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1844만 대다. 자동차 한 대당 인구수는 2.75명으로, 세대 당 0.92대 꼴이다. 보급 대수만 놓고 보면 세계 16위 수준이다. 생산 대수에서는 465만8000대(2011년, 해외 현지생산 포함)로 7년 째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직·간접 고용인원은 175만명(2010년)으로 우리나라 총 고용인원의 7.3%를 차지한다. ‘자동차 강국’으로 꼽힐 만하다.

그런데 한국 언론에서 읽을 만한 자동차 기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미국이나 독일 등 자동차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컨슈머 리포트’도 찾아보기 어렵고, 날선 비판이나 ‘지적질’도 보기 힘들다. ‘마이카’ 시대가 활짝 열린지 20년이 넘었지만, ‘자동차 전문기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막연한 호평과 감상평이 적당히 버무려진 시승기 기사만 넘쳐난다. 독자들은 신문을 떠나 인터넷과 전문 잡지 등 다른 매체를 찾아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참고만 하기로 ‘딱 정한 거예요~’

“신문의 시승기 기사는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실제로 이 차가 어떻다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독자들이 꼭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이데일리 산업부에서 3년째 자동차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김형욱 기자는 독자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매우 공감한다”고 답했다. 다만 “시승기의 경우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차를) 길어야 100km 타보고 첫 인상을 받아 적은 것 외에 속속들이 차에 대해서 평가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기에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 “‘자동차 제조사가 수천억을 들여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개발한 건데 잠깐 타보고 뭔가 허술하다고 느낄 정도로 (차가) 엉성하게 나왔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도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완벽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연차가 쌓여도 무조건 단점을 지적하기 두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일간지들은 2~3년 주기로 기자들의 부서를 이동·배치하는 게 관례다. 자동차 분야를 주로 다루는 산업부나 경제부 기자도 마찬가지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기자들이 대부분이다. 김 기자는 “보통 3년까지는 수박 겉핥기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자동차 제조사가 제시한 자료를 참고로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전문성 부족을 전적으로 기자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터넷 매체 A 기자는 “다른 분야에 비해 전문기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한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라는 데스크의 인식도 부족하고, (읽을 만한 기사를 원하는) 독자들의 욕구에 대한 이해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주요 경제지의 자동차 담당 기자 B씨는 “산업 자체를 놓고 보면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철강이나 조선 등 다른 산업을 담당하는 기자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적 관심이 높다는 점에서 (자동차가) 특별한 분야이긴 하지만, (기자) 개인의 노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언론 환경 공통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유는 또 있다. 부단한 노력으로 상당한 전문성을 갖춘다 하더라도, 이를 기사에 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기업인 자동차 제조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탓이다. A 기자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제조사에 알려 광고를 받고 기사를 작성하지 않거나 게재된 기사를 삭제·수정하기 때문에 (자동차의) 문제점 등이 일반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제조사가 직접 시승기 기사를 써주는 사례도 있다”고도 했다. 기사를 놓고 ‘거래’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광고나 ‘스폰서’ 명목으로 이뤄지는 ‘제안’의 규모가 수십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광고주 눈치 안 볼 수 있겠나”

이는 언론사들이 수익의 절반 이상을 광고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편적’인 일이기도 하다. 다른 경제지의 자동차 담당 기자 C씨는 “기자들이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내수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삼성전자에 이은 최대 광고주로 꼽힌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TV광고비로만 873억원(현대차: 490억원, 기아차: 383억원)을 지출했다. 현대·기아차의 신문광고 시장 점유율도 비슷하다.
 

   
 
 

온라인 매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예 광고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 매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규모가 영세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광고 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 제조사가 공짜로 광고를 주겠냐”며 (광고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일부 매체들은 자동차 제조사의 입맛에 맞는 ‘주문형 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광고를 받는다는 설명이다. 정확한 정보와 객관적인 분석을 원하는 독자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는 대목이다.

B 기자는 “큰 틀에서 자본과 언론의 문제가 보편적으로 있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삼성이나 포스코 등 대기업과 언론이 ‘관계’를 맺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자동차 분야라고 다를 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C 기자도 “어느 부서에 가더라도 같은 고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요즘은 (기자들이) 그저 시키는 일을 할뿐”이라고 털어놨다.

물론 기자들도 나름대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6일, 주요 매체들의 자동차 담당 기자 50여명은 ‘한국자동차기자협회(회장 이건호 한국경제 기자)’를 출범시켰다. 자동차 취재경력이 3년 이상이거나 동종 업계에서 7년 이상 취재경력을 가진 기자에게 가입 자격이 주어질 정도로 엄격하다. 전문가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여는 등 나름대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자동차 분야에 있어 ‘전문적’인 기사의 수요는 일부 전문 매체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언론의 신뢰도가 이미 바닥에 떨어진 탓이다. 현장의 기자들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당장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C 기자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승기 기사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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