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이 국민연금 폐지운동까지 초래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논란은 뜨겁다. 이런 배경에는 소득의 9%를 원천징수로 걷어가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과 함께 노후에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깔려 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국민연금 기금 고갈 위기론은 정부와 언론이 초래한 오해"라며 "기금은 고갈이 되도록 설계돼 있고, 언젠가 고갈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국가가 적립금 없이 그해 걷은 보험료로 노인들에게 국민연금을 지급한다"며 "고갈 자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고갈의 시기와 속도를 늦출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교수는 기금이 고갈된 후 미래세대의 부담이 크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2050년에 한국의 노인인구는 세계에서 두 번째가 되지만 연금지출액(국민연금+기초노령연금)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OECD 28개국 평균치에 약 2%가 모자라는 7~9%"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근혜 당선인의 기초연금 최종안에 대해선 "공약 위반"이라며 "여러 조건을 대고 기초연금 수급액을 줄이는 건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아래는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에서 이뤄진 김 교수와 일문일답이다.
 
 
   
▲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병철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되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오해다. 민간연금인 사보험은 회사가 망하거나 기금이 고갈되면 지급이 불가능하고, 연금을 받지 못할 확률이 크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연금지급의 주체인 국가가 소멸하지 않는 이상 지급 중단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적립 기금이 없으면 어떻게 국민연금을 지급하나.
"막대한 기금을 적립해놓고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 일본,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 5개국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다른 국가들은 적립 없이 국민연금 보험료에서 바로 지급한다. 기금을 적립하는 건 예비비 개념일 뿐이다. 보험료가 부족하면 세금에서 충당해서 지급하면 된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보험료 수입보다 국민연금 지급액이 많아 모자라는 부분을 조세로 충당하고 있다."
 
-기금 고갈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인가.
"국민연금공단은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기금 고갈을 전제로 설계됐다. 이는 예비비 차원에서 세대간 부양의 특수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며 설계 자체에 큰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 국가별 국민연금 방식. 김연명 중앙대 교수 제공.
 

-납세자연맹은 국민연금이 '금융 피라미드 사기'라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다단계 피라미드 구조가 맞다. 후세대(젊은층)가 앞선세대(노인층)를 부양하는 세대간 부양 구조다. 하지만 사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불법 피라미드 사업이 망하는 이유는 신규 회원이 지속적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젊은 세대는 계속 존재한다. 또 젊은 세대가 늙으면 그 후세대가 다시 부양한다. 만약 국민연금이 사기라면 유럽의 복지국가는 다 사기를 치는 건데 오히려 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국민연금 폐지 서명이 7만명을 넘었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인의 잘못된 발언과 언론의 무지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보고서 등을 보면 전형적으로 시장주의적인 관점으로 국민연금을 본다. 이에 따라 '기금이 고갈하면 연금을 못 받는다'는 주류 경제학의 시각을 진보진영이 받아 안고 2007년 연금을 개혁했다. 그때 정부가 세계은행의 보고서를 따라 사보험에 적용하는 수익비 등의 개념을 국민연금에 적용하면서 오해가 발생했다."
 
-그동안 기금 고갈론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는 없었나?
"거의 없었고 오히려 고갈된다고 앞장섰다. 언론의 보도가 국민의 불신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고갈 시점은 '팩트'니깐 보도할 수 있는데, 그 후에 어떻게 지급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언론은 국민연금을 사보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깐 기금 고갈이 자연스럽다는 걸 이해 못하는 것이다." 
 
-낮은 수익률이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국민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런데 언론은 떨어질 때만 보도하고 다시 올라가는 건 보도하지 않는다. 그러니깐 대부분의 국민들은 '공단이 다 말아먹었다'고 인식한다. 정치인들도 국정감사에서 '수익률이 낮다'고만 비판하니, 공단도 수익률 높이는 방향으로만 갔다. 공적연금 제도로서 국민연금의 본질을 부각하지 못했다. 결국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의 쌓이는 매커니즘이 작용했다. 반은 정부, 반은 언론 책임이다." 
 
 
   
▲ 해외 주요 공적 연기금의 수익률 추이. 김연명 중앙대 교수 제공.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가 또 있나.
"국민연금을 내가 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받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건 사보험이다. 국민연금 지급액의 절반은 내가 낸 보험료에서 나오고, 나머지 절반은 미래세대가 부담한다. 국민연금 가입 연도와 소득에 따라 수익률이 다르지만 대부분 수익비(보험료 대비 수급액)가 1을 넘는다. 이 초과분은 미래세대가 부담하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은 본인이 낸 돈으로 연금을 받는 구조가 아니라, 미래세대가 현세대 노인의 부양액의 절반을 책임지는 구조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미래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이 과중한 것 아닌가.
"미래세대가 노인을 부양하다가 파국을 맞는 다는 건 막연한 주장이다.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면 후세대의 노인부양 부담은 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어 한국 노인들의 대량빈곤 문제가 지속될 것이다. OECD 28개국은 2050년에 GDP의 11.7%를 노인부양에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국은 2050년에 GDP의 7~9% 정도를 지출할 것으로 추정된다. 즉 노인인구는 세계에서 두 번째이나 연금지출액(국민연금+기초노령연금)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OECD 28개국 평균치에 약 2%가 모자란다." 
 
-학자들마다 국민연금 고갈론에 대한 입장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현 세대의 '이중부담론'을 인정하냐 안하냐의 차이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들은 농업사회에 태어난 세대(A세대)로 구조적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없었고 자식들이 노후를 책임져 줄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의 30~50대 세대(B세대)는 부모를 부양해야 하고(생활비 지급) 본인의 노후도 챙겨야 하는(국민연금보험료 부담) '이중부담'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30~50세의 자녀(C세대)들은 B세대가 연금을 받기 때문에 B세대가 A세대에게 해주었던 만큼의 사적 노인부양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B세대의 이중부담 문제를 C세대가 일부 나눠지는 것이 세대간 공평성에 부합된다.
 
즉 미래세대인 C세대는 B세대의 부양비 일부를 연금보험료를 통해 지급할 역사적 의무가 있다. 따라서 후세대의 보험료 부담은 갈취가 아닌 노인부양에 대한 정당한 의무다. 현 세대의 이중부담론을 인정하면 후세대가 보험료를 올려야 하고. 이중부담론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른바 '미래세대 갈취론'이 인정된다." 
 
 
   
▲ 국민연금 적립금 현황.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2008년), 국민연금연구원.
 

-미래세대도 낮은 취업률과 저성장으로 어려운 상황 아닌가.
"미래세대가 '우리는 일자리도 없다' '노인 부양 부담이 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세대는 지금의 노인세대와 30~50대 세대가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모두 사회적 유산으로 받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주택의 상속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이미 넘어섰는데 이는 모두 미래세대에게 유산으로 상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미래세대는 현 세대나 지금의 노인세대가 지출했던 것 만큼의 막대한 주거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미래세대는 G20에 들어간 대한민국의 모든 경제, 사회적 자산을 물려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 하나가 미래세대의 삶을 황폐화시킨다는 것은 과도한 생각이다."
 
-인수위의 기초연금 최종안을 어떻게 생각하나.
"65세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씩 지급하는 것이 공약이었다. 그런데 국민연금 가입여부와 소득에 따라 차등지급하겠다는 최종안은 공약 수정이며, 공약 위반이다. 그리고 박근혜 당선인의 최종안은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중복개념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회사 사장 후보가 자신이 사장으로 뽑히면 모두에게 보너스 10%를 주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사장이 된 후 월급에 따라 보너스를 차등지급하겠다고 바꾸는 것과 같다. 기초노령연금은 2007년 연금개혁 때 국민연금 수급액이 너무 낮아져서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여러 조건을 대서 기초연금 수급액을 줄이는 건 말이 안된다."
 
-국민연금 적립금의 일부를 기초연금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나는 예전부터 쌓아둔 국민연금 재원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연금은 집단간 부양제도이기 때문에 현재 노인이 굶고 있는데 옆방에 금은보화(적립금)를 쌓아두는 건 문제다. 국민연금은 내가 5천만 원을 보험료로 내면 1억 원을 받는 개념이다. 나는 후세대에게 돈을 타 쓰면서 내가 부모에게 돈을 안 준다는 건 '넌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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