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상의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해온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의 발언를 보도한 조선일보에 대해 이 교수가 하지도 않은 주장을 허위로 인용했을 뿐 아니라 이마저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정보도와 함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노만경 부장판사)는 지난달 23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조선일보가 이 교수에게 1500만 원의 손해배상금(위자료)을 지급하고 조선닷컴(디지털조선일보)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제가 된 조선일보 인터넷판(조선닷컴·디지틀조선일보) 지난해 4월 3일자 <나꼼수, 천안함 합조단보고서 왜곡해  ‘폭침’ 부인> 기사를 두고 “이 교수가 주장하지도 않은 것을 주장했다고 보도해 허위사실을 적시했다”며 “이 때문에 이 교수의 핵심적 주장이 본질적으로 왜곡됐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명예훼손 여부에 대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원고의 주장을 사실과 다르게 인용했다고 보인다”며 “이로써 물리학자인 이 교수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은 이승헌 교수가 지난해 4월 2일 나는꼼수다-봉주10회에 출연해 합조단이 내놓은 천안함 선체, 1번 어뢰 그리고 국방부의 모의폭발실험에서 각각 나온 흡착물질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것을 설명한 대목이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이 교수의 발언을 허위로 인용해 정작 이 교수가 말하고자 한 의미를 왜곡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승헌 교수의 나꼼수 출연 발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선체 흡착물질-A, 어뢰 흡착물질-B, 모의폭발실험결과-C 라고 할 때, 실험에서 나온 흡착물질 C를 분석하면 ‘산화알루미늄’(알루미늄 1, 산소 0.23 비율로 구성)이 나와야 하는데 합조단 분석데이터에 의하면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알루미늄황산수화물’(알루미늄 1, 산소 0.9 비율)이 나왔다. 이는 알루미늄황산수화물로 분석된 선체(A) 및 어뢰흡착물질(B)이 폭발에 의한 흡착물질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실험 흡착물질(C)의 데이터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침전물질(알루미늄황산수화물)의 데이터로 조작해 보여준 것이다.”

   
천안함 함미
 

 

   
조선일보 인터넷판(조선닷컴·디지틀조선일보) 2012년 4월 3일자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틀 뒤 작성한 기사에서 이 교수가 “선체 흡착물질(A), 어뢰 흡착물질(B), 실험 흡착물질(C)를 EDS(에너지 분광기)로 분석하면 C에는 황이 있지만, A, B에는  황이 없는 알루미늄 산화물이므로 결국 천안함이 폭발로 침몰하지 않았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A, B에는  황이 없다’는 말을 하거나 그런 취지의 말도 한 적이 없었다. 이 교수 발언의 취지는 오히려 A(선체 흡착물질), B(어뢰 흡착물질)가 폭발로 인한 흡착물질이라면 ‘황이 없어야 하는데 황이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의 보도는 이 교수가 ‘A, B엔 황이 없다’고 말했다고 오히려 거꾸로 쓴 것이다.

조선이 이 교수 발언을 허위로 인용한 행위에 대해 재판부는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도 판단했다. 합조단 조사결과 데이터가 왜곡됐다는 이 교수 주장의 핵심적인 논거에 대해 조선이 충분히 정확히 인용할 수 있었는데도 잘못 인용했으며, 이는 조선닷컴조차 핵심적으로 다투고자 하는 중요사항이기 때문이라고 재판부는 분석했다.

그 사례로 재판부는 조선일보(조선닷컴) 기사의 제목 ‘나꼼수, 천안함 합조단 보고서 왜곡해 폭침 부인’과 기사 내용 가운데 “나꼼수가 이번에는 합조단의 보고서 내용 자체를 왜곡하면서 천안함이 어뢰폭발로 침몰하지 않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고 표현한 대목 등을 들었다. 조선은 이어진 기사에서 이 교수가 종전 주장을 뒤바꿔 ‘A와 B에 황이 없다’는 논거를 제시하면서 ‘천안함이 어뢰폭발로 침몰하지 않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는 인상을 줬다고 재판부는 봤다.

‘복잡한 사실관계를 독자가 알기 쉽게 만드는 과정에서 특정한 사실관계를 압축 강조했다’, ‘편집과정에서 업무상의 혼선으로 축약됐다’는 등의 조선측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이 주장을 그대로 믿기도 어렵고, 이 교수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려는 과정에서 이런 기사가 작성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를 종합할 때 “조선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승헌 교수의 주장을 사실과 다르게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로써 물리학자인 이 교수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해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측은 항소할지 여부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접 기사를 작성했던 조호진 조선일보 디지털뉴스부 기자는 4일 “항소할지 여부를 담당변호사와 의논하고 있다”며 “할 말은 많지만 항소여부가 결정된 이후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조선이 의도적으로 이 교수 발언을 왜곡했다는 법원 판단에 대해 “이 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틀렸을 때 한 차례라도 바꾸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며 “(이 사건을) 단순한 과학기사로 보거나 또는 다르게 볼 여지 등 여러 할 말은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기회가 되면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가 지난 2011년 3월 천안함 1주년 기념 토론회에 나와 발언하는 모습.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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