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까지 중앙일보 신문인쇄 사업장에서 일했던 노동자 조아무개씨(52)는 아직 정년이 3년이나 남았는데도 회사 측의 희망퇴직 요구에 원치 않은 서명을 해야 했다. 종이신문의 입지가 점차 축소되면서 회사의 경영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조씨는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다.

조씨와 함께 이번 구조조정 대상이 된 노동자는 모두 51명으로 기존 219명 중 4분의 1에 달한다. 이들은 2월 중 모두 실업자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동의에 따른 희망퇴직이지만 사실상 사측의 종용에 가까웠다는 게 조씨의 주장이다.
 
“나이 많고 월급 많은 사람 위주로 공장장과 면담을 했어요. 우리 회사의 경우 아직 흑자 경영을 하고 있고 회사가 당장 구조조정을 할 만큼 어렵지도 않은데도 50명이나 나가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었죠. 그래서 처음엔 버텼는데 제가 안 나가면 다른 젊은 직원을 자르겠다네요.”
 
결국 조씨는 함께 구조조정 대상이었던 젊은 직원을 계속 다니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퇴직원에 서명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갓 결혼해 아내가 임신까지 한 직원을 차마 그만두게 할 수는 없었다. 중앙신문인쇄(현 에이프린팅주식회사) 초대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지난 2002년 언론사 노동자 초유의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던 그가 25년 동안 정든 직장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4근 1휴에 휴일 잡무까지… 직원들 못 참겠다 퇴사 
 
현재 중앙일보의 인쇄를 맡고 있는 곳은 에이프린팅(주)과 미디어프린팅넷(주) 두 곳이다. 최근 조직개편에 따라 대구 사업장만 운영하던 미디어프린팅넷이 에이프린팅이 관리하던 부산 사업장까지 인수하면서 직원이 대폭 줄었다. 최소 인원으로 무리하게 경영을 시도함으로써 직원들이 업무 과중으로 대거 그만뒀기 때문이다. 
 
   
▲ 중앙일보 사옥
 
현재 대구 사업장의 경우 윤전기 2세트에 배치된 인원은 모두 16명으로, 비슷한 조건의 부산 사업장보다 30명이나 직원이 적다. 다른 사업장이 2~3일 근무하고 하루 쉬는데 비해 이곳은 ‘4근 1휴’로 운영되고 있다. 사측에서 쉬는 날인 토요일에도 협력업체에 가서 삽지 등 업무를 강요해 노동자들의 불만이 자자한 곳이다. 부산 사업장은 본래 희망퇴직자를 11명까지 받을 예정이었지만 무려 23명이나 신청했다. 과도한 업무 공포 때문이다. 
 
회사 측은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고 말한다. 에이프린팅 총무팀 관계자는 “중앙일보 전체의 순익이 많이 악화됐고 앞으로의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중앙일보 본지를 포함해 외간도 줄어드는 추세”라며 “고용할 수 있는 최대 기준 인원에서 더 빠듯하게 몇 명 정도로 운영할 수 있을지 판단해 최소 희망퇴직 인원을 50명 정도로 산정했다”고 밝혔다. 
 
전체 신문 부수를 관리하는 중앙일보 관계자는 “베를리너판 도입 이후 시스템이 안정화됐고 유휴인력이 생긴 것이 사실”이라며 “부수 감소에 따른 인력 효율화 필요성이 있었고 바뀐 시스템이 안정화되는 효과를 일정 기간 검증해야 했기 때문에 최근에야 인력 조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중앙일보 관계자 말에 의하면 현재 중앙일보 본지 발행부수는 130만 부 정도로, 한국ABC협회가 공개한 2011년 중앙일보 발행부수(130만 부)와 동일한 수준이다. 노동자 4분의 1을 그만두게 할 만큼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이 남는 지점이다.
 
김민아 전국언론노조 노무사는 “희망퇴직의 경우 본인이 신청하지 않으면 해고할 수 없어서 법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후 정리해고의 수순으로 이어지면 사측에서는 희망퇴직을 해고 회피 노력으로 주장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리 해고할 사람을 정해 놓고 희망퇴직을 반 강제한 것이라면 자발적 의사표시로 인한 사직인지 따져볼 수 있다”며 “나중에라도 정리해고가 진행될 때 이를 해고 회피 노력으로 볼 수 없다고 다툴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아 인쇄 노동자들, 폐쇄공장 재가동에 노조 와해 불안 증폭
 
앞서 동아일보도 지난해 10월 31일부로 서울 오금동 인쇄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 71명을 정리해고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동아일보신문인쇄지부는 구조조정 당시 윤전기 한 세트당 5~6명의 적정인력을 유지하기로 합의하고 사측의 구조조정 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 사측이 5만 부 가량의 이데일리 신문을 인쇄하기로 계약하면서 오금동 공장에 직원 8명을 투입해 재가동하겠다고 밝혀 불과 4개월 만에 공장 폐쇄 방침을 철회한 데 따른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측이 수익만을 좇아 회사를 경영하면서 주먹구구식으로 노동력을 판단해 직원들의 고용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 내부 관계자 말에 따르면 회사가 오금동 공장을 재가동하는 이유는 공장 폐쇄 이후 매각이 원활하지 않고 값이 내려가자 공장을 다시 돌림으로써 매각 대금을 높이고자 하는 임시적 조치라는 것이다. 
 
만일 사측의 계획대로 오금동 공장이 중간에 매각된다면 충정로와 안산 공장에서 차출된 정규직 직원 4명은 원대 복귀가 가능하지만 계약직으로 새로 채용될 4명은 곧바로 해고될 수밖에 없다. 
 
오금동 공장이 정상 가동돼도 문제다. 사측 입장에선 향후 경영상의 효율성을 들어 오금동 공장과 비교해 충정로와 안산 공장의 인쇄물량과 인력을 감축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발송 사업장을 분사(分社)하고 지난해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노조 조합원 수를 100명이나 줄였는데, 뚜렷한 경영상의 이익이 없음에도 회사를 나누겠다는 것은 노조를 와해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조합원들의 불안과 불만이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동아프린테크 총무부는 동아일보 본사 경영전략실에서 계약을 총괄한다고 말했지만 동아일보 경영전략실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대해 아직 아는 바가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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