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과 관련해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는 와중에 국방부를 출입하는 기자단이 외국 방위산업체의 전부 또는 일부 지원을 받아 ‘미디어 투어’를 가기로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군다나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를 둘러싼 수십 가지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어, 언론이 인사 검증 의무조차 망각한 채 외국 출장을 가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13일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따르면 국방부의 차세대전투기(FX) 3차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미국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과 보잉,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사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기자단에 견학 취재를 요청했다. 기자들은 이런 요청에 대부분 응해 출장의사를 해당 업체에 전달했다.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가입된 25개 언론사 가운데 경향신문 등 일부 매체를 제외한 대부분인 20여 개 언론사 소속 기자들은 업체 세 곳 중 한두 곳을 신청해 오는 18일부터 2주 동안 첫주와 둘째주로 나눠 각각 6~7일 정도의 견학 투어를 가진 후 돌아올 예정이다.

첫 주는 록히드마틴이 있는 미국견학팀과 유로파이터가 있는 유럽의 프랑스·영국견학팀이, 둘째주에는 보잉사가 있는 미국견학팀이 해외취재를 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한 언론사당 1명씩 20여 명가량이 일제히 국방부 기자실을 비우고 외국 취재를 떠나는 일이 벌어지게 생겼다. 이와 관련해 KBS 등 일부 언론사는 항공료와 일비 등 취재경비의 일부를 부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F-X 후보기종 '유로파이터 트랜치3'
ⓒ연합뉴스
 

문제는 지난달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급속도로 악화된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국방부와 국방부 담당 기자들이 자리를 비워가면서까지 업체에서 제공하는 투어에 동참할 만큼 사안이 긴요하냐는 점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그동안 한반도 긴장과 공포를 자아내는 기사를 쓰면서 현역 장성들이 제자리에 안 있고 골프를 쳤다고 호통치던 언론이 키 리졸브 훈련 기간에 무더기로 외국 출장을 떠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며 “필요에 따라 외유성이 아닌 출장을 갈 수 있지만, 안보위기 상황에서 자리를 비울 만큼 시급한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많은 언론에선 지난해 12월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지난달 12일 북한 3차 핵실험을 전후한 비상 상황에서도 현역 군 장성 등 일부가 주말에 군 골프장을 이용했다며 호되게 비판했었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시기의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방부 한 출입기자는 13일 “위기 상황에서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기자들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국방문제 전문가들은 최근 국방부가 골프 논란으로 뭇매를 맞은 일이나 북핵 위기에 국방부 출입 기자들이 무더기로 취재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해 ‘정신상태가 안 돼 있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지만원 전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자문위원은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이면에는 군과 언론이 철통같이 기본을 지키는 데 있다”며 “기자도 장군 못지않게 국가를 지키는 사람인데 기본 임무를 망각한 채 외국 출장을 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힐책했다.
 
국방부 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모 언론사 기자는 이처럼 중대한 시기에 현장을 비우고 해외취재를 가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시기가 안보 위기 상황이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긴 하지만 당장 북한 도발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업체와 두세 달 전에 일정을 조율한 당시에는 예측 못했던 부분이고 지금 상황이 한반도 전쟁이 임박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수조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직접 검증할 기회”라고 반박했다.

전투기 도입 과정의 검증을 위해 유로파이터, 록히드마틴, 보잉사로 각각 나뉘어 견학하는 20여 명의 기자들은 자신들이 취재한 내용과 영상 등을 서로 교환하면서 기사쓰는데 협력할 계획이며, 일부 기자는 책만한 두께의 해당업체 전투기 관련자료를 갖고 가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그러나 6박7일 동안 기자들이 무기업체를 방문해 얼마나 정밀하게 검증을 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제기됐다. 김종대 편집장은 “공군 시험 평가단이 가도 한 달 걸리는 기체 결함을 검증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가서 업체의 입장이나 설명을 듣는다거나 해명을 듣는 수준이지 검증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비판했다.
 
특히 지금껏 국방부 기자들이 팸 투어(Fam tour·취재여행) 후 쏟아낸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진정 철저한 ‘검증’을 하기 위해 해당 업체 지원을 받아 취재에 응했는지 의문이다. 지난 2011년 차세대 전투기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진행된 보잉사의 팸 투어에 참여했던 기자들도 행사 직후 일제히 보잉사 관련 기사를 썼지만 해당 무기에 대해 대체로 홍보성 내용이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2011년 3월 3일 기사에선 한국에 곧 인도될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피스아이’ 1호기가 국내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며 “비장의 무기”(아시아경제), “경쟁 기종과의 비교 우위로 꼽힌다”(서울신문)는 식의 업체 측 홍보 내용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에 대해 한 신문사 출입기자는 "취재경비를 해당업체로부터 지원받았다고 써야 할 기사를 못쓰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3월 13일 밤 9시34분 기사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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