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중음악 관련 도서들이 부쩍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건반 같은 실기나 화성학 관련 분야에서는 예전부터 계속 새로운 책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기능서들이 아니라 대중음악 미학, 평론, 연구 관련 서적들이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김학선, 김봉현, 나도원, 이민희, 장유정, 차우진 등 소장 대중음악평론가들과 연구자들이 새로 쓴 책들 이외에도 음반 커버 디자인과 이수만에 대한 책이 새로 나왔고, 비틀즈(The Beatles),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를 비롯한 해외 뮤지션에 대한 책들도 계속 새롭게 나오고 있다.

또한 <음악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음악, 말보다 더 유창한>, <비서구 세계의 대중음악>, <대중음악이론>을 비롯한 음악 미학 관련 도서들도 새롭게 출간되어 음악 팬들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반적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새로운 필자들이 등장한 것, 그리고 과거에 출간되지 않았던 새 아이템을 포착해내는 출판기획자들의 발 빠른 기획이 함께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전문적인 평론가와 연구자들이 쓴 책이 아닌 뮤지션들이 쓴 책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오지은, 윤건 등이 감성적인 에세이를 내놓은데 이어 최근에는 한국대중음악사의 빅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양병집, 윤형주, 조영남이 새로운 책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이는 최근의 세시봉 열풍으로 대표되는 복고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양병집이 내놓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와 윤형주가 내놓은 <나의 노래, 우리들의 이야기>는 모두 자전적인 에세이이고 조영남이 쓴 <그녀, 패티김>은 제목 그대로 패티김에 대한 책이다. 세 사람 모두 1960~70년대 한국 포크와 청년문화의 전성기에 활동한 주역이었으며 현재까지 직간접적으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뮤지션이기 때문에 그들의 기록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송창식,윤형주,김세환,양희은
 



특히 책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음악 활동을 고백한 양병집과 윤형주의 경우에는 두 사람이 모두 같은 시대에 포크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한국 포크 음악의 태동을 이끌었기 때문에 한국 포크 음악의 초기 역사와 뮤지션, 그리고 그 이면의 사건과 사람들이 책 안에 생생하게 담겨있다. 대중음악에 대한 연구와 기록의 역사가 길지 않고, 공식적인 대중음악 아카이빙 기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확인할 수 없는 당시의 현장을 어렴풋하게나마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 양병집과 윤형주가 쓴 책의 중요한 미덕이다.

   
윤형주
 

두 사람의 책을 읽어보면 아마추어였던 두 사람이 어떤 음악을 어떻게 연습하고,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무대에 오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어떻게 음반을 취입하고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지가 잘 기록되어 있다.

지금처럼 정규 교육을 통해 음악을 배운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던 이들이 세시봉, 내쉬빌, 디 쉐네, 르 실랑스 같은 음악감상실을 통해 아마추어 가수로 데뷔하고 방송 DJ와 지인들에 힘입어 라디오와 TV에 출연하면서 20대 초반의 나이에 스타가 되는 과정은 당시의 뮤지션 발굴 시스템이 어떠했는지를 증언한다.

   
나의 노래 우리들의 이야기 표지
 

이러한 과정에서 음악감상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방송 DJ의 힘이 막강했으며, 저작권이나 계약, 수익 배분 같은 개념이 매우 희박했다는 것도 이채롭다. 그뿐 아니라 각자가 가깝게 지내온 동료 뮤지션, 제작자,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기록과 대마초 사건 같은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 역시 비평가나 기자들이 남긴 기록과는 다른 현장성이 있어 더욱 생생하게 읽힌다.

특히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양병집의 경우 그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모던 포크를 어떻게 자기화하고, 한국화하면서 새롭게 번안하고 창작하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가 밥 딜런(Bob Dylan)의 을 번안해서 <역(逆)>이라는 노래로 다시 부르고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노래 을 번안해 <서울 하늘>로 부르게 되는 과정, 밥  딜런과 피트 시거(Pete Seeger)의 다른 노래를 번안하는 과정, 구전민요였던 <타복네>를 부르게 된 과정은 한국 포크의 초기 정착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또한 그가 처음 내놓은 ‘1집 앨범 [넋두리]가 박정희 정권 당시 금지곡 파동에 휘말려 발매된 지 3개월 만에 전량 회수’되어 저항 가수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지만 자신의 삶에 비해 지나치게 과한 평가라는 고백도 귀 기울여볼 부분이다.

두 사람은 둘 다 포크 음악을 했지만 각자의 성격이 매우 다르고, 서로 활동했던 공간도 조금 달랐으며, 서로의 음악관과 이후의 삶도 크게 엇갈렸다.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양병집은 한국에 있을 때에도 음악활동과 직장 생활을 계속 바꿔왔고 호주로 건너가서도 여러 번 직업을 바꾸면서 살아오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반면 유복한 가정에서 엄하게 자라난 윤형주는 트윈 폴리오로 데뷔했다가 이후 솔로 뮤지션과 방송인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대마초 파동을 거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수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백천의 제안으로 시작한 광고 음악계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양병집의 책에는 이처럼 다사다난했던 자신의 인생 유전이 솔직하게 담겨 있고, 윤형주의 책에는 음악활동과 광고 음악 제작, 공연 제작을 하면서 살아온 삶의 중요한 순간 순간 겪었던 종교적 감동과 인간적 성장의 기록이 꾸밈없고 진실하게 담겨 있어 꾸며 쓴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의 경험과 음악적 사실 관계만이 아니라 기질과 성품, 철학까지 확인할 수 있는 책은 전문적인 필자가 쓰지 않은 책이다 보니 상세하지 않은 대신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리는 이 책을 통해 윤형주와 양병집을 좀 더 알게 되었지만 사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책은 얼마나 많은가. 송창식, 양희은, 이장희, 조동진. 그리고 그 전과 그 후의 더 많은 뮤지션들. 아직은 더 많은 책이 나와야 한다. 아직은 더 많은 책이 쓰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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