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출판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나 디바이스는 다양해지고 있다. 전자책 시장 규모도 속도는 느리지만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해 단행본 기준 전자책 시장 규모는 약 500억원 가량이었고 올해는 100억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출판 시장은 여전히 정체돼 있다. 최근 통계청 자료도 이를 반영한다. 지난 4일 통계청에 따르면 2인 가구 기준 도서 구입비는 1만9천원으로 처음으로 2만 원대로 떨어졌다. 전년에 비해서도 7.5% 하락한 수치다. 한국 사회가 ‘책 읽지 않는 사회’라는 점도 달라지지 않았다.

책 ‘디지털 콘텐츠 퍼블리싱’ 저자 이경훈 김영사 미디어기획부장도 “전자책 시장은 분명히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데이터는 많다. 하지만 전자책으로 인해 책을 읽는 사람 자체가 늘었다는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 독서 인구는 여전히 한정돼 있고 다만 책을 읽던 사람들이 전자책도 사보는 것뿐이다”고 지적했다.

총량적으로 본다면 기술의 진보가 출판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왜 기술의 진보가 독서 인구를 늘리지 못하는지는 출판업계의 오래된 고민거리다. 고민 끝에 ‘콘텐츠를 대하는 문화의 차이’라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우선은 한국에서는 온라인 콘텐츠를 돈 주고 사는 풍토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 유료 판매 모델이 안착된 것과 사뭇 비교된다. 아마존만 해도 킨들은 회사의 수익과 손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으며 전자책이나 영화 다운로드 등 콘텐츠 판매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권범철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음악이나 영화 파일 등을 공짜로 구하려고 하며 특히나 텍스트 콘텐츠에 대해서는 더하다. 한국의 뉴스 사이트들은 온라인 유료화를 오랜 숙원 과제로 삼으면서도 제대로 된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또다른 문화적 이유로는 “한국 사회 자체가 책을 읽지 않는데다가 그나마 책을 대하는 한국 독자들의 태도가 여전히 ‘무겁다’는데 있다.” 책 안의 내용을 소비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종이책을 사서 책장에 두고 보관하는 ‘소유’의 개념으로 다가간다는 뜻이다.

얇고 저렴한 페이퍼백이 한국에서만 유독 인기를 끌지 못하거나, 내용도 같고 가격이 더 비쌀지라도 양장본 표지의 책이 더 팔리는 경향들이 이를 반증한다. 전자책 역시 기존 종이책에 비해 60% 가격대이지만 별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독자들의 인식 속에 박혀 있는 ‘책’과 다른, ‘책 같지 않은 책’에 대해 아직까지 거리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전자책 시장만 봐도 인문학이나 일반 문학보다는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성인 로맨스물이나 장르문학이 판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전자책이 가격도 싸고 휴대도 용이한데도 기존 독자들이 전자책으로 넘어오지는 않는다. 즉, ‘그나마 책을 읽는 사람들’이 디지털 콘텐츠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말이다.

다소 암울한 출판업계 상황에서 카카오의 선택은 한편으론 야심차 보인다. 카카오가 3월말 새롭게 출시하는 카카오페이지는 텍스트, 만화, 음악, 영화 등 콘텐츠를 유료로 거래하는 모바일 장터다.
카카오는 ‘유료 콘텐츠’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무료 콘텐츠가 쏟아지고 유료 콘텐츠가 불법유통 되면서 디지털콘텐츠가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카오페이지가 출판업계에서 화제가 된 건 이 때문이었다. 기대에 못미친 전자책 시장에서 느낀 낙담을 카카오페이지에서 만회할 수 있을까란 기대감이 있었다. 게임 ‘애니팡’의 대박이 증명했듯, 카카오가 구축한 막강한 사용자 네트워크도 이런 예측에 힘을 실어주는 듯 했다.

부풀었던 출판업계의 기대감은 그러나 최근에 와서 가라앉았다. 출판사마다 사정은 제각각이겠지만 형 출판사들도 ‘우선 간 본 뒤 판단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투자한 비용만큼 수익이 나겠느냐’는 회의적 시각 때문이다. 음원을 파일로 만드는 일은 손쉽지만, 책은 디지털 전환비용이 많이 든다. 전자책을 예로 들면 배경이나 이미지, 텍스트와 페이지 번호, 머리글 같은 각 요소를 전자책 구성에 맞게 분리해 추출하는 일은 하나하나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카카오도 카카오페이지만의 텍스트 콘텐츠 생산을 바라고 있다. 활자 중심의 기존 종이책에서 벗어나 ‘글+사진+영상+음악’이 결합된 콘텐츠다. 카카오 홍보팀 관계자는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를 예로 든다면, 3월에 맞게 동백꽃이 핀 고창 선운사 편만 따로 뽑아서 카카오페이지에 올리는 식”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이는 그만큼 제작에 또 다른 인력을 투입해서 공을 들여야 하는 문제다. 기존 종이책을 거의 그대로 노출시키는 전자책 방식도 뛰어넘어야 하고, 카카오페이지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아예 새로운 시각에서의 기획도 필요하다.

출판사들은 이를 위해 “출판 담당자의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출판사의 디지털콘텐츠팀장은 “출판사에서는 주로 종이책과 전자책 포맷으로 책을 만드는데 카카오와 모바일에 맞는 포맷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려면 그에 따른 가공비용이 추가된다, 그러나 시장상황이 그렇게까지 역량을 투여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페이지란 플랫폼이 생겨도 텍스트 콘텐츠에 대한 구매가 의미있을 정도로 늘어나지 않을 것이란 관념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카카오페이지에서 성공할만한 콘텐츠도 한정적이란 전망이 나온다. 모바일용 콘텐츠 특성상 기존 종이책이나 전자책과 같은 분량의 텍스트가 선호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종이책들이 형식적으로는 챕터별로 구분돼 있지만, 챕터 하나하나가 하나의 독립된 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는 책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도 “카카오 특성 자체가 안부 전하고 수다 떠는 공간이기 때문에 카카오에서 유통될 콘텐츠 역시 이런 특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좋은책’처럼, 단문 형식의 따뜻하고 저렴한 콘텐츠는 승산 있겠지만 출판사가 이 부분까지 포괄하기엔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기존의 ‘책’으로 카카오페이지에서 승부를 보긴 어렵고, 이는 ‘독서인구 확장’에도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게 출판업계의 고민이다. 

이런 측면에서 출판업계는 카카오가 제시하는 저가 텍스트 콘텐츠가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진다. 카카오는 하한가를 500원으로 정해놓고, 콘텐츠 생산자들이 자유롭게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카카오도 전자책의 한계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경훈 부장이 지적하듯 “텍스트 콘텐츠는 싸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서 지닐 만한 가치가 있을 때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도 “카카오는 기본적으로 싼값에 많이 팔아 수익을 얻는 박리다매일 텐데, 이런 행태의 소비가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출판업계에서는 카카오도 ‘기술이 콘텐츠의 발전을 이끈다는 오류에 빠져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책을 대하는 문화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져도 새로운 수익 모델이 창출될 수 없다.

카카오 측 홍보담당자는 “카카오페이지에서는 하나의 텍스트를 구입하면 똑같은 텍스트를 친구에게 선물할 수 있는 ‘1+1’ 판매 방식을 채택했다”며 “친구와 나눠보면서 유료로 구매하는 경험이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친구와 나눠보면서 구매할 의욕을 자극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카카오 측은 기대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전자책의 사례를 카카오페이지에 대입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홍보담당자는 “전자책처럼 단순히 책을 옮겨서 파는 것은 매체 환경이나 이용 방식에도 맞지 않다”며 “카카오는 모바일 환경에 맞는 모델을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유저와 그들의 네트워크에 비춰볼 때 카카오페이지가 콘텐츠 유통의 새로운 모델이 될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회’와 ‘출판 콘텐츠를 대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라는 두 가지 전제에서 생각해볼 때 카카오페이지가 텍스트 콘텐츠 유통에 적합한 모델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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