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오는 4월 개편에서 신설할 역사다큐 <격동의 세월>(가제)을 놓고 내부갈등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김현석)가 공정방송위원회 개최를 통해 본격 대응에 나섰고, KBS PD협회도 총회 소집을 예고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KBS측은 편성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격동의 세월>은 물론 봄 개편과 관련한 의견표명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KBS본부는 8일 공정방송위원회 긴급안건으로 사측에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질 예정이다. KBS PD협회 또한 ‘역사다큐’와 관련, 11일 총회 소집을 통해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봄 개편을 둘러싼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KBS본부의 한 관계자는 “공방위 회의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사측에서 입장을 밝히지 않아 논의가 진전되지는 않고 있다”면서 “사측이 ‘격동의 세월’ 편성을 완전 철회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KBS 한 PD는 “‘역사스페셜’을 거쳤던 PD들이 집단으로 ‘격동의 세월’ 편성에 반대하는 입장을 8일 발표할 예정”이라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가동해 ‘격동의 세월’ 편성을 막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갈등은 외형적으로만 보면 ‘단순 갈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KBS 시사·다큐의 향후 기조와 방향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폭발성’이 대단히 크다.
 

   
▲ KBS 로고.
 

다른 PD는 “길환영 사장은 자신이 콘텐츠본부장으로 있던 시기,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다큐’ ‘백선엽 다큐’를 제작해 독재자와 친일파를 미화했다는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라면서 “이념 관련 아이템을 배제하겠다고 했지만, 한국 현대사를 다룬 프로그램이라면 1960~70년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길 사장은 콘텐츠본부장으로 있던 지난 2011년 9월28일부터 30일까지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초대대통령 이승만’ 3부작을 방송했는데 당시 ‘이승만 편’은 미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한 같은 해 6월24일과 25일 방송된 특집 다큐 <전쟁과 군인> 또한 친일파 백선엽 씨를 전쟁영웅으로 묘사해 왜곡 논란이 제기되는 등 파문이 일었다. 길 사장은 항일음악가 ‘정율성 다큐’가 KBS에서 불방 됐을 때 최종 책임자이기도 했다.

길환영 사장의 이 같은 ‘이력’을 감안했을 때 <격동의 세월>이 ‘제2의 이승만·백선엽 다큐’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한편에선 이번 KBS 봄 개편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코드 맞추기’용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그동안 KBS PD들이 고민해왔던 ‘시사교양 프로그램 복원을 통한 정상화’는 물 건너 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정상화는커녕 ‘관제화 논란’만 더 커지기 때문이다. <격동의 세월> 편성방침에 KBS본부와 PD협회가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다.

또 다른 PD는 “이번 개편 때 중소기업 관련 프로그램인 <히든 챔피언>과 함께 학교 폭력추방 캠페인 프로그램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전반적으로 KBS가 준비하는 다큐·교양물이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PD는 “다른 캠페인 프로그램은 불만이 있더라도 PD들이 크게 반발할 정도는 아니지만 ‘격동의 세월’은 차원이 다르다”면서 “추진과정을 비밀리에 한 점, KBS다큐국이 아닌 외주제작국이 담당하게 한 것도 내부 반발을 의식한 경영진의 ‘치밀한 전략’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PD는 “<격동의 세월>이 ‘박정희 미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KBS 외부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제기된다.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6일 “길환영 사장이 추진하고 있는 다큐 프로그램이 방송된다면 KBS와 길 사장은 박근혜 정부의 사랑을 받겠지만 공영방송 KBS의 정체성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 KBS는 이러한 논란이 생길 때마다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해왔지만 길환영 사장의 행보를 보면 과연 정치와 무관한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도 “KBS가 내부반발에도 불구하고 보수진영의 ‘편파적인 역사인식’을 전파를 통해 알리려는 의도가 무엇이겠냐”면서 “언론단체는 물론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격동의 세월’ 편성을 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KBS홍보실 측은 “현재 편성안이 확정되기 전이고, 계속 논의 중인 상태라 개편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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