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대선을 2년이나 앞둔 현재,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위한 정치방침을 공개적으로 조언하는 시론이 등장했다.

지난달 28일 문화일보에 실린 윤창중 논설위원의 시론 <‘이회창식 중도 통합론’인가>가 그것이다.

윤위원은 “총선 후에 이총재가 범한 가장 큰 오류를 자민련과 신생야당들을 포용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총재가 먼저 원내교섭 단체구성 요건완화를 제의해 자민련의 공동여당 복귀를 막았다면 한나라당의 지역기반이 영남권에서 충청권까지 확대돼 명실상부한 다수당이 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 남북정상회담 이후 입장 정리를 못하고 있다가 영수회담 제의에 응해 정상회담결과를 승인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겠다’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며 이총재의 전략부재를 아쉬워한다. 의약분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여야 영수회담도 김대통령이 상생정치라는 카드를 갖고 이총재를 끌고 가게 만들었다며 “이러니 여권에서는 ‘이회창씨가 다음 대선에서 나오면 우리가 이긴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윤위원은 이총재가 계속 패착을 두고 있는 이유를 여전히 플라톤적 도덕주의의 끈을 잡고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권력정치에서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플라톤적 도덕주의가 악의 교사로 매도되는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앞에서는 무력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충고한다.

시론은 한 시대의 여론, 당시의 세론(世論)이라는 말이다. 우리 언론이 여론을 참칭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 지 이미 오래이므로 시론이라는 단어의 적합성을 갖고 다투는 것이 의미없는 행위라 해도 윤위원의 글은 도를 넘어섰다. 이 글은 ‘시론’이라기보다는 이총재의 정치 보좌관이 작성해 올리는 ‘보고서’라고 해야 옳다.

낙후된 우리 정치의 개혁을 위한 언론인의 관점은 전혀 없이 이총재가 권력장악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데만 목을 매고 있다. 오죽하면 지역감정 해결에 앞장서야 할 언론인이 ‘자민련을 포용해 지역기반을 충청권으로 확대’하라고 충고하겠는가. 지역기반의 확대는 역대 정권의 선거정책이었던 호남포위·고립 작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결국 지역감정에 기반한 정권획득을 공공연하게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윤위원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의 부대변인을 역임했으며 새천년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과 함께 게이오 대학에서 연수를 받은 후 지난해 문화일보에 들어왔다. 당시 권노갑 상임고문의 영향력 행사에 의해 입사했다는 문화일보 노조의 반발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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