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독려를 하면서 피자를 제공한 대전 충남대학교의 A교수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고 16일 밝혔다. 선관위는 “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누구를 찍으라고 하지 않는 투표 독려까지 처벌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A교수는 부재자투표 첫 날이던 지난 13일 학내 다른 교수들과 함께 학교 캠퍼스 내에 설치된 부재자투표소 인근에서 56만여원 상당의 피자 45판을 준비하고 ‘꼭 투표하라’며 피자를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은 같은 학교 B교수가 선관위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 독려 행사 당일에는 선관위 관계자와 함께 새누리당 관계자도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공직선거법(제230조, 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따르면, 투표를 하게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금전·물품·차마·향응 그밖에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할 경우 5년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대선시선관위 관계자는 17일 “선거법 230조에 명확하게 규정이 되어 있다”며 “법이 있는데 그 법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유로운 투표 의사에 영향을 미치게 할 목적으로 (유권자를) 매수했다는 것”이라며 “거꾸로 얘기해서 투표를 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피자를 돌린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  KOREATECH 디자인공학과 4학년 이제하 학생의 투표 독려 포스터
 
이 관계자는 또 “투표시간 연장의 경우도 여야 입장차이로 법 통과가 안 되지 않았느냐”며 “(투표 독려의 경우도) 정당마다 유불리가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공직선거법은) 말하자면 국회의원들이 정한 ‘게임의 룰’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것도 있지만, 보통 비밀 평등 자유 선거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투표를 하라는 거지 누굴 찍으라고 하는 게 아닌 투표 독려를 처벌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히지 않는 단순 투표 독려는 처벌에서 빼자고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많이 얘기를 했었고, 입법청원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선관위는 지난 4·11 총선과 지난해 10·26 재·보궐선거, 4·27 재·보궐선거 등에서 다양한 투표독려 활동을 문제 삼아 논란이 됐다. 2010년 지방선거 때도 ‘투표인증샷’을 올리면 판화 1000점을 제공하겠다는 글을 올린 임옥상 화백은 선관위의 지적을 받았다. 
 
특히 선관위는 지난해 10·26 재·보궐선거를 앞두고는 ‘투표 인증샷 10문 10답’을 발표해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유도하는 의도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은 선거일 투표 독려를 할 수 없다”고 밝혀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하면 불법, 성악가 조수미씨가 하면 합법이라는 식으로 해석 기준이 모호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투표 참여한 증거를 가지고 오면 점심을 사겠다’는 글을 올린 원광대학교 이아무개 교수가 선관위로부터 삭제 요청을 받기도 했다. 기업들의 투표 독려 이벤트를 처벌하지 않는 것에서 보듯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투표하면 옷 사주겠다는 부모님도 처벌할 거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 대학생 연합 광고 동아리 에드레날린의 투표독려 포스터
 
박 변호사는 “선관위가 이런 식으로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처벌)하기보다는 특정 후보를 드러내놓고 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투표 독려를) 허용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누구를 위해 투표하라는 게 추측 된다는 건 선관위의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이야기다. 
 
박 변호사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든 안 하든 서로 투표를 독려해서 투표율을 높이는 게 민주주의에서 당연히 필요한 것”이라며 “법을 바꿔야 하고, 선관위도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교수와 함께 투표독려 활동에 참여했던 C교수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투표를 잘 안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설득을 한 것”이라며 “일종의 교육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C교수는 또 “투표를 하자는 것이었지 누굴 지지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며 “답답하다”고 선관위의 방침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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