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잇따른 노동자들의 자살을 부르고 있나
무엇이 잇따른 노동자들의 자살을 부르고 있나
[해설] 해고·비정규직·손배청구 등 ‘노동탄압 백화점’ 새누리 정권 연장에 희망 잃어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원.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

지난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의 유서는 이명박 정권 내내 ‘노조 탄압’과 정리해고 위협에 시달렸던 노동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최 조직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당일 울산에서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다 용역에게 폭행을 당했고, 이튿날에는 이운남 초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직부장이 투신해 숨졌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비정규직,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유성기업 해고자가 송전탑과 굴다리에서 끝을 알 수 없는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과 새누리당 정권 5년 연장은 노동자들에게 충격과 좌절 그 자체였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총은 야권 단일화 후보인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정리해고제도를 도입했고,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법을 도입했기 때문에 노동계에게 ‘민주당 정부’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정권교체’는 숙원이었다. 새누리당 정권에서 벌어진 노동탄압을 더 이상 연장시킬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쌍용차 등 장기화하고 있는 해고 문제도 더 이상 방치해놓을 수 없는 수준에 달한 상황이었다.

이명박 정권 내내 노동자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았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노동자와 가족 23명이 잇따라 숨졌고, 지난 9월에는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투쟁에 참가했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이 어려울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중공업의 노조탄압과 정리해고를 규탄하며 지난 21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이 목숨을 끊었다. 국민행복의 시대가 열렸다는 당선사례가 전국에 깔렸지만 당선 직후 연달아 목숨을 버리는 노동자들의 절망에 여권은 반응이 없다. 성탄절 전날인 24일 저녁 고 최강서 조합원의 미망인이 남편의 제단에 밥과 음식을 올리고 있다.
부산=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해 11월에는 2009년 철도노조 파업으로 해고됐던 허광만 전 부곡기관차승무지부장이 동료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남긴 채 자택에서 연탄불을 피워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코레일은 2009년 파업으로 조합원 1만2000명에게 사상 유례 없는 대량 징계를 내렸다. 이 중 172명이 해고돼 상당수가 노동위원회, 법원에서 구제를 받았고 최근까지 남아있는 해고자는 43명이다. 기존 해고자들을 포함하면 전체 94명의 해고자가 있다. 철도노조 역시 2009년 파업에서 6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고 현재 1심이 진행되고 있다.

야권이 정권교체에 실패하면서 해고자 문제 해결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철도노조 94명을 비롯해 언론계 20여명, 전국공무원노조에만 136명의 해고노동자가 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박근혜 후보 당선으로 어려운 조건이긴 하지만 해고자 복직을 위해 노조가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할 것”이라며 “박근혜 당선자가 철도 민영화를 안 하겠다는 얘기는 안 하고 여지를 남겨두고 있어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2009년 5월에는 대한통운의 택배기사 집단 계약해지에 항의하던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이 “특수고용직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남기고 대한통운 대전지사 야산에서 목을 매 숨졌다. 박근혜 당선자는 특수고용직 근로자의 현실에 맞게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제도를 설계해 사회안전망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특수고용직의 핵심 요구인 노동3권 보장은 약속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 시절 사용자가 노조를 압박하는 데 가장 공공연하게 활용한 것이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이다. 파업 투쟁 등을 한 사업장에서는 어김없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뒤따랐다.

2009년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77일 동안 옥쇄파업을 했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에는 125억원(정부 청구 25억원), 지난해 전면파업과 공장 점거 투쟁을 벌인 KEC지회에는 156억원,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벌인 한진중공업지회에는 158억원의 소송이 걸려 있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1심 판결이 다음달 중순에 나올 예정이었다.  

언론계에서는 MBC가 지난 6월 파업중인 MBC노조를 상대로 19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처음이다.

이용마 MBC노조 홍보국장은 “금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가장 악랄하게 탄압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돈이 없는 노동자를 상대로 피해를 부풀려서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을 회사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로 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대선 전 각 후보들에게 ‘99%가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10대과제 77개 요구’에 대한 정책질의서를 보냈다. 민주노총은 노조활동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 금지, 업무방해죄 적용 금지를 요구했으나 박근혜 당선자은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입장이었다.

새누리당이 19대 국회에서 ‘민생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은 노동계가 요구하는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 노동계에서는 일명 ‘정몽구법’이라고 불린다. 박근혜 당선자는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을 제정해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원청업체 정규직 근로자와 동종·유사한 업무를 할 경우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대법원에서 ‘불법 파견’ 판결을 받고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병승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은 “대부분의 사내 하청 비정규직은 상시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현재 있는 법을 적용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박근혜 당선자는 회사에 면죄부를 주는 사내하도급법 발의를 취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대선 결과에 따른 ‘멘붕’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투쟁을 할 채비에 나서고 있다. 좌절만 하고 있기에는 시기가 너무 엄혹한 탓이다. 금속노조는 대선 직전인 지난 17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 노조파괴 분쇄를 위한 1월 총파업을 결의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23일 논평을 통해 “지난 5년보다 더 한 5년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암담함이 젊은 청춘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았다”며 “박근혜 당선자는 대통합을 말하려면 노동현안 해결부터 나서야 한다.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더 견디겠냐는 고인들의 절규를 깊이 새기고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 기조는 친노동은 아니어서 기대난망이지만 국민 전체를 아울러야 하는 입장에서 목숨을 살리는 것 말고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느냐”며 “당선인이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야 한다. 집권 여당이 실기하지 말고 지금 쌍용차·한진중·현대차 농성 현장을 찾아야 한다.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인수위를 꾸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쌍용차 국정조사는 여야가 합의한 만큼 조속하게 이행하고 노사 간 첨예하게 맞서는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는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책임있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은 초미의 관심사가 돼 있다. 추상적으로 표현된 공약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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