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병호 “박근혜, 과소과대 평가 말고 담담하게 대응해야”
단병호 “박근혜, 과소과대 평가 말고 담담하게 대응해야”
[인터뷰] 단병호 이사장 “국가전복세력으로 몰리던 때도…노동자가 못할 게 어딨나”

18대 대통령 선거 이후 노동계에는 비보가 잇따랐다. 선거 직후 노동자 4명, 시민단체 활동가 한 명이 잇따라 숨지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21일 한진중공업 복직자인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이 목숨을 끊었고, 이튿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이운남 초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직부장이 투신해 숨졌다.

크리스마스였던 25일에는 이호일 한국외국어대 노조위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를 애통해하며 빈소를 지키던 이기연 수석부위원장이 26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활동가도 지난 22일 오전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잇따른 비보 속에서 노동계는 “살아서 죽을 만큼 투쟁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선거에 참패한 민주통합당 초선의원들은 “더 이상 선량한 국민 희생자가 나오지 말아야 한다”며 사죄의 의미로 1000배를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힘들지 않은 때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것인가를 서서히 고민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7일 오후 서울 녹번동 민주노총 서울본부 건물에 있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사무실에서 단병호(63·사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이사장을 만났다.

단 이사장은 동아건설 창동공장에서 일하다 87년 노동자대투쟁 때 노조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노조위원장이 됐다. 이후 민주노총 전신인 전국노동자협의회(전노협) 1~4대 위원장을 지냈고 민주노총 3·4대 위원장을 지냈다. 17대 국회에서는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박근혜 당선인과 함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을 하며 총 다섯 차례 구속돼 다섯 번 징역살이를 했다.

 

   
단병호 평등사회 노동교육원 이사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지난해 ‘노동운동의 대중화’를 표방하며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을 설립했다. 최근까지 서울 울산 부산 포항 창원 인천 충청 등 전국적으로 30개의 교육팀이 가동됐고, 280여명이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수강생의 80~90%가 프로그램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 “성공적”이라는 자평을 내리고 있다.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권영길 후보 지원 유세에도 나섰던 단 이사장은 “선거 결과가 충격적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그는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오해할지 모르는데 나는 그렇게 충격은 안 받았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사실 우리가 희망하고 기대하고 바라는 것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 나름대로는 정권교체가 참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민주당이나 문재인이 뭔가 확실하게 차별화시키는 것도 보기 어려웠고, 국민들의 65% 이상은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문재인과 민주당은 민심을 수렴하는 준비나 자세, 능력이 안 됐습니다.”

“정권교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단 이사장은 개인적으로 “바뀌기는 바뀌어야 하는데 바뀌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경남도지사 선거에서도 기대는 많이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내가 듣기로는 지역에서 김두관에 대한 상당한 불신이 있다”며 “도지사도 겨우 50% 넘어서 된 것인데 되고 나서 얼마 안 돼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보다 파장이 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안 그래도 겨우 이길까 말까 한 싸움인데 악재까지 안고 출발했다는 것이다. 노동 쪽에서도 힘을 보태지 못했다.

반면 단 위원장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는 조금 기대를 했다고 한다. 민주진보진영이 단일화를 했고 곽노현 전 교육감에 대한 불신이 있다 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봤다는 것이다. 거기다 보수 쪽 후보까지 다수 나왔다. 그는 “보수에서 다급했던지 막판에 단일화하면서 보수의 표를 결집했고, 이수호 위원장이 떨어졌다”며 “돼야 하는데 안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이수호 후보 역시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대선에서 야권이 정권교체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민주당이나 문재인 후보가 참여정부 때 실패한 것에 대해 과감하게 시인하고 그 때와는 다른 것을 하겠다고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한 점, 둘째는 인구구성상의 문제였다.

“참여정부와의 차별화와 자기 성찰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토론회 나와서 ‘그 부분은 잘못한 것도 있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참여정부의 잘못을 말했어야 합니다. 개혁도 제대로 못했고 대표적으로 비정규직법 제정도 그게 마치 절대적인 해결방안인 것처럼 밀고 나갔던 것이고요.”

단 이사장은 “젊은 세대보다 노인층이 많아진 인구구성상의 구조적인 조건도 작용한 것 같다”며 “하지만 앞으로 가면 갈수록 그럴 텐데 계속 보수만 정권을 잡아야 하느냐, 그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대중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책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문재인, 참여정부 잘못 과감하게 시인했어야”

박근혜 당선인의 당선 이후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노동운동 선배로서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착잡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정권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예상했기 때문에 충격을 덜 받은 자신과는 달리 사람들이 받아들인 충격은 굉장히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65% 넘게 정권교체를 원했던 만큼, 또 그만큼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 사실이니까 사람들이 받아들인 충격은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앞으로 5년을 이 상태로 살아야 하는가 절망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절망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신정권을 운영했던 사람, 친재벌이었던 사람, 보수적이고 완강한 노동정책을 취했던 사람”이 다시 국정을 맡게 되면서 절망을 넘어서 불신의 공포스러움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단 이사장은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어려움은 항상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어려움은 항상 우리의 한 발 옆에 있는데 때로는 그것이 어려움으로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좌절하지 말고 현재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의지를 갖자고 말했다.

“물론 마음대로 안 될 수 있지만 절망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일어설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로 나오는 것이거든요. 대선 결과가 정말 충격일 수 있지만 그런 결과에 너무 빠져들지 말고 그럴수록 새로운 길을 같이 모아가고 힘을 모아가는 자세로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단병호 평등사회 노동교육원 이사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노동자들이 절망한 이유가 단지 박근혜의 노동정책이 이명박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동정책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후퇴하지 않을까 하는 좌절감이 전반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는 그냥 박근혜가 아니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일까.

“박근혜는 유신 정책을 실제 펴왔던 사람입니다. 74년 육영수 여사가 죽고 79년까지 실제 유신정권의 핵심적인 정책을 펴온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박근혜입니다. 박근혜에게 민주주의가 얼마나 확장돼 있을까, 의지가 있을까, 아무도 신뢰를 안 하고 있습니다.”

그는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기간 경제민주화와 재벌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한 것에 대해 “이전까지 그는 친자본주의, 재벌을 공고화하는 데 최일선에 있던 사람”이라며 “대선 공간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신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누가 보더라도 ‘대선용’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정책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박 당선인이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얘기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얘기한 것이 없고, 정치활동을 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는 것이다.

단 이사장에게 역시 노동운동은 고비의 연속이었다. 그는 다섯 차례 구속돼 다섯 차례 감옥살이를 한 흔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다. 89년 4월 전노협 전신인 전국회의 산하 임금인상투쟁본부장을 맡다 구속됐고,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출소한 지 한두 달 있다가 다시 수배돼 전노협을 만들고 90년 2월 구속돼 1년 6개월 징역을 살았다. 93년 전노협 위원장으로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현총련)과 전국 임투를 하면서 ‘배후조정세력’으로 지목돼 같은해 7월 수배돼 2년 동안 수배생활을 했다. 결국 95년 7월 구속됐고 1년 징역을 살았다.

노동운동하면서 다섯 차례 구속과 징역살이

98년 외환위기가 터졌고,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위원장으로 총파업을 조직했다가 구속돼 1년, 2001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각종 투쟁을 이끌다 구속돼 2년 징역을 살았다. 당시 롯데에는 공권력이 투입돼 농성하던 여성조합원이 유산되고, 대우자동차에서는 대규모 정리해고 투쟁이 있었다.

그는 역설적으로 “국가권력이 나를 징역을 안 살렸으면 내가 운동을 계속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구속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2년 정도 밖에서 활동하면 수배가 떨어져 구속됐고 형을 살고 나와 다시 2년을 활동하면 또 수배가 떨어지고 구속되는 일이 반복됐다.

그는 “밤낮으로 전국을 다니면서 조합원들과 간담회하고 설득하고 파업을 조직하면 말이 그렇지 2년 지나면 진이 쭉 빠진다”고 회상했다. 징역살이를 하면서 체력강화를 하고 못 보던 책을 보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부인에게 야단을 맞는다고 한다. 자기 혼자만 편하면 뭐하냐, 가족은 어떻게 하냐고.

“징역살이가 노동운동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됐습니다. 징역살이 자체가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징역 살고 나와서 나 노동운동 못 하겠다 했겠지요. 그런데 도리어 내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정리하고, 살아가야 할 방향, 가치를 고민하는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징역살이라는 위기는 그에게 역설적으로 노동운동을 계속 하게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던 셈이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자산은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는 “같이 운동을 해온 사람 중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며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내가 일할 수 있는 자신감과 일하는 것의 의미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현장의 동료들 뿐만 아니라 교수, 지식인들도 큰 에너지가 됐다고 한다.

“징역살이가 노동운동 계속하게 해”

그럼에도 그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노태우가 집권하던 90년 전후와 외환위기 이후였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정부와 자본, 국가권력이 총체적으로 탄압을 해왔을 때”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폭력적으로 탄압해도 노동자들이 여기 대응할 수 있는 힘,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기본 동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 동력으로 민주노총도 만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노조 자체를 불순단체로 여겼습니다. 전노협을 만들 때는 정부가 전노협을 국가전복세력이라고 호외 전단을 만들어서 서울시내에 뿌렸어요. 반공단체들은 방송차를 가지고 국가전복세력이라고 외쳤고요. 그런 어려움이 있어도 매일 매일 전쟁 치르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며 나온 것이거든요.”

그는 당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사람들의 자신감”이었다고 회상했다. 같이 투쟁해서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하나의 힘으로 모아지고 연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농성 중인 사업장에 한밤 중 공권력이 투입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자다 말고 새벽같이 뛰어나갔다. 여성노동자들이 농성하는 사업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IMF'로 불리는 외환위기 때는 많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으로 위축돼 있었다. 그는 “구조조정이 들어온 사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으니 적극적으로 투쟁하는데 그걸 엄호해야 할 다른 단체와 노동조합은 투쟁에 같이 참여했다가 우리사업장에까지 영향이 미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고 떠올렸다. 연대가 잘 안되다 보니 총체적인 노동 투쟁을 만들어내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2000년부터 2004년 무렵 10여명의 노동자가 자본과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분신 사태도 나왔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그는 “노동자들이 정부나 자본의 공세를 막을 수 있는 힘은 개별 사업장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결국 연대의 틀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데 노동자들이 위축되다보니 연대의 전선을 만들어내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노동자들이 더 철저하게 연대해서 막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권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 불능이긴 합니다. 박근혜는 국가권력을 인수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노동자도 어떻게 연대의 전선을 구축할지 지금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어요. 상급조직에서는 노동자 연대, 자신감을 갖게 하는 노력들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너무 좌절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인수위 기간 노동자도 연대 전선 구축해야”

단 이사장은 박근혜 당선인이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와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그의 노동정책을 판단할 시금석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제대로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극복해나간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자”고 말했다. 

“민주노총이나 지역본부, 산별조직에서 지금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는 시점에 노동정책의 판가름은 쌍용차 정리해고,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에서 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 쪽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 방안을 만들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내년에 예상되는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리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선 국면 때문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는 “내년 경제 성장이 2% 대에도 못 미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반면 비정규직 문제가 묻혀버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 당선인은 최근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정리해고를 자제해달라고 했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대통령이 나선다고 해도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했다. 거기에 대비해서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98년 외환위기 때는 전혀 준비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당시 여론도 노동은 자제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어요. 노동의 시장개입력도 없고 속수무책으로 사업장별로 당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교훈 삼아서 경제상황이 어려워질 것에 대비해 노동자 양보론으로 여론이 흘러가지 않도록 정책적, 이데올로기 대응도 준비해야 합니다.”

노동자들도 스스로 긴장감을 가지고 일자리 확대 같은 시장개입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것들을 단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98년 외환위기 때와 같은 힘든 과정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이다.

현재 민주노조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지도부는 공백 상태이고 지난 대선에서는 처음으로 지지후보를 내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이런 상황에 대해 그는 “노동운동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노동운동을 해왔고 앞으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할 사람으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민주노총이 획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대신 민주노총이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유로 민주노총은 이미 하나의 ‘장애’를 갖고 있다며 “비장애인처럼 힘 있게 뛸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비장애인처럼 뛰라고 하면 잘못된 기대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직적으로 지도 집행력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민주노총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동안 민주노총이 조직적 지도력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 이사장에게 노동자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부탁했다. 그의 첫 번째 메시지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게 끝장 난 것이 아닙니다. 박근혜를 과소평가해도 안 되지만 과대평가해도 안 됩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현실을 보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맥 빠지고 절망한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상황 가는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대범하고 담담한 자세로 직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은 항상 있었고, 극복했을 때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5년을 버티는 게 아니라 5년을 극복한다는 자세로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이소선 어머니가 항상 강조했던 말을 꺼냈다.

“노동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어딨냐. 니가 용기가 없으니까 못 한 것 아니냐.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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