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iWqcpxCAHWM 2번 E장조 1악장, 정경화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바흐의 협주곡은 최소한 대여섯 곡이 있었을 걸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단 두 곡만 전해집니다. 그 중 두 번째 곡인 E장조의 알레그로, 참 싱그러운 음악이지요? 첫 주제가 울려 퍼지고 00:35 지점 솔로 바이올린이 변형된 주제를 연주하면 1:23 지점, 약동하듯 솟구치는 패시지가 등장합니다. 주제가 되풀이 나오고 사이사이에 새로운 에피소드를 선보이는 리토르넬로(ritornello) 형식입니다. 비발디가 즐겨 사용한 형식을 바흐가 받아들인 것이지요. 생동하는 음악, 34살 꽃다운 시절의 정경화가 연주합니다. 참 화사하지요?  

“음악이 없다면 세상이 있을 수가 없죠. 클래식 음악이 없던 시기도 있긴 했죠. 하지만 옛날 역사 어디를 봐도 소리로 커뮤니케이션을 했고, 감정·노여움을 표현했잖아요. 서양 음악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되게 하고 조화를 만들어 내는 데에 항상 음악이 있었어요. 음악 교육을 안 받으면 인격에 균형이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1999년, 정경화가 인터뷰 도중 제게 해 준 얘기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되게 하고 조화를 만들어 내고 인격에 균형을 주는 음악’, 바흐를 빼고 얘기할 수 없겠지요.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솔로 악기와 현악 합주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 되는 이상적인 협주곡의 양식을 보여줍니다.

프레스코발디, 코렐리, 알비노니, 마르첼로, 비발디로 발전해 온 바로크 협주곡은 바흐라는 ‘거대한 바다’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가 이탈리아 협주곡에서 배운 것은 ‘합리적 형식, 명료한 구성, 절제된 테마, 부드러운 멜로디, 우아한 화성’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형식의 틀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내용이 그때그때 몸에 맞는 유연한 형식을 찾아내곤 했던 거지요. 바흐의 이러한 자유로운 정신은 그 후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근대 협주곡의 물줄기로 이어졌습니다. 바흐라는 ‘거대한 바다’ 한 가운데 자리한 아름다운 섬, 바로 이 협주곡이지요.

   
 
 

바흐의 중요한 기악곡들은 대부분 쾨텐 시절(1717 ~1723)에 작곡됐습니다. 쾨텐의 23살 영주 레오폴트 후작은 음악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바리톤 음성의 소유자였고 바이올린, 비올라 다 감바, 클라비어를 연주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17명으로 된 우수한 악단을 갖고 있었고, 새 악장 바흐를 극진히 우대했습니다. 자유주의 성향의 레오폴트 후작은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쾨텐 악단의 일원으로 연주에 참여했습니다. 바흐는 그를 가리켜 “음악을 좋아할 뿐 아니라 음악을 아는 후작”이라고 불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쾨텐 궁정이 캘빈파여서 복잡한 교회음악을 금지했다는 점입니다. 바흐는 자신의 천재성을 모두 발휘하여 세속음악의 작곡에 몰두했고, 그 결과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관현악 모음곡 등 위대한 기악곡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쾨텐 시절이 없었다면 바흐는 합창곡, 오르간곡 등 종교음악만 남긴 근엄한 작곡가로 역사에 기록됐을지도 모릅니다.

2번 E장조보다 1번 A단조가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이 곡은 바흐 음악으로는 드물게 ‘비극적 서정미’를 담고 있습니다. 달콤하고 애수어린 1악장 알레그로, 투티와 솔로가 교차하는 리토르넬로 형식입니다. 역시 정경화의 연주입니다.

http://youtu.be/Qo-fN7Qs_nM

E장조 협주곡의 3악장은 1970년, 영화 <러브 스토리>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에릭 시걸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부잣집 아들 올리버와 가난한 이민자 출신 제니퍼의 슬픈 사랑 이야기지요. 가족의 반대에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지만, 제니퍼는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나는 모차르트, 바하, 비틀즈 그리고 너를 사랑해,” “사랑한다는 건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등 명대사가 나왔고, 주제곡 ‘러브 스토리’와 삽입곡 ‘눈장난’(snow frolic)이 크게 히트했었지요. 음악을 전공한 여주인공 제니퍼가 동료 학생들과 함께 리허설하는 장면에 나오는 곡이 바로 이 협주곡의 3악장입니다.

http://youtu.be/dWnJDGE2C7s

같은 곡이지만 쓰임새에 따라, 연주자에 따라 감상하는 맛이 달라집니다. 듣는 사람의 결에 따라 음악은 다채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음악의 진정한 고갱이는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울림으로 퍼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비록 단 두 곡이지만 300년이 다 되도록 우리 곁에 살아남아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지요.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필자 소개>
이 채훈은 문화방송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현대사 다큐, <모차르트>, <정트리오> 등 음악 다큐를 다수 연출했고 지금은 ‘진실의 힘 음악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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