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무한도전>은 성공했다. 2005년 4월 23일 황소 대 인간의 줄다리기로 시작한 <무모한 도전>은 김태호 PD 투입 이후 <무한도전>으로 이름을 바꾼 뒤 예능에 ‘사회풍자’라는 숨을 불어넣었다. 캐릭터가 갖춰지며 멤버들은 모든 아이템에 도전했다. 김태호 PD는 객석에 있던 시청자와 카메라 밖에 있던 제작진을 끌어들여 ‘출연진-제작진-시청자’라는 삼각 축을 형성, <무한도전>을 가족적 애착을 갖게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진화시켰다.

지난 20일 300회 특집을 맞기까지 수많은 성공 요인 속에 돋보인 것은 <무한도전>만의 가감 없는 사회 풍자였다. <무한도전>은 예능에선 처음으로 자막을 이용해 PD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자막에 의한 풍자는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다. <무한도전>은 시민과 호흡하며 대중의 정서를 빠르게 파악한다. 사회를 풍자하는 자막은 그 결과물이다. 풍자로 속이 시원해진 시청자들 덕에 <무한도전>은 의도하지 않아도 매회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됐다.

<무한도전>의 풍자는 자막을 넘어 특집 아이템 곳곳에서 드러났다. ‘여드름 브레이크’편에서는 멤버들의 미션 장소로 서울 지역 곳곳의 재개발 지역을 선정, 현 정부의 재개발정책을 환기시키고 시청자에게 난개발의 황망함을 느끼게 했다. ‘스피드’편에서는 멤버들이 차량폭발을 막기 위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데, 수수께끼의 답은 모두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들이었다.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 4사의 개국 직전 방송된 ‘TV전쟁’편 역시 풍자 성격이 강했다. 동시에 개국한 7개의 방송국이 생존을 위해 상대 방송을 종파시키는 추격전은 종편 출범 당시 우려했던 방송 간의 무한경쟁체제를 은유적으로 지적했다. 당시 끝까지 생존한 유재석TV는 김태호 PD가 MBC에 대한 우려와 바람을 투영한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정치풍자는 <무한도전> 단골메뉴였다. 17대 대통령선거가 이명박의 당선으로 끝난 2008년 초, <무한도전>은 ‘반장선거’ 편을 통해 우회적으로 대선을 풍자했다. 해당 편에서 기호 2번으로 등장한 박명수는 ‘실용주의 개그’를 주장했고, 모든 멤버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당선 된 박명수는 ‘과거기득권’이 된 유재석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이를 두고 PD는 ‘알고 보니 철거반장’, ‘허무하게…새 시대는 이렇게 오나?’라는 자막을 넣었다.

2009년 말 방영된 ‘갱스오브뉴욕’ 편에선 프로그램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5년간 활약했던 보스가 사망했다’는 설정부터 게임에서 살아남은 자는 흑백 처리된 화면에서 노란 넥타이를 달고 있고, 죽은 자는 노란색이 제거되며 퇴장했기 때문이다. ‘코리안 돌+아이 콘테스트’ 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닮은 일반인을 ‘돌아이’로 선정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G20 개최 당시에는 ‘이것들이 G20개최국 국격에 안 맞게!’라는 자막을 썼고, 이명박 정권 초기에는 ‘분위기 파악해라…정권 바뀌었다’, 종편 개국 이후에는 박근혜 대선후보를 겨냥해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미모’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이 같은 장치는 ‘의식’있는 PD가 만드는 예능프로그램이 얼마만큼 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 교수(문화평론가)는 “<무한도전>은 대중이 원하는 선을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가 된 조롱을 선보인다”고 지적했다.

<무한도전>은 환경이슈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나비효과’편의 경우 몰디브리조트와 얼음호텔로 꾸며진 두 공간에서 멤버들이 서로의 행동으로 파멸을 겪는다. 리조트에서 전기를 쓰자 온도가 올라가고, 그 결과 얼음호텔이 녹아 무너지며 리조트는 얼음이 녹아 생긴 물에 잠긴다는 설정이다. 이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공멸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대체에너지특집’편을 통해 인력으로 선풍기를 돌리고 페달을 밟아 차를 움직였다.

2007년 삼성 유조선의 태안기름유출사고로 생태계가 파괴됐을 당시엔 아예 태안 사고현장을 찾아 복구현장을 함께해 ‘공익예능’이란 평도 받았다. ‘식목일 특사’편에서는 전 지구적 사막화를 지적하며 멤버들이 직접 중국 쿠부치 사막지역을 찾아 나무를 심는 무모한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무한도전>의 풍자는 전 방위적이다. ‘무한상사’편의 경우 △권위주의 △위계질서 △비효율성으로 대표되는 직장 내 조직문화를 현실감 있게 잡아냈다. 야유회와 종무식에서 사원들이 유재석 부장의 눈치를 보고, 새해 인사를 하기위해 부하직원들이 유 부장의 집에 찾아가는 모습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은 씁쓸한 감정이입을 경험한다.

‘WM7 프로레슬링’ 특집에서는 레슬러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던 멤버의 분투를 싸이의 노래 <연예인>에 투영했다. “나의 그대가 원한다면 어디든 무대야/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 줄게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도(정형돈) 녹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연예인은 어찌 보면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인 감정노동자다. PD는 이점에 주목해 구토를 하면서도 시청자들 앞에 서는 연예인의 가려진 면을 보여줬다.

이밖에도 <무한도전>은 예능프로그램으로선 이례적으로 ‘3·8 여성의 날 특집’편을 꾸렸으며, 대한민국 드라마의 쪽대본 시스템을 풍자하는 ‘쪽대본 드라마’편을 제작하기도 했다. ‘봅슬레이 특집’편에선 메달획득이 가능한 엘리트체육 종목에만 투자하고 그 외의 종목은 외면하는 정부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이택광 평론가는 “유재석은 한국사회가 지향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무한도전>은 한국사회의 상식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사회풍자로 주목을 받은 결과 심의 논란도 이어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08년 2월 발족 이래 <무한도전>에만 10차례 법정 제재를 가했는데, 이 중 7건이 ‘품위유지 위반’으로 타 예능에 비해 방송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이 많았다. 차량 폭파 장면이 모방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원펀치 파이브 강냉이 거뜬’이 저속한 표현이라는 이유로 제재 대상이 된 적도 있다.

이를 두고 방심위의 판단이 시대착오적이며, 사회풍자적인 〈무한도전〉에 대한 표적심의 아니냐며 시비가 일었다. <무한도전>은 직접 방송에서 '품위 유지'란 자막을 올리거나 ‘무한도전TV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규정을 준수하려고 합니다만…’이라고 밝히기는 등 심의를 풍자했다. 한 번은 품위 유지를 이유로 정준하를 “조금 모자라지만 착한 형”이라고 순화해 심의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무한도전>은 앞으로도 성역 없는 풍자로 대한민국 ‘예능의 사회학’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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