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40여일 밖에 남지 않았지만 상당히 답답한 형태로 선거전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유력 후보는 세 사람으로 압축되어 있지만 이들을 객관적으로, 상대적 비교 우위를 판단할 정치적 행사인 공개 토론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세 후보가 한자리에 모여 정책과 비전을 놓고 공방을 벌이거나, 개별 후보가 패널과 질의응답을 하는 TV 토론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대신 상대 후보에 대하 네거티브 선거전이 기승을 부린다. 또한 각 후보의 공약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는 말이 무성하다. TV 합동 토론 등 경제적 효율성이 가장 높은 정치적 행사가 전무한 것은 선거문화의 후진성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반증한다.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은 2달 전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에게 토론회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지금껏 어느 곳도 공식적인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한국방송기자클럽도 세 후보가 각각 토론회에 참석해 사흘 연속으로 TV 토론을 진행하는 방안을 각 진영에 제안했지만 “다른 후보가 나온다면 고려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21세기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의 대중 미디어를 통한 공개토론은 후보들의 유권자에 대한 가장 필수적인 정치적 서비스의 하나다. 후보들이 자신의 정치적 자질과 능력을 유권자들에게 검증받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공개토론이다. 지금처럼 합동 또는 단독 토론을 회피하는 것은 대선 후보들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형국이다. 이른바 ‘원맨 쇼’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후보의 전문성과 자질 등 객관적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는 것은 오만할 뿐 아니라 매우 후진적인 정치 행태다. 큰 논란이 되는 주제가 터져 나와도 당사자들의 일방적인 해명이나 주장이 나와 유권자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등을 분간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모든 정치적 이슈는 찬반이 있기 마련이고 관점에 따라 상반된 결론이 나올 수도 있지만 이런 역동적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정치적 행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TV 합동토론과 관련해 박근혜 후보측은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가 단일화 포기를 선언한다면 당장이라도 3자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후보 측은 어떤 형태의 TV토론이든 응한다는 방침이고 안철수 후보측은 3자 TV토론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진다<연합뉴스 3일>.

대선 후보의 공개 토론은 법률적 의무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무당파나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후보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투표라 할 수 있다. 국내외 대선에서 후보들의 미디어를 통한 공개 토론으로 당락이 결정된 사례가 적지 않다.

SNS 시대의 대선 후보 토론은 미디어 영향력이 가장 강력한 것 중의 하나인 TV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은 IT 강국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로 대소 선거에서 대중 및 각종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으로 굳어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각 당 또는 무소속 후보가 확정된 뒤 합동 또는 단독 토론회 등은 전혀 열리지 않고 있다.

합동 토론은 후보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열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단독 토론회조차 열리지 않는 것은 선거 선진화에 역행하는 심각한 사태다. 이는 후보들이 한결같이 정치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알맹이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같다. 정치는 투명하게 검증을 전제로 해서 이뤄지는 것인데 후보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여주고 들려줘 유권자들의 표심을 유혹하려는 것은 정상적인 정치 행위가 아니다.

중앙선관위가 주관하는 TV토론은 다음달 4일과 10일, 16일 세 차례 예정돼 있지만 그 이전에 세 후보의 TV 토론 등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 기승을 부리고 있는 네거티브 선거전이 청산될 수 있을 것이다.

대선 후보들은 합동 TV 토론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고 가능하다면 단독 토론 참여를 통해 유권자에게 서비스하는 후보자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선진적 대통령을 공약하는 것에 대한 합당한 정치적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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