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트위터에 남긴 짧은 메시지를 통해서, 진보정의당 중앙위원 유시민이 “직업 정치인”에서 은퇴를 했다. 그는 잘 알려져 있듯, 저술가(자칭 ‘지식소매상’)에서 직업정치인으로 전업한 후 십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워낙 굴곡 많은 활동 속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고 특정 정치적 입장의 상징적 인물처럼 부각되어왔던 인물이다. 따라서 좀 더 큰 화제를 모을 법한 소식이었지만, 정작 은퇴의 의미에 대한 되짚기보다는 뒤이어 출간된 새 책에 대한 홍보와 안철수에게 남긴 훈계가 더 주목을 끌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직업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에 대한 되짚기라면, 정치에 대한 논평을 많이 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그에게 붙였던 별명인 ‘시미니히트’가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별명의 유래는 바로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90년대에 큰 인기를 끌며 정치 담론에 관심 있는 한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깊이 각인된 <은하영웅전설>에서 왔다. 이 작품은 우주를 무대로 하는 SF인데, 부패한 민주공화정으로 이뤄진 진영과 공정하고 우수한 리더가 등장한 군주제 세력이 서로 전쟁을 하는 줄거리다.

‘삼국지’가 지녔던 전쟁 상황 속 기발한 전략과 인간 군상들의 대처라는 재미에, 실제 정치체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우화로서의 재미까지 갖췄던 작품이다. (이 작품이 당시 독자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굽시니스트 작가의 책소개 만화에 잘 묘사되어 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80). 시미니히트는 유시민을 작중 등장인물인 ‘트뤼니히트’에 빗댄 것인데, 그는 바로 부패한 공화정의 국방위원장이다.
 

   
 
 

작품 속 트뤼니히트는 젊은 소장파 정치인이자, 뛰어난 연설능력으로 대중의 인기를 끈다. 권력을 추구하여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능력이 높고 자신의 정치 의제를 밀어붙이는 대단한 추진력의 소유자다. 그런데 문제는 정적들을 실각시키는 것에는 탁월한 실력을 보이지만, 권력 확보에 대한 지나친 획책과 엉뚱한 진영과의 파트너십 등을 통해서 공화정의 몰락을 재촉하고도 반성 없이 계속 그런 방식을 거듭한 인물이다.

직업정치인 유시민의 공격적인 권력 확보 의지를-개혁당을 열린우리당에 일방적으로 합병시킨 일, 파병 동의 같은 반진보적 입장으로 돌아선 일, 진보정당에 주는 표를 사표라고 몰아 부친 일, 민주당 잔류 세력을 구태로 몰아간 일, 그럼에도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 제안을 지지한 일 등-그 캐릭터에 빗대어 탄생한 별명이 바로 시미니히트였던 것이다.

자기 편의 힘을 전략적으로 늘리기 위해 대중의 인기를 지렛대 삼아 현실정치의 매서움을 들며 입장을 뒤집고, 함께 갔어야할 이들을 적으로 몰아낸 행동에 대한 조롱인 셈이다. 물론 전적으로 등치시키기에는 작품 속 캐릭터가 다소 과장된 악인이었고 현실의 유시민은 훨씬 복합적 면모가 있었기에 아주 공평한 호칭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가 직업정치인을 은퇴하며 이제 직업정치인이 되려는 안철수에게 남겼다는 첫 훈계인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가 내포한 비루함과 야수성을 인내하고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는 말이 유독 가시처럼 걸린다. 비루함과 야수성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적잖이 적극적으로 기여했던 행적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훈계를 남겨야한다면, 그 말 보다는 은하영웅전설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양 웬리의 한마디를 남기는 쪽이 낫겠다 싶다.

“정말이지 인간은 이기는 일에만 골몰하다가는 비열해진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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