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의 생존이 디지털 전략에 달려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경향신문 조선일보 한겨레 경남도민일보 등 종이신문들은 지면 PDF 서비스 및 부가서비스를 유료화했다. 한국경제와 매일경제 등도 기업에게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종이신문들은 디지털 콘텐츠 유료화에 대해 유보적인 상황이다. 지난달 한국신문협회가 회원사 경영담당자 임원 및 국·실장들 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인 13명이 ‘시장상황을 지켜본 후 유료화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응답했다. 향후 5년 내 유료화할 것이라는 응답자는 11명이었다.

14일 서울 충정로 한국경제신문 본사에서 디지털전략팀 최진순 기자를 만나 한국 언론이 콘텐츠 유료화 문제를 두고 당황하는 이유를 물었다. 최 기자는 한국의 주류 신문들이 유료화를 위한 기술적 조건을 갖추더라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저널리즘과 비저널리즘 측면 모두에서 한국 언론의 콘텐츠 유료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최진순 기자의 주장이다. 그는 “그동안 주류 언론이 저널리즘을 왜곡해 수용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20세기 신문쟁이의 사고방식으로 디지털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순 기자는 대체재가 많은 디지털 시대에 뉴스콘텐츠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품의 속성이 변한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날로그로 정보를 유통하던 시기, 신문이 독점하고 통제한 정보는 희소성이 있어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플랫폼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정보재로서 뉴스의 속성은 180도 바뀌었다.”

최진순 기자는 “IT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한국에서 언론은 지난 10년 동안 지면에 나간 상품을 그대로 디지털에 제공해 왔다”면서 “그러나 이런 뉴스는 디지털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디지털에 대한 접근방법과 프로세스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 최 기자의 진단이다.

“멀티미디어, 양방향성을 확보했다고 해서 이용자가 지불의사를 내비친다? 절대 아니다.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스타임스의 성공은 디지털 시대 수용자의 니즈(Needs·욕구)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최진순 기자는 “한 마디로 우리나라 언론의 뉴스 유료화 준비 수준이나 규모는 대단히 일차원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면서 “우리 언론은 해외언론이 ‘Digital First’ 전략을 채택하면서 조직과 역량을 다 바꾸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까 단순히 유료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가 예로 든 기사는 한국 언론과 뉴욕타임스의 ‘휴대폰 기사’다. 한국 언론의 삼성 갤럭시S3 출시 기사는 천편일률적인데 뉴욕타임스는 IT기자가 직접 개봉하고 사용한 동영상을 함께 내보낸다. “한국 언론은 아직도 SKY 출신들이 출입처를 다져서 만든 기사를 내보낸다. 뉴욕타임스는 다르다. 디지털 시대 수용자가 원하는 것은 ‘공감’이다. 편집국장, 논설위원이 독자와 소통하면서 공명을 일으키고 기자는 독자의 피드백으로 기사를 쓴다.”

영국 언론 가디언에는 독자와 소통하면서 작성된 기사가 다수 있다. 뉴욕타임스 누리집에는 텍스트와 동영상이 결합돼 인터넷 이용자가 선호하는 기사가 많다. 이에 반해 한국 언론은 종이신문 기사와 디지털 기사에 큰 차이가 없다. 차이는 뉴스의 ‘강도’ 뿐이다. 온라인에는 연예, 스포츠 등 연성기사가 주력이다. 그러나 포털사이트 검색어를 따라잡기 바쁜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뉴욕타임스 등 지난 10년 가까이 디지털 전략을 추진한 해외언론의 경우, 지면 독자는 줄고 있지만 유료독자는 늘고 있다. 최진순 기자는 ‘보스턴 글로브’의 독자 타깃팅을 예로 들었다. 최 기자에 따르면, ‘소셜 커머스’를 최초로 시도한 곳은 다름 아닌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 보스턴 글로브다. 이 매체는 독자 커뮤니티와 그 지역 레스토랑 할인쿠폰을 결합해 독자의 충성도를 끌어올렸다.

일본 일간지 아사히는 독자층을 분석해 신문구독 가구 중에 여학생이 다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14~18세 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타블로이드신문 ‘아스파라 클럽’을 만들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독자를 1차원적으로만 관리해 ‘디지털 전환율’은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최 기자의 진단이다.

최진순 기자는 뉴스콘텐츠 유료화의 변수로 8가지를 들었다. △디지털 시대 문화상품으로서 뉴스콘텐츠에 대한 이해 △뉴스생산 조직의 혁신 △포털·독자 등과 커뮤니케이션 혁신 △뉴스 유통 등 기술적 조건 △지불방식의 과학화 △모바일 플랫폼에 대한 이해 △디지털 수용자에 대한 이해 △시장과 경쟁매체 관계 △유료화를 위한 정책 등이다. 최 기자는 한국 언론에 대해 모든 부문에서 낙제점을 줬다.

“뉴스 유료화는 디지털에 대한 인식, 콘텐츠·조직·커뮤니케이션 혁신, 기술·제도적 변수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적인 점검과 검토가 성숙돼야 유료화 논의를 할 수 있다. 이래야만 수용자의 지불의사 저항을 완화하면서 해외언론의 유료화 모델로 수렴될 수 있다.”

그러나 최진순 기자는 이 같은 조건이 어느 정도 마련되더라도 한국 언론의 유료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기자는 “저널리즘은 심하게 왜곡됐고, 통신비는 한계에 다다랐다. 지난 십 년 동안 뉴스소비문화가 쉽게 바뀔 것이라고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유료화가 불가능한 구조가 있다는 것. 그는 포털, 이용자, 경쟁매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유료화에 적대적인 상황 또한 거론했다.

최 기자는 “뉴욕타임스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지만 저널리즘에 충실하다는 인식을 획득했지만 한국의 주류 언론은 저널리즘의 측면에서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면서 “경제지도 친기업적이라고 하는 비판이 있다. 수용자들에게 지불의사를 이끌어낼 만한 강한 문화상품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소득이 정체된 경제적 조건도 유료화의 장애물이다. 최진순 기자는 “한국의 가구당 미디어 지출 비용은 20만 원 수준인데 지금의 소득구조로 볼 때 한계에 다다랐다”면서 “통신비용이 포화상태인 상황에서 다른 비용을 지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성공한 해외 언론은 모두 우리보다 선진국이고 문화 지출비용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전했다.

최진순 기자는 지난 10년 동안 디지털 이용자들의 뉴스 소비문화가 포털 중심이었다는 것도 걸림돌로 지목했다. 최 기자는 “아무리 매체별 소비를 장려하더라도 지난 십 년 동안 이용자들은 포털에서 뉴스를 소비해왔다”면서 “문화로 형성된 뉴스소비경험에 변화를 주기는 시장구조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최진순 한국경제신문 기자
 

최근 온라인 뉴스콘텐츠 유통을 주도해 온 인터넷서비스사업자 네이버는 기사를 낱개로 소비하게끔 하던 뉴스캐스트를 ‘매체 소비’를 지향하는 뉴스스탠드로 개편했다. 이를 두고 최진순 기자는 “(뉴스스탠드가) 탈(脫)포털 뉴스 유료화의 자생적 모델을 만드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십여 년 동안 익숙해진 뉴스소비문화가 바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비관론’에도 유료화가 언론의 생존방법이고, 기존 언론은 다양한 모델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최 기자의 의견이다. 그는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프레시안 ‘소액결제’ 모델, 뉴스타파의 ‘후원 모델’ 등을 거론했다. “디지털 생태계에서 수용자는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다. 더 많은 리트윗, 더 많은 클릭, 더 많은 의견으로 개별 기사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수용자들이 좋은 저널리즘에 대해 경제적 행위를 할 때 수용자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수용자들이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어떤 모델이 가능할까. 최진순 기자는 블로그와 기성 언론의 결합을 시도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한국경제가 공간을 제공하고 슬로우뉴스와 ‘광파리’ 김광현 IT전문기자가 함께 기사를 쓰고 유료화 모델을 시도한다고 해보자. 충분히 유인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규모라도 개별 기사에 대한 자생적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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