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소비자는 '봉'이다. 제품에 대해 알 권리도 없다. 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수입산 콩, 옥수수의 85%가 유전자변형식품(GMO)이다. GMO가 기형아, 불임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제품이 GMO 콩, 옥수수인지 알 수가 없다. 소비자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소비자운동을 시작했다. 시민운동의 대부격인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국민의 정부)이 지난 6일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의 초대 대표를 맡았다. 김 대표는 1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국에선 소비자가 봉이다. 소비자가 봉이 아니라 왕이 되게 하자는 게 경실련이 꿈꾸는 소비자 정의 시대다"라며 소비자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경실련이 소비자 운동을 처음 하는 건 아니다. 1989년 창립한 경실련은 체르노빌 원자력 오염 농산품 수입에 문제제기하는 소비자단체협의회에 포함되어 있었다. 김 대표는 "창립 초기 소비자 운동을 함께 시작했으나,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 문제 등에 집중하자는 내부 의견에 따라 소비자 운동을 내려놨다"며 "휴면기에 있다가 소비자 운동을 재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초대 대표
ⓒ김병철
 
"소비자 운동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김 대표는 지금이 바로 소비자 운동을 강화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인 시대가 왔다"며 "소비자가 '봉'인 사회는 후진국이고, 경제민주화가 안된 사회"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민생, 민생 말하지만 의식주 소비생활에 연관된 게 진짜 민생이다. 말 장난하지 말아야 한다"며 정계 중심의 거시적인 경제민주화 논의를 비판했다. 김 대표는 경제정의 차원에서 재벌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실생활과 관련된 안전과 생명, 건강의 중요성은 영원히 부각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자가 '봉'이 아니라 왕이 되는 사회가 선진국가"라며 경실련 소비자 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소비 생활, 실생활에서 기업주와 정부가 왕이다. 언론도 기업 광고 때문에 입 다물고 대기업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소비자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서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부자들도 '봉'인 건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동차, 명품 등을 예로 든 후 "한국 소비자들은 현지 가격보다 더 비싸게 수입품을 사고 있고, 한국의 수출품도 해외 소비자 보다 더 비싸게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부자들도 GMO인지 모르고 먹고 있다"며 제품에 대해 알권리가 보장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소비자운동은 소비자의 기본권리를 보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기본법은 '소비자의 기본권리'로 △안전할 권리, △알권리, △선택할 권리, △의사를 반영할 권리, △보상받을 권리, △교육받을 권리, △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할 권리, △쾌적한 환경을 누릴 권리 등을 보장하고 있다. 
 
금융, 정보통신 소비자 운동… 앱 장터, 보험상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GMO 표시제 확대, △보험상품 불완전판매 문제 개선, △온라인장터 표시가격 개선 등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기존 소비자 운동의 범주에서 최근 소비자 피해가 증가하는 금융, 정보통신분야까지 포괄했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장터의 구매 절차 등 공정한 약관 개선도 경실련의 소비자운동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스마트폰 이용자 권리찾기'를 핵심사업으로 정하고, 소비자 피해 신고를 받고 있다. 현재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애플의 아이폰5 불량품을 구매했으나, 교환 또는 환급해주지 않는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경실련은 약관 개선 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또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보험문제에도 주목하고 있다. 경실련은 "금융상품 판매 시 허위 또는 불충분한 설명, 계약서·약관 미교부 등과 같은 '불완전판매'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고령화 되는 사회에서 보험상품은 중요하다"면서 "실생활에서 소비자들이 겪는 피해를 해결하는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초대 대표
ⓒ김병철
 
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 "GMO 표시제 확대해야"
 
이와 함께 경실련은 GMO 표시제 확대 운동에 돌입했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이날 GMO 수입업체 등을 경영·영업상 비밀이라며 비공개한 식약청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현행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기업은 '유전자재조합식품', '유전자재조합 ○○포함식품' 등을 제품의 용기·포장의 바탕색과 구별되는 색상의 10포인트 이상의 활자로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표시대상이 제품의 5가지 주요 원재료 중 GMO가 1가지 이상 사용하여 제조․가공한 식품 등으로 한정했다.  
 
경실련은 식품에 소량이라도 GMO가 들어갔다면 이를 표시해서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는 "GMO가 들어간 식품이라면 자식에서 사먹이겠는가"라며 "기업들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GMO에 대한 명칭도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를 '유전자변형식품'으로 명칭하고, 식약청은 식품위생법에서 '유전자재조합식품'이라고 부른다. 김 대표는 "식약청이 GMO를 유전자재조합식품이라고 부르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식품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식약청이 GMO를 가치중립적 혹은 긍정적으로 부르는 것은 소비자(국민)가 아닌 대기업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김 대표는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정부와 기업의 후원으로부터 자유롭다"며 "기존 소비자운동단체의 한계를 넘어 소비자 정의를 세우는 시민단체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