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 발생한 KBS 수목드라마 <각시탈> 보조출연자 버스전복사고 원인이 당초 언론에 브레이크 파열 등 제동장치 이상으로 발표됐으나 검찰 수사결과 운전자의 과실이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촬영현장에서 빨리 오라는 재촉이 있었다는 정황도 나왔다. 이과 함께 “차량 결함으로 인터뷰를 하면 사고 보상에 유리할 것”이라는 보조출연자 공급업체 관계자의 언급도 있었다고 사고 당시 부상자가 증언했다.
 
▷검찰, 사고 운전기사 불구속기소= 30일 검찰에 따르면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은 지난 29일 사고를 낸 버스운전기사 신아무개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하고 법원에 재판을 청구했다. 안산지검은 당초 신씨에 대해 법원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돼 불구속기소했다.
 
<각시탈>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는 사고 당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버스가 촬영장으로 이동하던 중…지방도로 내리막길을 달리다 제동장치 이상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논으로 전복됐다”고 밝혔었다. 이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언론이 사고의 원인을 브레이크 고장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안산지검의 공보를 담당하고 있는 김종민 차장검사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도 있고, 운전자 과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제동장치 이상에 대해서도 감정을 했는데 제동장치에도 일부 문제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운전사한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조사를 맡은 합천경찰서는 사고 원인에 대해 제동장치 이상 쪽으로 몰아가려 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사고로 숨진 보조출연자 고 박희석씨의 유가족은 지난 7월 23일 사고 현장을 직접 방문한 뒤 합천경찰서측에 “경찰 담당자가 사고 원인을 브레이크 파열이라고 인식하도록 해 사고를 불가항력적인 과실치사로 마무리하려한 의도로 생각한다”며 공문을 보내 보강수사를 요구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합천경찰서 관계자는 30일 “사고차량 브레이크 유압(공기압)이 9.5가 정상인데 6정도가 됐다”며 “운전자가 유압이 빠진 것을 알고 있었고 차를 세워야했는데 내리막길인지 몰랐다고 진술했다. 운전자도 다쳤기 때문에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브레이크 파열’로 사고 원인 몰아가= 당시 사고 관련 회사들이 사고의 원인을 브레이크 고장 쪽으로 몰고 가려했던 사실은 사고 당시 부상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중상을 입은 보조출연자 A씨는 지난 29일 미디어오늘과 만나 “사고 후 병원에 이송돼 누워있는데 태양기획 관계자가 와서 ‘만약 기자들이 오면 브레이크 파열로 인한 사고라고 하면 보상금을 더 많이 받을 테니 그렇게 얘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실제 사고 당일 KBS MBC 등과 인터뷰한 대부분의 보조출연자들은 사고 원인을 “브레이크 파열”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옆에 누워있던 한 보조출연자는 100% 브레이크 파열이 아니라고 인터뷰를 했는데 그건 어디에도 방송이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 당사자인 B씨도 미디어오늘과 만나 “사고 후 고려병원으로 이송됐는데 태양기획 측에서 ‘버스사고가 운전자 과실이 아니라 차가 망가진 것으로 얘기해야 우리(보조출연자)한테 좀 더 이득이 있을 것이다. 합의가 편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며 “부상자들이 서로 다른 층에 있었는데 돌아다니면서 얘기한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B씨는 그러나 “사고에 합의한 다른 보조출연자들을 보면 딱히 합의가 잘 됐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태양기획 관계자는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그 사람들이 거짓 진술을 한 것이다. 사고가 어떻게 난 것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며 “더 이상 그 문제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A씨와 B씨 모두 사고 당일 운전기사가 난폭운전을 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버스를 타면 보통 도착할 때 일어날 정도로 잠을 잘 자는데 그날은 차가 너무 흔들려서 여러 차례 깼다”며 “고속도로에서 트럭 옆으로 가는데 부딪칠 뻔한 정도였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중간에 휴게소에서 쉴 때 다들 ‘너무 심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B씨도 “여러 번 가드레일에 거의 붙어갈 때도 있고 앞 차와 부딪칠 뻔한 적도 있다”며 “과속으로 난폭 운전을 했다”고 설명했다.
 

▷끝나지 않은 사고 피해자들의 고통= 언론에 운전자 과실이 아닌 브레이크 파열 등으로 말하면 사고보상에 더 유리할 것이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과 달리 사고 피해자들은 버스회사 동백관광의 보험사인 전세버스공제조합 처리에 따라 병원치료를 받은 것 외에 별다른 보상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전세버스공제조합으로부터 소정의 합의금을 받고 끝내고, A씨와 B씨는 변호사에게 합의 문제를 위임해 놓은 상태다.
 
A씨는 “사고 후 태양기획으로부터 받은 것은 과일 두 번이 전부”라며 “각시탈 감독(윤성식 PD)과 태양기획 작업반장이 직접 찾아와 30만 원을 건넸다. 작업반장이 ‘돈은 감독과 작가가 사비로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A씨는 “중상자들은 30만 원, 경상자들은 10만 원을 받았다”며 “이 돈도 태양기획에서 준 게 아니다. 태양기획에서는 부상자들한테 수건과 과일을 준 게 전부다. 그게 보상이냐. 너무나 슬픈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당시 사고를 당한 보조출연자는 30여 명에 달하지만 대부분 태양기획측에 보상 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문제제기를 하면 일을 안 주기 때문에 무서워서 못한다”고 전했다. 사고를 당한 후 9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은 A씨는 현재까지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연기지망생이었던 B씨의 경우 부상 정도가 심해 최근까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B씨는 “보조기 없이는 걷기 힘든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장시간 걷는다거나 운전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의사한테 들었다”고 말했다.

B씨는 “사고를 당했을 당시부터 태양기획에서는 우리를 사람이 아니라 물건 취급을 했다.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평생 장애가 남았다”며 “연기지망생들은 촬영 현장에도 가고 돈도 필요하니까 보조출연자를 많이 하는데 절대 안 했으면 좋겠다. 괜히 사고 나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B씨는 “어딜 가든 보조출연이라는 이름 없는 단역은 하대를 받는다. 만약 버스에 누구 한 명이라도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배우가 탔으면 이렇게까지 무시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KBS 사장에게 제일 묻고 싶다. 당신 아들이었으면 일을 이렇게 처리했을 것이냐. KBS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B씨는 이번 사고를 당하고 연기자의 꿈을 접었다.
 

▷사고원인, 왜 제동장치 이상으로 몰고 갔나= 사고의 원인을 제동장치 이상으로 몰고 가려고 했던 주체가 KBS·팬엔터테인먼트·태양기획·동백관광 등 관계사 중 어디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촬영현장에서 버스에 있던 보조출연자 통솔자(부반장)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는 정황이 나와 주목된다.

보조출연자 A씨는 “휴게소에서 잠깐 쉴 때 부반장(당시 보조출연자 통솔자)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직접 들었다”며 “‘지금 어디다. 알았습니다. 빨리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A씨는 “기획사(태양기획)에서 급하게 오라고 한 것, 운전기사가 초행길이면서 서두른 것, 운전미숙으로 인한 사고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A씨와 B씨 모두 사고 당일 과속운전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인정했다.
 
고 박희석씨의 유가족은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사고 원인에 대해 의혹을 갖게 된 동기는 사고 현장에 방문했을 때 스키드마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민형사상 소송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적인 증거물인 버스마저 폐차시켰다”며 조사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가족은 “30여명이 사상을 당한 것은 엄청난 큰 사고다. 여론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어찌할 수 없는 브레이크로 인한 단순 교통사고로 몰고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며 “드라마 제작 환경이 드러나면서 시끄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고 원인을 조작했다고 생각한다. 운전기사가 촬영장에 빨리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면 KBS도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운전기사가 과속 운전을 재촉받았는지 여부는 재판 과정에서 규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운전자 진술 내용에 촬영 현장에서 빨리 오라는 재촉이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해 주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은 운전기사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심야에 이동하는 보조출연자들은 항상 교통사고에 노출돼 있다. 사고 당사자인 보조출연자 B씨는 “지금 보조출연을 다니는 분들은 다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촬영장 쪽이 길이 험한 곳이 많은데 다른 운전기사들도 과속운전을 한다”며 “운전기사들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운전하는 것 같다. 쉬지 못하고 며칠씩 연장해서 일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유가족은 “밤 12시에 출발해서 5시간을 운행시킨다면 임차인도 운전자의 사전 수면 상태 등을 확인하는 게 기본”이라며 “배우들의 촬영시작 시간이 몇 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분장 등의 시간을 고려해 한 두 시간 일찍 집합시켜 출발하고 도착하는 데도 한 시간 정도 여유를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유가족은 이어 “30명이 다치고 한 명이 사망한 사고에서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사회정의차원에서도 말이 안 된다”며 “검찰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조사내용을 확인하고 재판 과정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까지도 태양기획으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한 유가족은 지난 9월 말부터 서울 여의도 태양기획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태양기획 이강용 대표는 지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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