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베를린>의 스토리 전개와 인물 성격,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한 설정 등이 소설 <차일드44>과 매우 흡사하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베를린>은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북한 비밀요원 표종성(하정우)이 자신과 아내 련정희(전지현)에게 '공화국 반역자'라는 누명을 뒤집어씌운 동명수(류승범)에 맞서, 한국 국정원요원 정진수(한석규)와 함께 이 음모를 파헤친다는 국내 액션첩보영화다.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하정우, 한석규, 전지현, 류승범 등 톱배우들이 열연을 펼친 <베를린>은 첩보 액션물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할 만큼 수준 높은 장르물로 평가받고 있다. 류 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기도 했다. (미디어오늘 관련기사 <한국영화, 베를린에서 드디어 ‘표종성’을 얻다>)  

하지만 <베를린>이 소련 스탈린 체제 하에서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차일드44>(톰 롭 스미스)의 초반 스토리 전개와 설정 등이 비슷해 "영화를 보는 내내 기시감마저 든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소설은 영미권 최고의 문학상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고 그해 가장 뛰어난 추리소설에 수여하는 'CWA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 상'을 수상하는 등 유수 문학상을 수상했다. 전세계 36개국에 출간해, 현재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영화로도 제작 중에 있다.

이 논란은 <차일드44>의 번역가가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시작됐다. 그는 "설정과 인물 구도, 주인공들이 간간이 나누는 대화도 차일드44와 흡사한 게 많다"는 글을 남겼다.

‘아내의심-미행-임신-당성테스트’ 같은 설정

가장 유사한 부분은 영화 초반 표종성이 아내를 의심하게 되는 장면이다. 영화는 독일 주재 북한 대사 리학수의 외국 망명 시도가 동명수에 의해 드러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북한 '공화국 영웅'이자 비밀요원 표종성은 이 과정에서 아내 련정희가 타국에 정보를 흘리고 있다는 동명수의 말을 듣게 되고, 아내를 의심하게 된다.

 

   
▲ 영화 <베를린> 포스터
 

그 뒤 표종성은 아내의 간첩 증거를 잡기 위해 지하철에서 아내를 미행하고, 아내가 자신에게 말한 목적지와는 다른 곳에서 내리는 사실을 알게 된다. 표종성은 아내에게 거짓말을 한 일에 대해 추궁하자 련정희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린다.

<차일드44>에서 소련 국가안보국 요원으로 등장하는 레오도 반역자로 몰린 브로츠키가 죽기 전 아내 라이사 역시 반역자라는 자백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미행한다. 기차 안 장면이 나오며, 아내는 집과 다른 방향의 기차를 탄다. 그리고 레오가 추궁하자 라이사는 아이가 생겼다고 말한다.

다음은 <차일드44>에 나오는 문구다.

"발목까지 오는 회색 모직 코트를 입고 두꺼운 털모자를 푹 눌러쓴 레오는 아내가 우연히 그가 있는 쪽을 보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미행하는 장면, p.140)
"라이사가 집에 가는 길이라면 계속 이 기차를 타고 세 정거장을 더 가서 테아트랄나야 역에서 아르바츠코-포크롭스카야 선으로 갈아나서 동쪽으로 갈 것이다"(p.148)
"라이사가 말을 이었다./'아기가 생겼어요.'"(p.161)

표종성이 련정희의 이중간첩 행위를 밝히는데 주어진 시간도 '2일'로 소설과 같다. "증거를 수집하는 데 이틀을 받았어요. 그리고 보고해야 합니다."

표종성이 침대 메트릭스를 칼로 찢고 손을 넣어 뒤지는 등의 집안 수색장면은 물론 동명수가 그의 집의 찾아 련정희의 속옷을 만지는 척 하며 동전 모양의 USB를 집어넣는 장면도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레오는 침대보와 베갯잇과 이불을 찢고, 메트리스를 뒤집어서 장님이 점자를 읽는 것처럼 꼼꼼하게 매트리스의 구석구석을 만져보았다."(p.166), "바닥에 무더기로 쌓인 옷을 본 바실리는 허리를 구부리더니 라이사의 속옷을 하나 집어들었다, 그는 손가락 사이에 속옷을 집어 넣어서 비비다가 돌돌 무쳐서 냄새를 맡으며 레오를 뚫어져라 보았다"(p.169)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p.174에는 "동전은 떨어지면서 반으로 갈라져 쪼개진 반쪽 두 개가 캐비닛 반대편으로 굴러갔다", "이것은 마이크로필름을 몰래 운반하는 장치였다"고 나온다.

뿐만 아니라 표종성이 아내를 의심하게 만든 것이 일종의 '당성 테스트'였다는 설정도 소설과 일치한다. 소설에는 "이 일은 테스트이자 연습이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레오가 비밀경찰이 될 만한 자질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p.175)는 내용이 등장한다.

동명수가 련정희에게 남편이 의심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영화의 한 장면도 소설에 나온다. 라이사도 "네 남편이 널 미행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더러웠겠지"라는 바실리의 말을 듣고 사실을 알게 된다.

노란주사액·동전모양 장치·체포시간 ‘새벽4시’도…

리학수에게 투여되는 나오는 '노란 주사액'도 소설 속 내용과 같다. 소설에는 "주사기에 짙은 노란색 오일을 가득 채우더니" 등 반역자로 지목된 브로츠기에게 주사액을 투여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눈동자가 말렸고 그가 앉아 있던 의지가 1천 볼트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p.111)

 

   
▲ 영화 <베를린> 포스터
 

스토리 전개뿐만 아니라 캐릭터 성격도 비슷하다. 표종성은 자신뿐만 아니라 리학수 대사 등 베를린의 북한 인사들은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충성심이 강한 인물이지만 반역자를 색출해 낼 때는 객관적인 증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요원'으로 등장하는 레오 역시 비슷하다. "레오는 단순히 시키는 대로 따르는 대신 새로 생긴 권한을 이용해 좀 다른 식으로 일을 처리해보고 싶었다. 그는 조사관이고, 조사를 하고 있었다."(p.58)

표종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동명수는 소설 속 바실리를 떠올리게 한다. 바실리는 반역자가 라이사를 '고발'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며, 레오를 위험에 빠뜨린다. 바실리와 함께 레오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관 쿠즈민은 동명수의 아버지 동중호와 유사한 캐릭터다.   

물론 영화 < 베를린>과 소설 < 차일드 44>는 이야기의 배경과 이후 펼쳐지는 전체 내용은 다르다. 영화는 베를린에서 남북대치 중인 한반도 상황을 배경으로 삼았고, 소설은 소련 스탈린의 공포정치 시대를 그렸다. 또한 표종성이 자신과 아내에게 씌워진 음모에서 탈출하는 것이 영화의 주요 스토리이며 소설의 경우 레오가 공포정치 하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아내를 의심하는 장면 역시 주인공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한다거나,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설정이 <차일드44>만의 독특한 설정이 아니다. 액션첩보영화에서는 등장하는 흔한 설정이다.

하지만 아내를 의심하게 되는 이유와 의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일들, '지하철 미행 및 집안 수색-아내 임신 인지', 그리고 그 이면에 깔린 주인공 요원의 충성심에 대한 '테스트'이라는 설정은 소설과 판박이다. 표종성과 동명수의 관계 또한 레오와 바실리의 관계가 흡사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몇 가지 장치인 노란 주사액, 속옷에 든 동전 모양의 장치 등도 소설과 판박이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표절했다'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영화 속 대사가 소설과 유사한 점도 문제로 삼고 있다. "가장 믿음이 가는 사람이 가장 의심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는 동명수의 대사가 소설 속 등장하는 "믿는 이들을 조사하라"는 문구가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믿는 이들을 조사하라"는 스탈린이 한 말로 영화에서도 스탈린이 한 말임이 간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영화나 소설 모두 체포 시간은 '새벽 4시'로 잡은 점도 문제시 되고 있지만 소련 경찰들의 체포 시간이 이 시간이었음을 감안해 볼때 큰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출판사 측 "장르적 클리셰로 넘길 수 없다"

<차일드44>를 출간한 출판사측도 이번 논란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웅진씽크빅 측은 "차용과 표절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허용할 것인가를 출판사가 정확하게 정리하기는 무리가 있다"면서도 "이미 눈 밝은 독자와 영화 팬들이 찾아낸 것처럼 장면 하나하나와 사용된 아이템, 대사까지 같다는 점에서, 그저 '장르적 클리셰'라고 넘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 소설 <차일드44>
 

통상 영화 제작시 이전 영화나 소설 등에서 아이디어를 빌리는 점은 흔한 일이지만 <베를린>과 <차일드44>의 유사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차용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출판사 측은 차용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입장을 더 문제 삼고 있다. 웅진씽크빅은 "소설 <차일드 44>와 영화 <베를린>의 유사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영향을 받았거나, 참고를 했다는 어떠한 사전 고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판권을 구입하거나, 엔딩 크레딧에 작품을 인용하거나, 참고나 오마주의 형태 등으로 감독이 이 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을 사전에 밝혔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웅진씽크빅은 "해외에서는 작품의 설정을 빌리거나 참고 자료를 쓸 때 어떤 식으로든 원저작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여의치 않을 경우라면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힌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 '박쥐'의 원작을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으로 엔딩 크레디트에서 밝힌 일을 예를 들며 "이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분명하게 이를 지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류승완 "마녀사냥식 제기…영화와 소설의 ‘숲’은 물론 ‘나무’도 다르다"

영화제작사나 감독 측은 이런 논란에 대해 소련과 북한이란 국가의 공통점과 첩보액션이란 장르영화 특성에 기인한 유사성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류 감독은 "북한 공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대사 등 이번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북한 탈북 군인나 정보국 인사들 등을 철저히 취재했다"며 "냉전 시대나 남북대치상황 등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나 소설이 많이 없기 때문에 비슷하다는 오해가 생기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이런 장르소설을 본 사람이 적은데 유사성이 발견됐을 때 자기가 본 만큼의 사실을 전체로 확대해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 의심과 미행 등은 이런 장르에서는 흔히 나오는 설정이라는 설명이다.

류 감독은 아내 미행이나 당성테스트 등 초반 설정이 비슷한 것에 대해 "소련도 공포정치를 했고 북한도 공포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류 감독은 "사실과 진실을 떠나 부분적으로 캡쳐해서 유사성을 발견하는 건 마녀사냥이라고도 느껴진다"며 "나무가 모여 숲이 이뤄지는데 영화와 소설은 전체 숲이 다르고 나무 역시 다르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차일드44>를 대본 쓰기 전에 봤다"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라고 권했는데 베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이렇게 했겠느냐"는 말도 했다.

영화제작사인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 역시 "소련과 현재진행형의 북한은 여전히 흡사한 부분이 많다"며 이런 데서 오는 오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원래 베를린에는 동명수가 표종수와 연적이었다가 련정희가 표종수와 결혼하자, 베를린공관을 차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자에 대한 야심에서 음모를 꾸민다는 설정이 있었다"며 "하지만 치정극으로 흐를 것 같아서 이런 부분을 빼는 등 몇몇 부분이 빠지고 난 뒤의 얼개를 놓고 보면 소설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뿐이며,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이라고 반박했다

배급사인 CJ E&M 측은 "차일드44 출판사 측이 책 판매를 위한 네커티브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 영화평론가는 이번 논란에 대해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다른 작품의 장면을 가져와 얼마만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드는 가가 문제인데 그렇게 봤을 때 표절이라고는 볼 수 없고 차용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이 소설에서) 많은 것을 가져온 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류승완 감독이 그 소설을 흥미롭게 봤으며 아이디어를 빌렸다고 사전에 이야기했다면 별 문제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감독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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