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두 후보가 밝힌 각각의 입장을 살피면 타협과 해결의 여지가 적어 보인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양 진영의 현실 정치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다른 탓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결론적으로, 이 시점에서 두 후보가 정치에 대한 인식 차이를 공유하지 않으면 결과는 매우 부정적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았던 것은 정치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컸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의 불통과 독선의 정치가 정치 변화를 강력히 희망하는 원동력이었다. 확 바꿔야 한다는 기대치는 당의 간판만 바꿔단 채 ‘현 정권과 우리는 남이다’라고 외치는 새누리당이 또 다시 정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정치적 변화라는 기치는 안철수 후보 쪽이 가장 선명했고 신선했다. 안 후보는 기존의 정치권에 발을 담근 정치 유경험자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수위의 정치 변화를 공약했다. 그는 정권 교체보다 정치 혁신이 먼저라는 말로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압축해서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정치적 파트너는 현실 정치에서 ‘새누리당보다는 더 깨끗하고 혁신적이다’라는 식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현실 정치에 대해 총체적인 사회적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이 확고하다는 점에서 새누리당과 동일한 세속적 정치 집단이다. 민주당이 진보적 정당과 거리를 두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민주당은 기존 정치권에서 살아남으려면 유권자의 의식이나 지향성을 고려한 현실 정치를 인정해야 하는 태도를 감추지 않는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최악 대신 차악을 선택하는 모습에서 그것을 드러내왔다. 그런 불가피한 한계는 정치적 변화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연장되면서 그 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이유가 돼 왔다.

새누리당과 그 당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유권자가 존재하는 한 민주당도 현실 정치의 전략과 전술을 버릴 수 없다는 인식이 민주당 내에서 강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은 지난 총선 실패를 자초하고 이어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선거인단 투표를 놓고 끊임없이 이어진 갈등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후보 경선전의 앙금은 경선에 출마했던 후보들이 오늘날 전혀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하는 것에서 간접적으로 입증되는 듯 하다.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을 상대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어울려 만드는 현실 정치를 확 뜯어고치려고 나선 것은 유권자들 입장에서 보면 소중한 정치적 도전이다. 안 후보와 같은 도전이 있어야 정치가 개선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도덕군자가 아니며,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현실 정치의 한계 속에 안 후보가 새 정치를 요구한 것은 대단히 신선했다.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매사가 그렇듯 추진하는 일의 완성 단계로 접근하면 그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더욱 확연히 눈에 띄게 된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바로 그런 지경에 처한 것이다. 두 진영은 각기 자기들이 지향했던 목표를 향해 마지막 깔딱 고개를 올라가면서 상대의 진면목을 보게 되면서 급기야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은 안 후보가 현실 정치를 인정하는 선에서 민주당에 대한 요구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가 그것이 아닌 것을 새삼 확인한 모습을 보인다. 안 후보 측도 민주당이 진정한 변화의 모습을 취하지 않는 정치 집단으로 파악한 것과 같은 반응이다. 두 진영의 이런 모습은 정치와 정치적 변화, 정치 혁신 등에 대한 눈높이가 달랐고 개념이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두 진영의 정치에 대한 기대치가 다른 것으로 확인된 이상 취할 수 있는 그들이 선택할 대안은 많지 않다. 지금과 같은 형국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우열이 가려지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 변화를 갈구하는 다수 유권자를 생각할 때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서로 살피고 대화해야 한다. 상대에게만 손가락질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현실 정치, 정치 혁신 등에 대해 다시 대화하고 눈높이를 서로 조정해야 한다. 정치는 상대가 있다. 두 진영의 다툼은 결국 다수 유권자가 등을 돌렸던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정치는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 현대 정치의 개념은 민주주의를 더 진전시키고 정치와 유권자의 관계를 더욱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 정치가 아직 갈 길이 멀다. 여기에 비추면 정치의 기득권을 버리자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해진다. 두 진영은 더 이상 진영 논리에 함몰되지 말고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현실 정치를 바라보고 대화해서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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