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최강희가 국정원 요원 커플로 등장하는 MBC 수목드라마 <7급 공무원>이 23일 첫 전파를 탔다. 시청률 12.7%(닐슨 코리아, 전국기준), 비교적 순조로운 출발이다.

첫 방송 이후 <7급 공무원>은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며 인터넷에서도 회자됐다. 연예매체들은 드라마 <7급 공무원> 방송 전부터 영화 <7급 공무원>의 드라마 버전이라는 점 그리고 주원·최강희가 주연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을 주목하며 흥행 가능성을 예상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7급 공무원>이 첫 전파를 탄 23일, 국정원과 관련된 대형사건이 하나 터졌다. 국정원이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 국정원은 표 전 교수가 국정원 여직원 불법선거개입 사건을 비판한 언론 기고문을 문제 삼아 지난 18일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정예정보기관이 전직 경찰대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한 것이다.

국정원 무능력을 질타하는 사회에서 방송되는 ‘국정원 드라마’

 

   
MBC 수목드라마 <7급 공무원> 화면 캡처
 

국정원이 표 전 교수 글 가운데 문제 삼은 것은 국정원이 무능력하다고 언급했던 부분이다. 표 전 교수는 지난 8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풍전등화 국정원’>이라는 글에서 “정치관료가 국정원을 장악해 정보와 예산, 인력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국제 첩보 세계에서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무능화·무력화돼 있다”면서 “어떤 경우든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무능력을 질타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으로 전직 교수가 고소되는 사회에서 국정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정원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갖고 있지만 MB정권 집권기간 동안 국정원이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들은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정원 직원 댓글 논란’을 논외로 해도 국정원의 무능력 사례는 많다. 표 교수도 칼럼에서 언급했지만 무기구입을 위해 방한한 인도네시아 사절단 호텔방에 국정원 직원들이 숨어들어가 노트북을 훔쳐보다 호텔 직원에게 발각돼 경찰에 체포된 사건 역시 국제적인 망신을 산 대표적인 경우다. 이 뿐인가. 2010년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을 미행하다가 발각돼 논란을 빚었고, 북한에서 미사일 혹은 인공위성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았지만 국정원에서는 이를 전혀 사전에 알지 못해 다시 한 번 웃음거리가 된 것도 최근 일이다.

 

   
한겨레 2013년 1월24일 10면
 

드라마 <7급 공무원>의 국정원을 주목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7급 공무원>은 첩보물이 아닌 로맨틱코미디 장르지만 천성일 작가는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국정원 요원의 모습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7급 공무원’에서 풍자 대상이 되는 국정원 

천성일 작가는 지난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을 배경으로 선택한 것과 관련해 “권위적으로 자리 잡은 조직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천 작가는 “국정원을 신 같은 능력이 있는 조직으로 오해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도 하지만 지난해 대선 직전 국정원 직원의 댓글 사건처럼 코미디의 산실이 되기도 한다”면서 “사실적으로 국정원의 명과 암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천 작가의 공언대로라면 <7급 공무원>에 등장하는 국정원 요원들은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그려졌던 국정원과는 궤를 달리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23일 방송된 <7급 공무원>에서 그려진 국정원은 ‘최정예정보기관’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무수한 공무원 조직 가운데 한 곳에 불과하다는 점을 코믹스럽게 그려냈다. 국정원 요원 선발과정은 뭔가 비밀스럽고 특수할 것이라는 기대는 막연한 환상에 불과했다.

 

   
MBC 수목드라마 <7급 공무원> 화면 캡처
 

국정원 예비요원들은 ‘국가정보원 7급 공채 필기전형장’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곳에서 ‘당당히’ 시험을 보고, 면접 통과를 위해 입시학원에서 별도의 매뉴얼을 열심히 외운다. ‘조국을 위해 국정원에 지원했다’ 따위의 말은 ‘국정원 면접관’들에게 가장 상투적인 말일 뿐이다. ‘조국을 위해 이름 없이 살고 이름 없이 죽을 것을 엄숙히 맹세하는’ 국정원 요원들이지만 정작 국정원에 합격하면 자신의 동네에 ‘경축 국정원 합격!’ 플래카드를 걸어놓는 게 현실이다.

천성일 작가는 앞선 인터뷰에서 “정말 조국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하려는 사람들이 (국정원에) 들어가는 걸까”라고 반문하면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이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그렇게 대단한 조직이 아닐뿐더러 국정원 요원들 또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만 하는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정원의 표창원 전 교수 고소와 <7급 공무원>을 교차해서 바라보게 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국정원이 무능력하다’고 비판한 표 전 교수의 기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국정원이라면 ‘국정원 요원과 예비요원들을 코믹스럽게 묘사한’ <7급 공무원>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더구나 천성일 작가는 ‘조국을 위해 이름 없이 살고 이름 없이 죽을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는 국정원의 모토를 코미디로 차용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정보기관의 모토를 코미디로 차용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음지에서 일하는 최정예 요원들을 ‘찌질이’로 묘사한다? 국정원이 표 전 교수를 고소한 논리를 <7급 공무원>에 그대로 적용시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얘기다.

표 전 교수가 명예훼손이면 ‘7급 공무원’은?

물론 <7급 공무원>은 국정원을 해부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장르 또한 첩보물이 아닌 로맥틴 코미디다.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가 전제돼 있다. 하지만 MB정권이 들어선 이후 ‘숱하게 발생한’ 국정원과 관련한 사건들을 예로 들며 국정원의 무능력을 질타한 표창원 전 교수와 “사실적으로 국정원의 명과 암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천성일 작가 사이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은 있다. 드라마에서 국정원이 풍자의 대상까지 되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현실에서 국정원은 막강한 정보기관의 영향력을 드러내며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7급 공무원>을 더욱 주목하게 되지만 한편으론 염려도 된다. 천성일 작가가 그리려는 ‘사실적인 국정원’과 ‘실제 정보기관 국정원’이 충돌할 경우 드라마는 ‘정보기관 국정원’에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데 이 대목에서 질문 하나. 정말 <7급 공무원>은 국정원의 ‘암’까지 드러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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