주시청시간대에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 이상을 넘는 셈이다. 이는 "주시청시간대에는 특정 방송 분야의 방송프로그램이 편중되어서는 안된다"고 한 방송법 규정에도 어긋나는 상황이다. MBC 내에서 “제살 깎아먹기식 편성”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프라임 시간대인 9시에 드라마를 편성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MBC가 이런 식으로 편성한 건 시청률에 매몰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 자체를 부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한 “우리나라는 공영방송이 지상파 방송의 주(主)인데, MBC가 이런 식으로 시청률에 매몰되어 나간다면 타 방송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결국 시청자인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근수 MBC 드라마 본부장은 “파업 후유증으로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서 프로그램 콘텐츠로 승부하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9시대에 만들기 쉬운 막장 드라마를 편성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아 건전한 사극드라마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장 본부장은 또한 “(드라마 위주) 편성에 대해서는 나도 고민하고 있다, 교양 프로그램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MBC 내부에서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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