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자진사퇴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인사청문회 후 사실상 낙마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이 후보자가 돌연 자진사퇴설을 일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후보자는 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회 표결도 있기 전에 사퇴할 경우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을 인정하는 것이란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면서 자진사퇴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이 후보자는 자신을 "평생을 떳떳하게 살아왔는데 인격살인을 당한 상태"라면서 "명예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사 청문회에서 쏟아진 의혹이 '인격살인'에 준할 만큼 억울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자신이 받았던 의혹이 정치적으로 악용됐고 인사청문회를 개선하지 않으면 제2의 이동흡이 나올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 당시 심정을 "청문회를 계기로 ‘괴물 이동흡’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사는 느낌"이었다며 청문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는 "헌재 소장 자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면 안 된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면서 "이번 청문회 원칙은 무죄추정이 아니라 유죄단정이었다. 혐의를 덮어씌우고 단시간에 당사자에게 해명하라고 압박하면 억울한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겠다고 절감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1~22일 인사 청문회 이후 자취를 감추고 난 뒤 처음으로 인터뷰에 응한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을 강조한 것은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 후보자가 철저히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한 것은 박근혜 당선인 측의 인식과도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을 맡고 있는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4일 “국회 청문회라는 엄연한 제도와 시스템이 있는데도 지나치게 설 위주로 한다. (또) 그걸 기정사실화해, 평생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온 공직에 계셨던 분들이 개인적인 명예훼손이나 가족들까지 회복하지 못할 곤욕을 치르는 사례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당선인측이 이 후보자를 인사청문회의 억울한 희생양이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와 언론이 제기하는 향후 인사 검증의 엄격한 잣대를 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김용준 총리 후보가 자진사퇴한 상황에서 이 후보자마저 자진사퇴로 물러간다면 향후 국정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끝까지 이 후보자를 포기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동흡 후보자가 자진사퇴설을 일축한 것은 박 당선인측이 정치 전략상 이 후보자를 살리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곧 사퇴하지 않을까 전망된다”면서 “다만 이 후보자 사퇴를 계기로 삼아서 국회 표결도 안하고 후보자를 날렸으니 향후 인사청문회도 적당히 하라는 의미로서 청문회 검증의 레버리지를 제시한 의미가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이동흡 후보자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명박 대통령의 '몽니' 때문에 이 후보자가 버티기에 돌입했다는 지적도 있다.

여야는 인사 청문회 이후 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여야는 서로 책임을 돌렸지만 무수히 쏟아진 이 후보자의 의혹에 사실상 야당 뿐 아니라 여당 역시 반대 기류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면서 국회에서 정상적인 절차로 이 후보자의 임명 문제를 처리시키는 방안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에 따른 표결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회의장이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하더라도 새누리당의 반대 기류 때문에 통과될 가능성이 낮고 국민 여론도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의 책임을 지고 지명 철회를 하는 방안을 야당 뿐 아니라 여당까지 주장했던 이유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이 대통령은 이 후보자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이 후보자의 버티기는 무위로 끝날 공산도 크다. 새누리당에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표결 처리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황우여 대표의 말처럼 "당내에서도 반대 기류가 강해 표결을 하더라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 철회하지 않은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국회에서 '이동흡 폭탄'을 받아왔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이 후보자 버티기가 계속되면 헌법재판소의 신뢰에도 상당한 금이 가고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 내부에서 이 후보자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내리는 보도가 많았는데 벌써부터 이 후보자가 소장이 되면 내홍을 겪을 것 같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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