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행복도우미’ 다산콜센터에는 3개의 빨간불이 있다. 도움을 구하는 시민이 전화를 걸면 상담노동자 눈앞에 빨간불이 깜박인다. 누군가 자리를 비웠을 때 팀장 책상에 이름 옆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전체 ‘대기콜(call)’ 건수가 쌓일 때 머리 위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빨간불은 감정노동의 시작을 알린다.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03번의 빨간불을 본다. “시민님이 부르신다.”

지난 23일 저녁 서울 신설동 다산콜센터 주변에 만난 김영아 다산콜센터 노조위원장(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장). 김 위원장은 이날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말을 한 뒤였지만 인터뷰 내내 쉴 틈이 없었다. 콜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평소 하고 싶은 말을 할 시간이 없다. 동료들 사이가 칸막이로 가로막혀 있고, 눈앞에 있는 빨간불이 언제 깜박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콜센터 상담노동자 앞에는 두 개의 모니터가 놓여 있다. 콜이 들어오면 15초 이내에 전화를 받고 정해진 인사말을 시작한다. 그때부터 귀, 입, 눈 그리고 손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이들은 왼쪽 모니터에 시민과 상담내용을 기록하면서 ‘한 글자로 틀리지 않게’ 검색어를 입력한다. 1만 여개 이상의 데이터베이스 중 검색어와 꼭 맞은 데이터가 오른쪽 모니터에 노출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김영아 위원장은 현재 구청 민원전화를 받고 있다. 시민들이 구청 민원실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면 김 위원장 책상 앞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방식이다. 불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초재기 싸움이 들어간다. 김 위원장은 15초와 30초 기준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시간이 왜 중요하냐면 생산성과 관련된다”며 “시간당 13콜이 기준이고 콜수에 따라 성과급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로부터 업무를 수탁한 MPC 자료에 따르면, MPC는 CPH(Call Per Hour·시간당 콜수) 목표량을 15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4분에 한 건씩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노동자들이 실제 처리하는 콜수는 하루 103건이다. 화장실만 가더라도 이를 소화하는 것은 힘들 것 같지만 하루에 150콜 이상을 처리하는 노동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계’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이 걸린다고 김영아 위원장은 말했다.

“1년은 넘어야 귀 입 눈 손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해요.” 김영아 위원장의 경력은 1년 반 정도다. 그도 처음에는 상담이력(노동자들은 이를 ‘후처리’라고 한다)을 동시에 적지 못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듣고 검색하고 말하는데도 벅찼다”고 회고했다. 그는 “1년이 지나면 1월부터 12월까지 어떤 업무가 많이 있는지 미리 예상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검색도 빨리, 콜도 빨리 처리할 수 있다”면서 “후처리 시간을 줄여야 3~5분에 한 콜씩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업무를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이유는 콜이 쌓였기 때문이다. 1000만 시민을 상대하는 상담노동자는 500명이다. 이것도 주간과 야간, 평일과 주말이 나뉘어져 있다. 김 위원장은 “오전 11시부터 낮 3시까지를 ‘취약시간대’라고 부르는데 이때 콜이 밀려들어오면 화장실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상담이 길어지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곤혹 그 자체다. 김 위원장은 “장콜(상담이 길어지는 경우를 뜻하는 센터 내 은어)이 들어오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장콜’은 보통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시나 25개 구청의 관할 업무가 아니라 다른 내용을 묻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이런 경우, 다른 부처를 소개해주고 전화를 끊으면 되지만 모든 전화를 매몰차게 끊기는 어렵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그가 최근에 받은 ‘장콜’의 내용은 ‘12간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이다. 한 시민은 김 위원장에게 “78년 말띠와 상극은 뭔가”라며 묻기 시작해서 12간지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인터넷으로 검색해 몇 가지 대답을 해주었다고 한다. “오늘은 디지털방송 전환을 알리는 자막이 너무 자주 크게 나온다면서 이 자막 좀 안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시민의 민원을 받았다고 김 위원장은 전했다. 그는 “서울시가 다산콜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홍보해서 그런지 정말 시민님들이 별의별 내용을 다 물어 본다”고 말했다.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김영아 위원장은 불법전단지 부착, 보안등 고장, 보도블록 훼손 등 민원을 시민들 대신 접수하면 다음 날 곧장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작은 일일 수 있지만 이럴 때는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높은 업무강도와 관리자의 눈초리 탓에 상담노동자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직업병’이 늘고 있다고 김영아 위원장은 말했다. 김영아 위원장은 “2년 넘은 동료들 중에 목이 정상인 사람이 없다”면서 “헤드폰이 오래돼 한쪽 귀가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콜센터에서 감시 당한다고 느끼는 노동자들이 거의 100%에 가깝다.

김영아 위원장은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를 대답해주는 기계로 보는 것 같은 서울시와 일부 시민들”이라고 말했다. 다산콜센터의 컴퓨터와 전화, 헤드폰 등 시설은 모두 서울시 재산이다. 업무를 수탁한 3개 업체가 실시하는 정기교육은 서울시의 정책에 대한 것이다. 특히 서울시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를 운영하며 수시로 품질평가를 진행한다. 서울시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콜센터를 만들었지만 이들은 ‘간접고용’됐다.

“행복도우미가 행복한 다산콜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울시가 나서야 해요.” 김영아 위원장은 “실제 업체가 하는 일은 시간표를 짜는 수준”이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법적으로 따져봐야 하지만 ‘불법파견’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9월 12일에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니 2달여가 지났다. 김영아 위원장과 조합원들은 근무시간 전후로 1인 시위와 선전전을 한다. 성과도 있었다. 노조가 생긴 뒤 업체들은 출근 30분 전 교육과 조회를 없앴다. 노조는 “출근 전에 교육하는 것도 업무에 포함되므로 체불임금”이라고 주장했다. 김영아 위원장은 “예전에는 10분만 자리를 비워도 관리자들이 찾으러 다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조합원이 계속 늘고 있어 곧 전임자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다산콜 상담노동자들이 자신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휴식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나요?”, “자유롭게 쉬라면서 왜 달마다 성과급을 차등지급하나요?”, “우리는 서울시의 일을 하는데 직접 고용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박원순 시장님, 왜 우리는 안 만나주나요?”

출·퇴근 시간도 제각각에 옆 동료와 수다를 즐길 시간조차 없이 빨간불을 만나는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은 어디에 전화를 걸어야 할까. 서울시가 이들의 민원을 받아들일까. 김영아 위원장은 “IMF 때 일자리를 잃은 ‘경리’가 은행과 통신사에서 상담노동자가 됐다”면서 “현재 콜센터 상담노동자들은 30~40만 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산콜센터가 공공부문의 노동 문제, 나아가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일자리 문제를 풀 수 있는 시금석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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