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MBC가 선거개표방송에서 ‘5·16군사혁명’이라는 방송화면을 내보낸 것을 두고 서화숙 한국일보 선임기자가 박근혜 정부 인수위가 이 같은 퇴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21일자 한국일보 <나누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서화숙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대국민 메시지’를 내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며 “통합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보편적인 상식을 나누는 것이다. 그동안 역사인식에서 박근혜 당선인이나 주변 사람들은 상식에 어긋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줬다. 사과를 하고 바로잡겠다 약속하며 앞으로 나아왔는데 권력을 잡은 후 이를 번복한다면 통합은 물건너 간다”고 말했다. 

서 선임기자는 이어 “이미 19일 선거개표방송에서 MBC는 ‘5·16군사혁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같은 퇴행을 누구보다 먼저 박근혜 정부 인수위가 바로잡고 박정희 독재의 유산이 조금이라도 느껴질 언행은 삼가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를 신장시키고 권력이 검찰 경찰 국정원을 사유화하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선임기자는 박근혜 당선인이 후보 시절이던 때에도 칼럼을 통해 박 후보에게 “역사에 대한 상식은 갖춰야 한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 12월 21일자 한국일보 <서화숙 칼럼>

그는 7월 20일자 <박근혜 의원의 현재> 칼럼에서 “5·16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현재 박 의원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척도”라며 “아버지가 관계된 일이라서 5·16을 쿠데타로 바로 보지 못한다면 동생의 일이라서 수뢰사건을 바로 보지 못하고 측근의 일이라서 비리를 바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박 후보 주변의 캠프 인사들의 역사인식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상돈 정치발전위원이 5·16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명명한 것, 박효종 정치발전위원이 “5·16은 시작은 쿠데타로 볼 수 있지만 그 후 사람들의 먹고사는 것이 혁명적으로 나아졌다는 점에서 혁명으로 부를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해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집권 이후 먹고살기가 나아졌다고 총을 들고 민주정부를 뒤집어엎은 것이 혁명이 된다? 스페인의 프랑코도, 칠레의 피노체트도 장기집권하며 나라는 먹고살기 좋아졌지만 누구도 그들을 혁명가라 부르지 않는다.”
 
서 선임기자는 9월 14일자 칼럼 <세습을 반기는 사회>에서 연예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쉽게 스타 대열에 합류하는 ‘연예인 세습’, 대기업의 세습을 문제 삼으면서 “정치판에는 박정희의 유산을 세습하려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있다”고 언급했다.

“정치판에는 박정희의 유산을 세습하려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있다. 5·16군사반란이나 유신독재에 대해서 상식적인 판단을 거부하는 그는 최근에 박정희 집권 시절 가장 끔찍한 사법살인 중 하나인 인혁당 사건을 두고 “두 개의 재판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유신독재 때 정치재판을 인정한다는 말은 일제 때 독립운동가를 처형한 재판도 인정한다는 말이 된다. 그 자체로 공직에서 물러나야 마땅할 망언이다.”

선거 직전인 지난 7일자 <6억원에 대한 추가질문> 칼럼에서는 대선 TV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6억원을 받지 않았냐”는 질문을 한 것을 두고 일부 언론이 “이정희 후보가 예의를 잃었다”고 비난한 것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이정희 후보가 질문한 토대는 루머인가. 억측인가. 박근혜 후보 스스로 인정한 사실이다. 토론 자리는 의혹과 부족한 점을 서로 추궁하면서 자기가 더 나은 대통령감임을 입증해야 하는 자리이다. 토론회 자체가 재반박을 못하도록 원천봉쇄된 어이없는 상황에서 이정희 후보는 효과적으로 질문했고 귀가 쫑긋할 대답을 끌어냈다. 언론이 못한 역할을 한 이정희 후보를 비난하는 언론은 언론인가.”

이어 박 후보에게 “언제 사회환원을 하겠다는 뜻인가. 대선 전인가, 후인가.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 중인가, 후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사회환원은 할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서 선임기자가 2008년부터 올해 9월까지 한국일보에 쓴 ‘서화숙 칼럼’과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TBS서울교통방송 진행자를 맡았던 시사프로 <서화숙의 오늘> 방송 내용은 최근 출간된 <민낯의 시대>(퍼블리싱 컴퍼니 클)에 담겨있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 정권을 만든 정당은 새로운 정당이라며 이름을 바꿔단 뒤 더욱 과감한 주장을 펴기에 이르렀다”며 “박정희의 쿠데타를 옹호하고 사법적으로 반성하고 재심이 끝난 과거 독재정권의 판결까지 되살려내려고 한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간 일상생활에서 자유로운 의사표현 자체를 쉬쉬해야 하던 독재시절로 회귀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서 선임기자는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박근혜 현상은 박정희 향수만 있는 게 아니다”며 “박근혜의 인기는 속칭 ‘강남’을 대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서 선임기자는 지난 1982년 한국일보사에 입사해 사회부 국제부 특집부 문화부 생활부를 거쳐 여론독자부장과 문화부장을 지냈다. 이어 대기자 편집위원을 지내고 현재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05년부터 ‘서화숙 칼럼’을 격주로 쓰고 있다.

   
▲ 민낯의 시대 / 서화숙 지음 / 퍼블리싱 컴퍼니 클

다음은 서화숙 선임기자와의 전화 일문일답.   

- 그동안 칼럼에서 정치적 세습이나 박근혜 당선자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해왔는데, 박 후보가 당선이 됐다.
“(박근혜 당선에 대해) 체계적인 분석을 하기에는 아직 공황상태이다. 충격을 받기는 했다. ‘박근혜 현상’을 야권에서는 박정희에 대한 인기로 풀었는데 박근혜 인기는 속칭 ‘강남’을 대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 ‘자식 공부시켜서 성공의 최고 사다리에 오르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투사된 것 같다. 갖고 있는 이익을 포기할 수 없다는 기득권층의 이해관계가 걸린 것이다. 박정희 향수만 있는 게 아니다.”

“대표적인 게 박근혜는 하우스푸어 대책을 내놓았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 시절 종합소득세를 들고 나왔다. 저 자신은 집값을 떨어뜨리는 데 종합소득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작 강남에 정착한 퇴직한 연금 소득자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집이 한 채인데 종합소득세 몇 천 만원이 나오면 낼 수가 없다고 하더라. 이주를 해야 하는데 결국 우리가 마치 재개발로 ‘너희들 살 던 곳을 아파트 단지로 깨끗하게 단장 할 테니 비켜 달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득 없는 강남 중산층에게 위기감으로 떠오른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진보적인 의제에 기꺼이 가담할 의사가 있지만 조금은 과도한 설계 때문에 자기 이익에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오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 박정희 향수는 지방 일부일 것이다.”

- 언론에서 별다른 역사 인식 없이 ‘최초의 부녀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썼다.
“언론인은 어차피 간략화해서 제목을 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그것이 굉장히 훌륭한 기록처럼 오인된다면 비극이다. 박정희는 상상 이상으로 나쁜 독재자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박근혜가 선거에 나오면서 알려지지 않았던 이면들이 드러난 것이 잘됐다 싶을 정도로 끔찍한 독재자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은 (박정희를) 직접 겪은 분들에게 독재자 딸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공포감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박근혜 자체가 새누리당의 실세, 당대표로 있으면서 극우적 가치관을 추구했다. 국가보안법 폐기도 반대했다. 4·11 총선 때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꾸고 이명박 정부를 바꿀 것처럼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박근혜를) 옹호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아직은 그가 어떻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디까지 비판을 해야할까, 굉장히 어렵다. 어제 칼럼을 쓰면서도 곤혹스러웠다. 박근혜 모습으로 뭔가 보여주는 게 문제가 있다면 언론은 당연히 비판할 것이다.”

- MBC가 5·16쿠데타를 혁명이라 방송한 과거 화면을 내보냈는데.
“(MBC가) 워낙 언론의 정도를 벗어났지만 5·16쿠데타는 역사적으로 판정이 난 일인데 그 용어를 들이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땡박’ 방송이 될 수도 있다. 정말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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