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제미니호 선원 4명, 피랍 582일 만에 석방
제미니호 선원 4명, 피랍 582일 만에 석방
8월 24일 언론 보도 이후 100일 만… 9개월 간 엠바고, 정부 대응 미완의 과제로

2011년 4월 30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MT 제미니호 선원 4명이 한국시간으로 1일 구출됐다. 피랍 582일만이다. 제미니호 선장 박현열씨(57)와 기관장 김형언씨(57), 1등 항해사 이건일씨(63), 1등 기관사 이상훈씨(58)씨는 모두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12월 첫째 주 귀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에 따르면 1일 오전 11시 55분 경 제미니호 선원 4명이 전원 석방됐으며, 현재 이들은 청해부대 소속 군함인 강감찬함에 승선해 안전한 해역으로 이동한 상태다. 안영집 외교통상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은 지난 11월 30일 외교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미니호 선원들이 1일 석방될 것이라 예고했으며, “협상이 길어지고 어려웠던 이유는 (제미니호) 선사가 한국 선사가 아닌 싱가포르 선사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러 정보통에 따르면 선원 4명의 석방협상금액은 300만 달러(약 32억 원) 선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이번 석방과 관련해 “우리가 직접 협상한 것은 없다. (해적들이) 정부를 끌어들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이어 “정부는 해적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계속 지켜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납치부터 석방까지= 아프리카 케냐 몸바사항으로 이동하던 화물선 MT제미니호는 2011년 4월 30일 케냐 인근 해역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당시 제미니호 선원은 모두 25명. 이 가운데 박현열 선장을 비롯한 한국 선원이 4명이었다.

제미니호 선박을 소유한 싱가포르 국적 선사 ‘글로리 쉽’은 해적과 협상에 나섰다. 그 해 11월 30일 선사는 협상금을 주고 배와 선원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한국 선원들만 풀려나지 않았다. 해적들은 거액의 몸값을 요구했다. 선사는 두 번째 협상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외교통상부는 협상주체가 싱가포르 선사에게 있다는 이유로 역시 적극 나서지 않았다.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단을 비롯한 다수 언론은 외교부의 보도유예(엠바고) 요청에 따라 지난 12월 초부터 올해 9월 중순까지 9개월 간 제미니호 장기피랍 상황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상훈씨의 아내 한순희 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외교부 앞에서 시위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협상금이 올라갈 수 있고, 구출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 접촉하지 말라는 (외교부) 말에 참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가족들조차 500일 넘게 언론대응을 자제해왔으며, 일가친척에게도 피랍사실을 숨기며 지내왔다. 장기피랍 상황은 지난 8월 24일 미디어오늘·시사인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KBS <추적 60분>이 9월 12일 방송에서 제미니호 선원들의 소식을 전했다. 이후 피랍 선원 가족들이 언론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지난 10월 8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협상은 급진전 됐다. 피랍 선원 가족 대표를 맡고 있는 강인용씨에 따르면 피랍 선원들은 최근 가족들과 통화에서 “싱가포르 선주가 협상 금액을 올리지 않고 있으니 선주를 독촉해 달라”고 말했다. 피랍선원이 속한 선박노조도 피랍가족들과 긴밀하게 협조하며 구출 방안을 모색했다. 안영직 재외동포영사국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협상과정은 얘기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제미니호 사태, 아덴만 작전에서 비롯= 최장기 피랍사태로 남을 예정인 제미니호 사건은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 8명을 사살했던 이명박 정부의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선원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소말리아 해적은 <추적60분>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지난해 그 사건(아덴만 작전)이 일어난 후 한국인들을 찾고 있었다. 친구와 친척들이 한국 군인들의 공격에 의해 죽었다. 그래서 우리가 흥분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초 싱가포르 선사는 한국을 방문해 해적들이 아덴만 사건 때 죽은 8명의 몸값과 생포되어 있는 5명의 해적에 대한 보상금을 계속 제기하는 한 협상의 진도를 나갈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협상권이 없을뿐더러 해적과는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협상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피랍은 500일을 넘겼다.

김종대 군사전문가는 제미니호 장기 피랍사태를 두고 “아덴만 작전 이후 후속 대책은 단절되고 군사작전 성공이 과대하게 포장되다 보니 여타 요인은 점점 밀려나 해적의 위협이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정부 인식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제미니호 사태, 정부 엠바고 정당성 여부 다시 물어= 제미니호 사건은 앞으로 정부의 엠바고 요청이 갖는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500일 가까이 지속되던 장기피랍은 미디어오늘과 시사인 보도 이후 100일 만에 해결됐으며, 보도 이후 협상금 역시 내려갔기 때문이다.

피랍 선원 가족들 역시 10월 기자회견 자리에서 “언론보도는 협상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정부와 선사 쪽)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500일 동안 아무런 변화도 진전도 없었다”며 언론보도를 막아왔던 정부와 선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엠바고는 흔히 신사협정이라고 하는데 이는 보도유예에 법률적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연구팀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엠바고는 지킬 의무도 없고 제재도 있어선 안 된다”라고 지적한 뒤 “국방부와 외교부처럼 출입처가 정보를 독점하며 우위에 있는 경우 기자는 취재원이 내건 엠바고에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엠바고를 깨는 일 또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법원은 지난 6월 27일 부산일보의 ‘아덴만 작전’ 엠바고 파기와 관련한 1심 판결에서 “엠바고 준수를 강제하는 직접적 법령 규정이 없는 이상 (엠바고)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양재규 팀장은 “만약 사안에 따라 보도유예의무가 발생한다면 엠바고는 보도유예의무와는 무관한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취재원은 엠바고에 취약한 언론의 면모를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십분 활용하려들 수 있다”며 언론인들의 바른 판단과 역할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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