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함신익씨를 KBS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내려 보냈다는 내용의 주장이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21일 서울남부지법은 KBS가 연극 연출가 김상수씨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KBS 김인규 사장이 ’위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고 말한 걸 교향악단 단원 신아무개씨 등이 들었다고 진술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 칼럼이 사실 무근이라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서는 특히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누리는 언론사는 자신에 대한 비판 역시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돼 눈길을 끈다.

김상수씨는 지난해 3월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MB 낙하산 김인규, 청와대 청탁 받고 함신익 임명했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명박과 그의 부인이 함씨를 KBS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낙점, 단원들 절대다수의 반대에도 파국을 불러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씨는 이 칼럼에서 “단원들이 ‘함씨를 상임지휘자로 시키려는 이유가 뭔가, 청와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 사장이 ‘위에서 걸려온 전화를 딱 한 번 받았다’고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목사 고아무개씨가 청와대 조찬기도회에 다녀왔는데 영부인께서 ‘KBS 교향악단 상임지휘자가 공석인데 함씨가 그 자리에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대통령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밖에도 지난해 3월8일 정기연주회를 하루 앞두고 함씨가 일방적으로 연주회 취소를 선언해 그 책임이 함씨에게 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서도 “‘함씨의 지시로 원고의 직원들이 캠코더로 연습 장면을 촬영하면서 다툼이 발생했고 대부분의 단원들이 연습을 계속하고 연주회를 진행하려 했으나 함씨 등이 연주회를 취소했다’는 단원들의 주장을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은 “김씨가 단원들의 구체적인 진술을 듣고 기사로 작성했고 이들의 진술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한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자 3대 공중파 방송사인 원고가 운영하는 악단의 상임지휘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에 관한 보도로서 공익성 또한 인정된다”면서 “이 보도는 위법성이 조각돼 원고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원은 KBS의 반론보도 청구도 기각했다. 법원은 “언론사가 타인에 대한 비판자로서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범위가 넓은 만큼 그에 대한 비판의 수인 범위 역시 넓어야 하고 언론사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은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수사적 과장이 있더라도 언론기관이 서로 반박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보다 넓게 용인될 수 있다”면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자가 언론사일 경우에는 반론보도 청구권을 행사할 정당할 이익을 좁게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또 미디어오늘이 이미 기사 말미에 KBS의 주장을 반영해 추가 보도를 한 사실이 인정돼 원고가 요구하는 반론보도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판단된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한편 KBS 시청자 사업부 윤아무개 팀장이 같은 내용의 일련의 칼럼을 문제 삼아 김씨를 상대로 낸 형사고소 역시 지난해 10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된 바 있다.

검찰은 “사측에서 단원들을 상대로 비디오 촬영을 했던 건 사실로 보이고 김씨가 ‘채증’이나 ‘불법사찰’ 등의 용어를 사용해 설명했다고 하더라도 김씨 나름의 평가나 의견 개진일 뿐 그 자체로 구체적인 사실 적시거나 고소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김씨의 칼럼은 국민의 알권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객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므로 위법성이 조각되며 고소인의 얼굴 사진과 실명을 게재한 것이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KBS는 김씨의 일련의 칼럼이 사실무근이라며 지난해 8월, 김씨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반론보도 청구소송과 함께 김씨를 형사 고소했다. KBS교향악단은 법인화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결국 함씨와 단원 일부가 물러나고 5월30일 KBS 정기이사회에서 법인화를 의결해 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지난해 10월, 9개월만에 상임지휘자 없이 객원지휘자를 초빙해 연주회를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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