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어디로 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나설 지였습니다. 지하철처럼 출발지와 목적지를 직선으로 그어놓고 달려가는 여행이 아니라, 우리 여정은 곡선을 그리며 때로는 쉬고 때로는 이야기하며 서로를 확인하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대학 첫 미팅을 나설 때 설렘으로 여행에 오른 첫날. 여행길에서 함께 나선 이들을 자세히 쳐다보니 또 다른 내 얼굴들이었습니다.
사람들마다 여행에 나선 이유는 다 달랐지만 이별에 따른 상처가 많았던 저에겐 남은 동료들과 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추억이 중요했고, 그래서 가는 곳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끼리 주고받는 대화와 표정이 소중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떠나보냄과 떠나감이 일상이 돼 버린 OBS가 지난 5년 동안 직원들에게 주지 않은 것은 ‘줘야 할 임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직원들이 받지 못한 것은 ‘언론인으로서 자존감’과 ‘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5년 간 ‘체불임금’은 ‘받아야 할 돈’이 아닌 ‘잃어버린 인간성’과 ‘비전 없는 미래’였습니다.
아픈 과거를 가슴에 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여행은 행복했습니다. 같은 곳을 향해 바라보는 우리를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마주보고 있을 때 눈높이는 다 다르지만,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볼 때에는 눈높이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떠난 지 20일 동안 같은 곳만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던 우리는 어느새 먼 길을 떠났는데 여전히 같은 길 위에 있었습니다. 뒤돌아보니 그 길은 지난 5년 동안 없었던 길이었고, OBS 노조원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발을 얹어가며 만들어 놓은 새로 난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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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과 찬바람을 데리고 온 밤이 찾아오면, 천막 안으로 들어가 서로가 품은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여행가이드인 집행부들은 새벽을 지키며 다음날 일정을 짰습니다. 해가 떠오르면 하루를 넘긴 우리들은 ‘노래’를 불렀고, 함께 소리쳐 외쳤습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언론인입니다’ ‘우리는 방송인입니다’라고. 나무 사이사이에 조합원들의 외침이 매달렸고, 나뭇잎이 옮기는 그 소리에 경인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이 우리 여행길에 동행해 주었습니다.
▲ 강남구 기자 | ||
우리가 있어야 할 곳과 우리가 만난 사람들을 확인한 우리는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합니다. 잠시 짐을 풀고 새로운 장비와 물품을 채워야 할 시간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다음 여행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떠날 것이란 기대도 해봅니다. 여행이 끝나는 그 날은 바로 우리가 염원했던 ‘자존감’과 ‘비전’과 만나는 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