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5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사다난했지만 ‘표현의 자유’에 생존이 달려 있는 창작자들에게는 특히나 심란했던 시기였다. 표현의 자유 위축으로 대중 문화 전반에 불어 닥친 한파가 박근혜 정부에서도 내내 이어질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중 문화 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박근혜 당선자의 인식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 정부의 오류에 대한 문제인식이 없거나 아예 무관심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하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11월 발간한 ‘2012년 대선 정책 이슈리포트’에서 “박근혜 후보는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되기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공식적인 자리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입장을 밝힌 바가 없다”고 했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도 지난달 27일 문화연대에 실린 ‘문화운동은 박근혜 정부 출범 즈음에 무엇을 해야 하나’에서 “특히 대중매체가 지레 짐작으로 움츠려 들어 있는 상황에서 표현의 공간이 존재하게 하고, 그 안에서의 작동이 자유롭게 만드는 일은 문화운동이 역점을 두어야 할 작업”이라고해 박근혜 정부에서 표현의 자유가 움츠러들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작가 이화씨의 풍자 포스터로 선관위 고발, 약식기소 등을 당해 ‘표현의 자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왼쪽부터 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대선 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포스터, 1672억원의 추징금을 내야함에도 전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버티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꼬는 포스터, 박근혜 당선자가 독재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임을 풍자하는 포스터다.
 

차기 정부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나오는 배경에는 박 당선자의 인식이 항상 ‘목적’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희생시킨 이명박 정부의 관점과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술과 담배가 나오는 노랫말이 들어간 대중가요를 유해물로 판단하거나 웹툰의 폭력성과 선정성을 심의하는 일련의 정책 모두 ‘청소년 보호’라는 취지에서 시행됐다. 유해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자의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근거로 콘텐츠 접근을 차단한 것이다. 이는 창작자의 자기검열을 강화하고 사용자의 콘텐츠 사용 권리를 차단해 모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례로 박 당선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정책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청소년들의 게임중독 예방을 위해 모바일 게임까지 게임 셧다운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대선후보가 “검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대중문화 분야에서 거의 유일하게 의견을 밝힌 셈인데 이명박 정부와 동일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대선 이후 게임업계 주가가 일제히 하락하기도 했다.

박 당선자의 대선 정책 자료집에도 이러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는 개인권리 침해 정보에 대한 통신 심의를 대폭 축소하되 반사회적·반국가적 범죄에 한해서는 심의를 계속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트위터 아이디 ‘2MB18noma’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계정을 접속차단하거나 박정근씨가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글을 리트윗하자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로 유죄 판결이 내려진 일 등이 차기 정권에서도 반복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박주민 변호사는 “새누리당 정권의 연장이라는 측면이 있고 박 당선인이 지난 5년 간 이명박 정권에서 위축된 표현의 자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과 달라질 것이 없다”며 “박근혜 정부도 필요성이 있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두운 전망이 예고되는 가운데 앞으로 5년 동안 표현의 자유 위축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몇 가지 단서가 또 있다. 올해 위헌 여부가 가려질 게임 셧다운제와 1월 초 제기될 제한상영등급제 위헌법률소송이 그것이다. 제한상영등급제 위헌소송은 박근혜 당선자를 연상시키는 마네킹의 목을 자르는 장면이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영화 <자가당착>이 제한상영등급 판정을 받자 제작사 측이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삼권분립의 측면에서 행정부와는 다른 사법부의 판단을 기대해볼 수도 있겠지만 헌법재판소의 구성부터 걸림돌이다. 그동안 헌법재판소 내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냈던 조대현·김종대 전 재판관의 후임이 모두 보수적인 색채의 인사들로 채워진 탓이다.

박 변호사는 “성인도 보지 못하는 영상물이 있다고 판단하는 제한상영등급 자체가 위헌이라는 취지의 소송을 준비 중인데 헌법재판소 구성이 보수적으로 바뀌어서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박 변호사는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를 소급해 확대 적용하는 방안이 합헌이라고 본 헌재 판결이 보수화의 증거”라며 “게임 셧다운제 위헌소송도 이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논란 끝에 지난해 11월에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올해 대중문화 전반에 일어날 혼란과 표현의 자유 위축도 문제다. 아청법에서 문제가 된 조항은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을 성적 대상으로 다룬 게임이나 영상물을 음란물로 규정한 제2조 5항이다. 개정안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이란 문구가 더해졌지만 여전히 ‘이현령비현령’식 규제라는 것이다.

이번 정부에서 ‘폭력 만화가 학교 폭력을 조장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웹툰 심의로 몸살을 앓았던 만화계의 전망도 여전히 밝지 않다. 우리만화연대의 신유경 사무국장은 “실제 존재하는 아동이나 청소년에 대해 성적 행위를 하는 표현물은 금지되는 것이 맞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제재하는 것은 모호함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 사무국장은 또한 “웹툰의 유해성에 관한 판단은 매우 감성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건 위법이고 저건 아니다’는 식으로 잘라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부분이 정리되지 않고 웹툰 심의가 지금과 같이 이뤄진다면 만화계는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문화자유네트워크에서는 아청법 위헌소송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여 위헌소송을 낼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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