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일가족 살해 사건의 수사가 종결됐다. 부모를 죽인 살인범은 아들이었다. 그는 싸이코패스로 진단할 수 없는 평범한 20대 대학생이었다. 수사기관과 언론은 그의 치밀한 살해방식과 함께 살해동기에 집중했지만, 이렇다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원한도, 돈도 살인의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이번 살인 사건은 어쩌면 '암수범죄(Hidden Crime)'가 될 수도 있었다. 암수범죄란 범죄는 발생했으나 수사기관이 이를 인지하지 못해 공식 범죄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범죄다. 다른 말로는 ‘완전 범죄’다. 살인범과 피해자가 안면이 없거나 살인동기가 없는 경우, 암수범죄가 이뤄질 확률은 높다. 지하철을 탔는데 나와 아무 관계없는 옆자리 남자가 으슥한 곳까지 따라와 나를 살해할 경우 그가 증거를 남기지 않는 이상 나는 ‘실종’ 처리될 수 있다.

미국에는 암수범죄와 연쇄살인이라는 키워드로 성공한 드라마가 하나 있다. 2006년 10월부터 ‘쇼타임’(SHOWTIME) 케이블에서 방송중인 <덱스터>다. <덱스터>는 지난해까지 시즌7이 나올 만큼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주인공 덱스터 모건은 연쇄살인범을 찾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마이애미 경찰국에서 혈흔분석가로 일하며 사회적 존경을 받지만, 밤에는 살인을 저지르며 두 개의 삶을 산다.

   
▲ 미국 드라마 '덱스터'의 주인공인 덱스터 모건.
 

매회 200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덱스터를 찾는다. 케이블방송으로선 이례적이다. 덱스터는 뛰어난 지능으로 암수범죄를 저지르는데 능하다. 자신과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는 범죄자를 찾아 죽인다. 그는 살인 그 자체에서 삶의 이유를 찾는다. 변화없는 일상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아슬아슬한 덱스터의 삶에 묘한 흥분을 느낀다.  

그는 동물성 마취제로 ‘먹잇감’을 기절시킨 다음 미리 준비해놓은 살인 장소로 이동한다. 시체는 토막 낸 다음 바다에 내다 버린다. 시체를 토막내는 과정에서 혈흔 한 방울을 남기지 않는다. 죽이기 직전에는 피를 수집해 현미경용 슬라이스에 담아 보관한다. 일종의 트로피이다. 슬라이스가 총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죽였다. 

법의학자가 연쇄살인범이란 설정은 흥미롭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명망 있는 직업군(검사, 의사, 정치인 등)이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덱스터>는 법제도에 도전적인 서사와 살인자에 대한 심층적인 감정 묘사로 드라마를 풀어나간다. 

우선 그에겐 ‘코드’가 있다. 살인범이나 강간범처럼 ‘죽어도 싼’ 이들만 선별해 죽인다. 이들은 경찰도 잡아내지 못한다. 덱스터의 살인행위는 ‘사회악 제거’라는 면에서 정당화된다. 살인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 덱스터는 길거리를 활보하며 총기난사를 하지 않기 위해 ‘합리적’으로 욕망을 제어하는 방식을 택했다. 

   
▲ 연쇄살인범 덱스터가 바닷속에 버린 시체묶음들.
 

아마 <덱스터>와 같은 드라마가 한국의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연쇄살인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됐을지 모른다. 확실히 덱스터는 위험하다. 그의 행위는 법치를 부정한다. 죄질이 나쁘다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덱스터의 모습은 위선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범죄자를 없애고 아무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연쇄살인범으로 살아가는 덱스터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연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싸이코는 사회부적응자를 의미하지만, 덱스터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과 명예를 갖고 부족하지 않은 부를 누리며 불의에 대체로 저항한다. 그는 자신의 ‘실체’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늘 살인의 끝에서 고독을 마주한다. 감정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고뇌하며 살인자로서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모습에선 누구에게나 인생의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무엇보다 <덱스터>는 우리 모두에게 잠재된 욕망을 솔직하게 끄집어낸다. 우리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다. 뉴스에 등장하는 저 뉘우침 없는 무표정한 얼굴의 범죄자를 보면 죽여야 하다고 생각한다.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던 독재자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덱스터 모건으로 투영되는 아슬아슬한 범죄자의 삶은, 드라마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우리에게 복잡한 기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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