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18,000원이나 하네. 공짜로 주는 신문도 많은데···”

두어 달 전 신문 구독료를 내러 은행에 들렀을 때, 납부를 도와주던 은행 직원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 말 안 했지만 마음이 착잡했다. ‘공짜 신문’이 불법을 바탕으로 언론의 주류 행세를 한 지 20년 가까이 되었다. 요즘의 신문 구독료 액수를 모르는 사실로 추측하건대, 그 사람도 공짜 신문을 보고 있을 개연성이 높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공짜 신문도 많은데 월 구독료가 18,000원이나 하는 신문을 구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공짜로 보는 보수·수구신문들이 정치적 편향성으로 뒤덮여 있더라도, 내가 옥석을 가려서 읽으면 된다’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들 중에는 또한 ‘그 신문이 그 신문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나, 분명히 그렇지 않다.

신문고시 위반이 판 치는 씁쓸한 현실
 
그 직원만의 유별난 행동이거나 잘못이라고 탓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수익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소탐대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는 21세기의 민주주의 시대에 알량한 공짜 신문에 유혹됨으로써, 더 큰 보편적 가치와 민주 시민의 깨어 있는 삶을 알지 못하는 소시민의 한 사람이다.

그가 말한 공짜 신문이라면 조선·중앙·동아일보 중 하나일 개연성도 대단히 높다. 이제는 조중동을 1년에 한 번 씩 바꿔가며 보면, 계속 무료로 보수·수구신문을 볼 수 있다. 무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금에 경품까지 따라온다. 많게는 무려 45만원 어치까지 제공받는다고 한다.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과 최민희 의원실은 최근 수도권에서 조중동의 신문고시(신문업의 불공정거래행위와 시장 지배적 지위남용행위의 유형과 기준) 위반 실태를 조사, 발표했다. 놀랍고 참담한 결과였다. 60개 지국 가운데 59개 지국이 신문고시를 위반하고 있었다. 중앙일보 모지국은 450,000원 상당의 불법경품을, 조선일보 모지국은 425,000원 어치를 제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문고시 조사 이래 최고액의 불법경품을 기록함으로써 신문시장의 혼탁상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2004년 96%에 이르던 조중동의 신문고시 위반율은 다음해 신고포상제를 시행하자 5.6%까지 떨어졌다. 정부가 제대로 단속한다면 독자를 매수하는 불법경품을 충분히 근절시킬 수 있다는 실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공정위(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워 신문고시를 폐지하겠다는 등 무력화 시도로 혼탁을 계속 부추겨 왔다. 현재도 조중동 지국은 신문고시를 비웃듯 대규모 불법경품을 내세워 독자를 타락시키고 있다. 또 서로 밀약을 맺은 듯 확장요원이 “조중동 어느 신문을 봐도 무료에 경품까지 드린다”고 유혹하기도 한다.

지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은 남북관계 악화와 빈부 격차의 심화, 천암함 사건 은폐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실정이라기보다 의도적인 악정의 폐해 중 조중동을 키우고 종편TV 혜택까지 주면서 신자유주의적 허상으로 국민을 속인 일 또한 앞자리에 놓여야 한다. 언론왜곡 역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정부의 무신경 또는 묵인 하에 조중동이 신문고시를 버젓이 위반함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는 계속 후퇴했다.

언론인이라면 다 아는 얘기를 새삼 꺼내는 것은,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지점이고 현재 황폐화된 언론현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시민으로서는 신문고시를 위반하는 조중동의 경품제공과 시장 지배전략, 생존을 위한 계산법을 잘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간단히 말해서 조중동은 불법경품을 제공해서 발행부수를 높게 포장한 후, 그를 바탕으로 광고단가를 높이고 주류신문으로 행세하는 것이다.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다

신문이 공짜 신문과 불법경품 제공 등으로 구독료 수입 부분을 무시하고 광고에 매달리는 전략이다. 결과는 민주주의를 파괴시킨다. 불법을 바탕으로 권력화·비대화한 신문은 사회에 책임의식을 갖고 공공에 봉사할 사명감을 갖게 되지 않는다. 그 신문은 민초의 목소리나 건강한 여론에 귀 기울이기보다 재벌의 입장을 우선시하는 보수정권과 광고주 편에 서면서 수구·비민주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미 언론재벌이 된 이 신문들은 보수정권을 대변하고 소수 재벌의 방패역할을 맡게 된다.

언론이 ‘사회의 목탁’이란 고전적 정의도 멀리 비껴가고, 언론인도 더 이상 지성인이 아니다. 미국 사회학자 라이트 밀즈는 오히려 언론인을 착취적인 권력 엘리트로 보고 있다. “언론인은 사회의 파수견이 아니라, 지배귀족의 뒷주머니에 안주하는 미약한 존재일 뿐”이라고 모멸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민언련은 새 박근혜 정부와 공정위가 공정경쟁이 가능한 신문시장을 만들기 위해 신문고시를 엄격히 적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 민언련의 신문고시 조사가 아무 반향도 없이 묻히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불법의 연결고리부터 끊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문제를 소홀히 하면 언론·시민단체가 모두 단결하여 나서야 한다.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차대한 문제다. 끝끝내 바로잡아야 한다.

(새언론포럼 회장)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