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음원 유통사를 통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지 않거나 공식적인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음반을 판매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늘었다. 물론 예전에도 인디 씬의 일부 뮤지션들은 수공업적으로 만든 음반을 홍대 앞 라이브 클럽과 카페, 복합문화공간 등에서만 유통했고 지금도 이 같은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녹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홈레코딩으로도 얼마든지 양질의 사운드를 뽑아낼 수 있게 되었고, 홍대 앞이라는 지역에 형성된 문화예술 시장과 인터넷으로 판매가 손쉽게 가능해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사례는 음원 유통사가 도매금으로 후려치듯 헐값에 제공하는 정액제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인 자신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거부해버리는 쪽에 더 가깝다. 이미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와 해리 빅 버튼(Harry Big Button)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거부한 새 음반을 내놓았다. 나는 모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릇, 위댄스, 회기동 단편선, 조월 등의 경우에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다운로드 서비스를 거의 하지 않고 주로 음반으로 판매중이다. 이렇게 자신의 음악을 유통하는 경우는 이밖에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싱어송라이터 시와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2월 14일 새 음반 [시와, 커피]를 내놓은 시와는 아예 음반을 만들지 않았다. 그녀의 새 음반은 오직 음악 서비스가 가능한 모든 국가의 아이튠즈 계정과 밴드캠프(http://withsiwa.bandcamp.com), 그리고 현대카드 뮤직(http://music.hyundaicard.com)에서만 들을 수 있다. 생태적 고민 때문이다. “귀촌해서 사는 친구가 전기도 안 쓰고, 아궁이에 불 때고, 너무나 평화롭게 사는 모습에 감동받아 제 삶을 바꿔보고 싶었”고 “그런 고민을 하다보니 플라스틱 CD가 마음에 걸려 이번 음반을 'CD 없는 음반'으로 만들자는 결심에 이르렀”다는 것이 시와의 고백이다. 이번 앨범을 만들기 위해 시와는 ‘나무가 필요해’라는 자신의 레이블도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시와의 새 노래를 들으려면 밴드캠프, 현대카드 뮤직, 아이튠즈로 가거나 6천원을 내고 이메일(withsiwa@hanmail.net)로 직접 주문해야 한다. 국내의 불합리한 음원 유통 서비스를 피하고, 최대한 뮤지션의 권리를 보장 받으면서 동시에 친환경적으로 음악을 유통시키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시도이다. 하지만 시와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익의 20%는 녹색연합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원시림 보호캠페인 '종이는 숲입니다'에 기부되기 때문이다. 시도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문제의식은 오롯하다.

총 네 곡이 담긴 이번 음반의 노래들은 시와가 지금까지 해왔던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현재 활동하는 여성 포크 싱어송라이터들 가운데 가장 속 깊고 아릿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시와는 이번 음반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목소리를 중심에 두고 가능한 한 덜어내기"와 "오붓한 단독 공연 '시와, 커피'의 정서를 전달하기"에 치중한 까닭에 각 곡마다 사용된 악기는 거의 시와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곡마다 한 개 정도의 악기만이 부분적으로 더해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시와의 목소리가 크게 느껴진다. 녹음 역시 시와의 목소리를 바로 눈 앞에서 듣는 느낌을 살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가까운 느낌을 준다.

투명하면서도 아련한 떨림을 가진 시와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어느 악기로도 대신할 수 없는 울림을 갖고 있다. 쉽고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 고민과 번뇌를 거쳐 도착한 생각들의 깊이와 고요, 슬픔과 아픔을 모두 아우르며 고백하듯 부르는 노래는 모두 잠든 새벽, 가슴 저미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울림과 위로의 힘이 있다. 이번 음반에 담긴 노래들 가운데 특히 ‘그대의 우물에서’이 이러한 시와 음악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그대의 우물에서 나는 물을 길 수가 없’다고 고백하는 목소리는 그 목소리로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데다, 숨죽인 나일론 기타와 프렛 리스 베이스의 따뜻한 손길로 슬픔을 다독이며 이 생을 건너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외국 민요의 느낌을 주는 ‘마시의 노래’에서도 시와의 목소리는 박혜리의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아련한 질감을 더한다. 봄눈별의 인디언 플루트로 시작하는 ‘인사’ 역시 따뜻하고 아련한 여운은 한결 같다. 시와는 이 음반을 제주도에서 녹음했고, 밴드 투명의 베이스 연주자인 정현서가 함께 프로듀싱을 했다. 이전의 음반과는 달리 ‘그대의 우물’ 한 곡만 직접 가사를 쓰고 다른 곡들은 다른 이들이 쓴 이야기와 시, 글에 노래를 붙인 이 음반을 두고 시와는 “정규 음반 [소요]까지의 시와는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했고, 다음 음반 [Down to Earth]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면, 이번 [시와, 커피]는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고 설명했다.

이미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를 알고 있다면 다시 한 번 빠져들게 될 노래이고, 마음을 다독여줄 노래를 찾고 있다면 분명 위로가 될 노래들이다. 음반 없는 그녀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지구가 되살아나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희망은 새로운 길처럼 다시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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