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상부의 지시를 무시한 공판 검사의 돌출 행동이 화제다.

1962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던 윤아무개씨에 대한 재심 사건. 지난 28일 열렸던 결심 공판에서 서울중앙지검은 “법과 원칙에 따라 법원이 적절하게 선고해 달라”고 구형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담당한 공판 검사인 임은정 검사가 무죄를 구형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임 검사가 소속된 공판2부는 회의를 거쳐 공판 검사를 다른 검사로 교체했다. 그런데 임 검사가 이를 무시하고 재판에 참석해 무죄를 구형해 논란이 되고 있다.

31일 조선일보는 “새로 사건을 맡게 된 검사는 임 검사가 법정의 검사 출입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법정에 들어가지도 못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임 검사가 공판에 자신 대신 출석하기로 했던 검사가 읽을 수 있도록 법정 검사 출입문에 ‘무죄를 구형하겠다’는 내용의 쪽지를 붙여놓았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임 검사는 구형을 하러 법정에 들어가기 직전 “당연히 무죄가 나올 사안이고 담당 검사로서 (상부 방침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다른 검사에게 사건이 재배당됐다”면서 “검찰 내부에서 공론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결행했다”는 내용의 글을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임 검사는 “절차 위반과 월권의 잘못을 통감하며 어떤 징계도 감수하겠다”는 글을 남기고 휴가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임 검사가 무죄를 구형하자 곧바로 무죄를 선고했다.

임 검사의 돌출 행동에 대한 평가는 신문 마다 다르다.

조선일보는 서울중앙지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절차적으로나 내용상 위법한 지시가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사실관계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사안까지 무조건 무죄를 구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이 사건처럼 무죄가 예상되는 재심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를 해달라’는 통상 의견을 구형을 대신한다”면서 “‘이번에는 법원에 맡기자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절차 무시하고 무죄 구형 ’막무가내 검사‘”라고 제목을 달았다.
 

   
동아일보 12월31일 10면.
 

동아일보는 어차피 무죄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고 보는 검찰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했고 조선일보는 무죄를 구형하기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긋는 다른 발언을 인용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두 신문 모두 임 검사가 절차를 어겼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어차피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가능성이 큰데 임 검사가 너무 나갔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조선일보는 무죄가 안 될 수도 있는데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겨레는 “검찰은 재심사건에서 무죄로 단정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관행적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구형한다”고 밝혀 공판2부 부장검사와 임 검사가 의견 대립이 있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겨레는 “재심사건 검사, 용감한 무죄 구형”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경향신문은 임 검사가 공판2부가 아니라 공안부와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공안부 맞서 문 잠그고 무죄 구형한 검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결심 공판에 다른 검사가 출석할 예정이었던 건 검찰 공안부와 임 검사의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은정 검사. 임 검사 미니홈피 캡처.
 

임 검사의 돌출 행동은 상부의 지시와 절차를 어겼다는 사실을 강조하면 “막무가내 검사”가 되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데 초점을 맞추면 “용감한 행동”이 된다. 경향신문 제목은 “공안부 맞서 문 잠그고 무죄 구형한 검사”인데 중앙일보 제목은 “검찰 방침에 반발, 다른 검사 출입 막고 무죄 구형한 검사”다. 한쪽에서는 공안부에 맞선 용감한 검사로, 다른 한쪽에서는 다른 검사의 출입을 막은 뭔가 떳떳하지 못한 느낌으로 포장하고 있다.

연합뉴스가 인터뷰한 중앙지검 관계자는 “근거법의 위헌 등이 내려진 확실한 사안에는 무죄 구형이 옳겠지만 검찰의 공소유지 등 전체 기능을 생각한다면 사실관계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사안까지 무조건 무죄를 구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검찰 내부의 복잡한 반응을 전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임 검사가 검찰 게시판에 남긴 글에 달린 댓글에는 "소신대로 하는 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절차도 중요하다", "검사님 의견에 많이 찬성해왔지만, 이번만큼은 다시 판단하셨으면 한다" 등 부정적인 내용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은정 검사는 지난 9월 민청학련 사건 재심 때 무죄를 구형해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임 검사는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 몸을 불살라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면서 “그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고 구형 취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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