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직후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한테서 6억 원을 받았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직 시절 ‘통치자금’의 조성방식과 규모, 정경유착의 행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와함께 박정희 사망직후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금고A의 열쇠가 박근혜 후보에 전달됐으며, 그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재미언론인과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입수, 공개되고 있는 34년 전 미국 하원의 이른바 프레이저위원회의 조사보고서인 ‘프레이저 보고서’ 전문에는 박정희 정권이 선거 당시 미국 기업에게 당시 수백만 달러를 받았다는 대목이 나와 있다.

재미언론인 안치용씨가 최근 공개한 프레이저 보고서 242쪽을 보면, “1971년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미국회사들이 850만 달러를 (한국의) 공화당에 직접적으로 또는 한국대리인이나 비즈니스 파트너를 통해 지급했다”고 씌어있다.

“850만 달러는 걸프오일이 3백만달러를, 칼텍스가 400만 달러(100만 달러는 대출, 300만 달러는 선불금)를 한국의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지급했고, 그밖의 3개 미국회사의 대리인들은 최소 선거 3주 전에 모두 150만 달러의 커미션을 지급했다. 그 돈의 공화당이 궁극적인 수혜자였던 것 같다.”

이 같은 미국 기업 등에서 받은 ‘비자금’ 또는 이른바 ‘통치자금’의 실체에 대해서는 이미 5공비리 청문회를 전후로 박정희의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씨의 증언에도 나와있다.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
©연합뉴스

동아일보 1990년 10월 26일자 3면에 실린 김계원씨의 단독인터뷰를 보면, 김씨는 ‘5공청산과정에서 합수부가 발견한 9억 원’과 관련해 “나도 그 문제로 검찰에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런 돈이 있었을 것”이라며 “어떤 때는 각하가 나를 불러 뭉칫돈을 주면서 어떻게 쓰라고 지시를 한 적도 있었으니 집무실 금고 같은데 돈이 보관돼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씨는 “사건 당일 내가 대통령 집무실 문을 잠근 뒤 근혜양에게 열쇄를 줬는데 어떻게 해서 합수부가 그 돈을 가져갔는지…(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박정희 정치자금의 스위스은행 보관설에 대해 “어떤 나라나 국가원수가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정치자금을 해외은행에 입금해놓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 아니냐”며 “어떤 때 (날) 불러서 가면 ‘누가 왔다 가면서 돈을 놓고 갔는데 어떻게 하지’ 하시면서 나한테 줬다. 내가 ‘각하 정치자금으로 쓰시죠’ 하면 ‘응, 내가 쓸 돈은 있으니 필요한 부서로 보내도록 해’ 그랬다. 언젠가는 스위스 은행에서 발행한 150말 달러짜리 수표를 주면서 원호처로 보내라고 한 일도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박정희 사망 직후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이 9억6000만 원 등을 발견한 청와대 비서실에서 있는 금고B 외에도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금고A에 무엇이 있었겠느냐 하는 것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고 있다.

지난 1990년 7월 국회가 발간한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비리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전두환이 이끄는 합동수사본부가 청와대 비서실에서 9억6000만 원을 발견했다고 기록돼 있다. 전두환은 1989년 12월 31일 국회에서 “10.26 이후 사건수사과정에서 청와대비서실에서 발견된 자금문제는 총 9억6000만 원중 2억 원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5000만 원은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에게 주어 활용토록하고 1억 원은 계엄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서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비로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유족에게 전달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와 관련해 5공비리 조사특위 속기록 12페이지에도 전두환은 이 자금이 “청와대 비서실에서 발견된 자금”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 90년 10월 26일자 3면

청와대 비서실 외에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금고A’에 대해서는 당시 합동수사부도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는 1991년 5월 31일자 기사에서 “김계원이 박정희의 양복주머니 안에서 나온 대통령 집무실 열쇠는 근혜 양에게 전달됐으며, 근혜양은 금고1(금고A)의 내용물을 챙겼다 한다”며 “근혜양은 그 부분에 대해 여지껏 확실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 돈의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썼다.

박근혜 후보는 월간조선 1990년 3월호와 인터뷰에서 이 금고 내용물에 대해 “서류와 편지가 들어있었고, 아버님이 개인적으로 쓰실 용돈도 있었다. 액수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17년이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후보로 나섰을 땐 “문제의 그 금고는 열쇠로 여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쉽게 열 수 있는 것이었고 내용물도 서류들이었으며 귀중품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재미언론인 안치용씨는 14일 새벽 미디어오늘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스위스계좌 정보는 박 대통령이 직접 관리했을 것이 유력하고 관련서류는 대통령집무실 금고 A에 보관됐을 개연성이 크므로 이 열쇠가 박근혜에 최종 전달한 반큼 박 후보는 스위스계좌에 대해 진실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며 “대통령 집무실 서류, 비품은 국가소유이지 사유재산이 아닌데 박정희 사후 금고 A의 소장품 및 재산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것은 이중행보”라고 지적했다.

안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상을 규명해 누구의 잘못인지 밝히고 스위스계좌에 비자금 잔금이 남아있다면 이를 회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 캠프의 여러 대변인들에게 문자메시지와 전화통화를 통해 질의했으나 답을 하지 않거나 “사실확인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어 답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 2007년 경선후보 때도 홍보기획단장을 역임했던 백기승 공보위원은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계좌 관련 의혹제기를 기사화 한 기자가 법적인 제재를 받은 것으로 안다”며 “안치용씨나 미국의 프레이저 보고서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을 꿰고 있는 보고서인지 우리가 판단하기 어렵다. 카더라 식의 주장이 없다고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중앙일보 1991년 5월 31일자

백 위원은 “팩트인지 아닌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선거가 임박해서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인지 판단할 여유가 없다”며 “(스위스계좌 등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인 질문을 받은 적이 처음이다. 시간을 두고 더 천천히 파악을 해보라. 가타부타 말씀드릴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사망직후 대통령집무실 금고 열쇠가 박근혜 후보에게 전달됐다는 과거 언론보도와 증언에 대해 백 위원은 “어디서 그런 주장을 하느냐”며 “사회적으로 시간이 지나서 아니라고 판명된 것들을 자꾸 묻는 것이 과연 국민의 판단과 역사의 도움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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