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팔웰 목사는 1980년대에 우리나라의 고 김수환 추기경 정도의 신망과 존경을 받던 성직자였다. <허슬러>라는 성인잡지가 제리 팔웰이 “나의 첫 (성)경험은 어머니와 였다”라고 고백하는 인터뷰를 싣는다. 물론 거짓이었고 과장법을 이용한 패러디였다. 법적으로는 당연히 ‘합리적인 사람은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라며 명예훼손 주장은 거부되었고 모욕적이라는 주장도 풍자나 과장은 진지한 사회논평의 일부라며 역시 거부되었다.

나는 여기서 표현의 자유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홍성담의 ‘유신출산’그림도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도의의 문제이다. 위의 가상인터뷰를 보고 내가 래리 플린트를 도의적으로 비난하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래리 플린트가 누구인가. 바로 성인잡지들을 앞뒤 안 가리고 음란물이라고 철퇴를 가하던 교회 주도의 당시 분위기 때문에 수십차례 형사재판을 받았던 인물이다.

도의의 문제라면 전인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 또 전인적인 평가를 한다면 그 작품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출판한 행위 전체를 평가할 수 있다.

‘박근혜 유신출산’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홍성담의 작품. 역시 내 미감에는 맞지 않았고 처음에는 출산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 섬ㅤㅉㅣㅅ했다. 아이가 괴물로 엄마 배속에서 나온다는 설정이 주는 심연의 공포감과 불쾌감은 영화 <에일리언2>의 시작장면을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한다. 박근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어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작가가 누군지를 확인하고 도의적으로 이해되었다.

홍성담이 누구인가. 홍성담은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선전 요원으로 광주시내버스에 페인트로 일련번호를 매기며 활동했다. 1983년〈시민미술학교>를 개설했으며, 89년에는 대형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슬라이드로 만들어 그해 7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보낸 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간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 4개월의 옥살이를 하였다. 1990년 국제 엠네스티 본부에서 '올해의 양심수 3인' 중 한 명으로 그를 선정하였고 현재까지 '홍성담의 날'을 매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홍성담은 군사독재의 피해자였다. 결국 그 그림의 전시도 하나의 역사적 행위로 이해가 되었다.

<허슬러>의 패러디인터뷰나 홍성담의 “유신출산”이나 신격화된 인물의 가면을 벗겨보려는 시도였고 은유와 과장을 동원한 일종의 ‘시각적 욕설’같은 것이다. 모든 욕설이 ‘미안해 할 일’은 아니다. 2002년 시청 앞 광장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하는 시민들은 감정에 복받쳐 “Fucking U.S.A.”라는 구호를 썼다. 자신의 성감수성에 불편한 사람은 있었겠지만 도의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특히 학교에서 평온하다가 역시 평온하게 진행되던 군사작전 중에 장갑차 바퀴에 납작하게 눌려 펼쳐진 시체들의 사진을 본 후에는. 바로 그 시점에서는 국민 전체가 그런 욕설의 형식을 빌어도 도의에 어긋남이 없는 ‘피해자’였다.

하지만 나는 글을 이렇게 끝맺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래 맞아, 홍성담은 잘못한 것 없어’라고 확신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나에겐 이 글을 급히 쓴 보람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문제 그 자체가 아니고 그것이 문제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다”. 한국 사회의 그런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소위 ‘진영논리’이다. ‘적과 대화’중인가 ‘아군과 대화’중인가에 따라서 모든 사물의 평가가 달라진다.

진보는 보수와 싸우는게 진보가 아니라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진보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중에 진정한 진보는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 다수는 2년전 서해성의 ‘놈현 관장사’발언을 비난했었다. 홍성담의 ‘유신출산’그림은 사실 박근혜의 ‘박정희 관장사’에 대한 비판이다. 도리어 ‘놈현 관장사’는 노통을 공격한 것이 아니고 그의 투박하고 거친 서민적인 사내(“놈”)의 이미지에 기대려는 정치세력에 대한 촌철의 통렬한 비판이었음에도 우리는 노통에 대한 예의를 말하면서 서해성을 비난했다. 이번 ‘박정희 관장사’그림은 박근혜를 직접 적나라한 역할로 등장시키면서도 박근혜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렇게 ‘쥐박이’는 괜찮고 ‘놈현’은 안된다는 주장은 진영논리이다. 이명박과 노무현을 어떻게 감히 비교할 수 있냐고? 바로 그게 진영논리이다. 정작 어떤 말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은 형식에 대한 비판이다. 그렇다면 형식에 대해서만 비판을 해야지 노무현이 이명박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놈현’은 안되고 ‘쥐박이’는 된다는 논리는 진영논리이다. 물론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실체적인 믿음의 차이라면 발언의 형식을 두고 ‘예의’ 어쩌고 따질 일이 아니다.

우리 중의 상당수는 ‘유신출산’도 비난하고 ‘놈현 관장사’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분들이 도리어 가장 위험한 분들이다. (이분들 중에서도 김용민의 ‘라이스 럼스펠드 강간발언’ 비난처럼 ‘그런 말쓰면 적들에게 유리하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분들은 진영논리까지 장착한 더욱더 위험한 분들이다.) 이 저질스러운 ‘유신출산’도 그려내야 할 절절한 이유를 가진 사람 홍성담에게 도의를 문제삼지 마라. 마찬가지로 노통의 죽음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계속 그 죽음 속에서 살려고 하는 모습에 대해 ‘놈현’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표현으로 비판하는 것도 문제삼지 마라. 누군가를 위한 성역을 만들면 그 성역이 바로 우리의 감옥이 된다는 것을 가장 잘 알려준 사람이 바로 박정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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